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헤이타로 가게 되었어. 한 5년 정도 그곳에서 살 예정이야. 헤이타 지부 멸종위기종 보호단장이 밀렵꾼들에게 피살당했거든. 나더러 자리를 채워달라고 부탁했어."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이무?”
“내 걱정은 마, 난 네가 걱정이야. 미안하지만 5년 동안 이 집을 그대로 둘 수 없을 것 같아. 너도.”
이무는 감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그렇다고 널 팔 순 없어.”
“차라리 폐기하시는 게 어떠세요. 데이터는 작년에 백업했으니, 나중에 복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넌 너를 너무 무심하게 다루는 버릇이 있어.”
이무는 하미가 가져온 쌀과자를 받으며 말했다.
“이무가 저를 너무 인간처럼 다루는 버릇이 있는 거죠.”
하미는 이무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봐, 누가 널 인간이 아니라고 보까? 정답은 ‘아무도’야. 그러니 자부심을 좀 가져봐.”
“차에 치이는 순간 ‘모두가’ 알게 되겠죠. 제가 인간이 아니란 거. 겉만 보고 존재를 판단하면 안 돼요.”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세록에게 가 있을래?”
세록의 이름을 듣자, 하미의 얼굴이 밝아졌다.
“저야 좋지만, 세록이 원할까요. 연락 안 한지도 4년이 넘었는데.”
“왜, 새 애인이라도 생겼을 까 봐 겁나?”
하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느끼는, 사고하는 감정을 조금 더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세록을 생각할 때만 나오는, 특별한 값이었다. 하미는 이 값들을 소중히 여겼다.
“사실 이미 전화했어. 차표 예매도 했고. 주소는 이따 찍어줄게.”
하미는 따로 들고 온 감주에 쌀과자를 찍어 먹었다. 단맛 더하기 단맛은 단맛이었다.
오후 차 시간을 마치고, 하미는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았다. 하미는 아직 하미였고, 앞으로도 하미일 것이다. 그 사실이 하미를 따뜻하게 매만져주었다.
◑
아침부터 햇볕에 데워진 콘크리트 열기는 저녁이 되어도 가시지 않았다. 하미는 이무로부터 받은 교통카드를 들고, 열차에 올라탔다. 서울을 벗어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미는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낮은 키의 공장 창고, 논과 밭 따위를 바라보았다. 반려대상인이 세록으로 바뀌었고, 이제부터는 이무가 아닌 세록을 따라야 한다. 반려대상인 지정은 도난 시 다른 사람이 인공 반려체를 조종하여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예방하기 위해, 고안된 기능이었다. 하미는 새로운 반려대상인의 기호를 파악하기 위해, 과거 함께 살았던 시기에 저장해두었던 데이터를 재학습했다. 뜸하게 오갔던 음성 통화 내용도 학습 세트에 포함되어 있었다. 학습을 반복할수록 마지막으로 보았던 세록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세록의 집은 한서 외곽에 있는 맨션이었다. 20년 전에 지은 낡은 건물이었지만, 수도인 한서답게 임대료는 서울의 두 배였다. 복도에 중키에 고무나무 화분이 놓여 있어, 보행에 방해되었다. 하미는 화분을 들어 벽 끝에 바짝 밀어붙였다. 606호는 복도 끝에 있었다. 가장자리가 변색된 구리색 번호판은 세월의 딱지처럼 문 상단 가운데 박혀있었다. 카메라 렌즈에 잘 보이기 위해 문 앞에서 바른 자세를 취했지만, 방문자 스캐닝이 되지 않았다. 세록이 등록해두는 것을 잊었는지도 몰랐다. 하미는 조심스럽게 벨을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1분을 기다린 후 다시 벨을 눌렀다. 그러자 누군가 안에서 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미는 그 울림의 강도에 맞춰, 노크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떠났을 때보다 나이 먹은 세록을 기대했던 하미는 눈앞에 보이는 6살의 세록을 보고 놀랐다. 기억 속에 세록으로 저장되어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처음 이무의 집으로 왔을 때도, 지금처럼 어린 세록이 문을 열어주었다. 낮이었지만, 볕이 들지 않아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들어와!”
화장실에서 머리를 말리면서 진짜 세록이 외쳤다. 하미는 안으로 들어가 책상 옆에 서 있었다. 드라이어 소리가 그치고,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한 세록이 나타났다. 머리 끝이 덜 말라, 형광등 빛이 고였다.
“잘