안녕 나, 그리고 나의 나 4화

by 설다람


자열의 집을 다녀온 이후로, 세록은 짙게 묻은 온기를 떼어낼 수 없었다. 자청비가 만진 몸에는 따뜻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페칼리박테리움을 정확하게 암세포에 안착시키는 나노 구조체를 설계할 때도, DNA 와이어프레임 종이가 접히는 부분의 기계적 강성을 조정할 때도, 세록은 아아이에 대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과거 사람들이 ‘왜’ 키웠는지 알 것 같았다. 정서적 위로 효과가 대단한, 생물학적 도구였다. 소셜 미디어를 전연 하지 않는 세록도 틱스타톡으로 아아이의 사진을 간식처럼 맛보았다. 웹으로도 검색해보니, 결과 페이지 상단에 아아이들의 사진이 띠처럼 나왔다. 더보기를 클릭하자, 바둑판 갤러리 형식으로 화면 가득 아아이들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아아이들은 외모도, 옷차림도 각양각색이었다. 자청비처럼 주인을 빼닮은 류도 있는 반면, 인종적 유사성조차도 전혀 없는 아아이도 보였다. 자신이 입은 옷과 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었던지, 형에게 물려받은 듯한 옷을 아아이에게 입히고 찍은 사진도 여럿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면, 아아이는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아아이는 인공 반려체와 함께 애완행위의 사각지대에 놓인 유사 애완품이었다. 누가 그은 선인지는 모르지만, 암묵적으로 모두 아아이는 길러도 되는 존재라고 동의했다.

그러지 않아도, 외로움을 삭히려 인공 반려체를 구매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결정을 못 내린 이유는, 하미 때문이었다. 한 반려체가 있다고, 다른 반려체를 집에 두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여유가 되는 사람은 7대를 구입해, 매일 파트너를 바꾸기도 했다. 자신이 다른 반려체와 산다고 해도, 하미는 별 다른 반응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잘 됐다고 축하해줄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감정적 미동이 없는 하미를 보고 싶지 않았다.

아아이 입양 사이트에 접속한 세록은, 어쩌면 자열의 폰으로 아아이를 본 순간부터 시스템 1 사고에 의해 이끌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시스템 2 사고 는 입양 사이트를 둘러보던 중에 작동하기 시작했다.

낳지 말고, 입양하는 게, 윤리적인 선택이겠지만, 자신의 유전자를 지니고 지니고 있지 않은 아아이를 키울 자신은 없다. 자신의 속내를 발견한 세록은 스스로가 속물처럼 여겨졌지만, 속내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아아이 입양사이트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한 결정’을 되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커뮤니티를 찾아보니 입양 후회글들이 즐비했다. 내 DNA가 있었으면, 못난 짓을 해도 좀 봐줬을 텐데, 미운 네 살 견디기 힘드네요. 아아이는 단성생식이 국룰이라는 댓글도 많았다. 충동 구매를 막기 위해 세록은 세 번을 더 참았다. 그러나 한 번 타오른 애완욕은 사그러들 줄을 몰랐다.

결국 세록은 일주일 뒤에 단성생식 위한 진료일자를 잡았다. 병원에 가자 간호사가 친절히 탈의실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라고 안내해주었다. 환자복은 폭이 넓어 양팔을 들면, 작은 날개를 단 것처럼 보였다. 환복을 마치고 세록은 수술실로 갔다, 이름은 수술실이었지만, 초음파 검사를 받는 공간과 비슷했다. 지시에 따라 편안하게 침대 위에 누웠다. 잠시 후 의사가 안으로 들어왔고, 간호사가 지금부터 마취에 들어갈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수술이 끝났으니, 수납하고 돌아가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 간단해서, 만만했다. 아아이는 4주 간의 숙성 기간을 거친 후 받을 수 있었다. 보자기로 싸인 채로, 바구니에 담긴 아아이는 세록을 빤히 바라보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아아이가 반달눈을 하며 웃었다.

아아이의 이름은 미토라 지었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소기관이 되어주길 바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었다. 그 역할을 해낼 수 없다면, 키우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세록도 시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준은 거의 울먹였다.

“단성 생식이면 너 빼닮았겠네. 엄청 귀엽겠다.”

자열은 플러팅 같은 말을 잘도 했다. 나준이 얼굴 좀 보여달라고 보챘고, 마지못한 세록이 갤러리를 띄웠다. 부모라면, 한 장은 찍었을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이무는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세록은, 미토가 어린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토에게는 아직 기억이라는 얼룩이 없었다. 완전 판박이라고 나준이 호들갑을 떨었고, 자열은 아사모(아아이를 사랑하는 모임)에 강탈당하지 않게 조심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주의를 주었다. 얼마 전 아사모 회원이 가정집을 습격해 아아이를 훔쳐간 사건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인공 반려체였다면 기초 방어술을 통해 자신을 지켰겠지만, 모든 생명을 전적으로 타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아아이는 무력하게 끌려갔다. 책임감이 더 필요한 존재였다. 길거리에 종종 보이는 유기 아아이들만 보아도,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세록은 설마 자신이 미토를 버릴까 하고 생각했다.


이 사이에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1학기 마지막 세균학 실습이 끝나고, 교수가 따로 세록을 불렀다.

“세록은 집요함에 탁월한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방학 동안 랩실에서 아르바이트 해볼래?”

의외의 제안이었다. 실습 중에 자신이 무엇인가 특별한 인상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최적화에 능한 자열이라면 몰라도. 어쩌면 자열이 거절했던 제안이 자신에게 돌아온 것일 수도 있었다.

“기본적인 연구 보조야. 수업이랑 크게 다르진 않아. 나중에 뜻이 있으면, 연구할 때 도움도 될 거고.”

“조금 고민해보고 알려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지. 대신 늦어도, 이번 주 금요일까지는 알려줘.”

교수는 사람 좋게 웃었다.


“교수님이 연구자의 길이라도 걸으래?”

복도 끝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열이 물었다.

“아니, 랩실 아르바이트 자리 있다고 알려주셨어.”

“좋은 거 아냐? 꿀일 것 같은데. 게다가 다이어 교수님 랩실이면, 뭐라도 배우겠지.”

자열의 말에, 가볍게 들렸던 아르바이트가, 꽤 괜찮은 ‘일’처럼 들렸다. 게다가 아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했다. 한 달치 사료값이 15만 원이었다. 자신의 식비와 맞먹었다. 미토를 모시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최소한의 현실이었다.

"미토는 잘 크고 있어?"

“무럭무럭.”

"말은 해?"

자열이 물었다.

"아니, 안 가르쳤어."

"왜?"

세록에 대답에, 자열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이 딱 좋으니까."

세록의 말에 자열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우울증 걸려."

"아냐 미토 덕분에 안정감이 생겼어.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게, 좋더라고."

"아니, 너 말고 미토. 아아이는 사회성이 강해, 소통하는 법을 못 배우면 쉽게 상처 받아. 수명도 줄고. 지금이라도 시작해."

"트레이닝 센터에 보낼 돈 없어."

"기본적인 건 집에서도 가르칠 수 있어."

"시간 나면 시도해볼게."

"시간 내서 하는 거야."

자열은 조언했다.


1학년 첫 학기는 무탈하게 지나갔다. 종강하자마자 오로라 고래를 보러 남극으로 가는 나준을 공항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열과 가장 작은 생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토를 끌어안고는 무릎에 앉혔다. 미토는 양팔로 세록의 허리를 감았다. 언어를 가르치면, 요구하는 게 더 많아질 것이다.

교수에게 하겠다고 메일 보내고, 세록은 방바닥에 앉아서 뒹굴고 있는 미토를 찍었다. 색감을 조정해 틱스타톡에 사진을 게시했다. 스크롤을 내려가며, 미토의 성장과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새 미토는 제법 자라있었다. 곧 성장이 끝나고, 성체의 모습을 갖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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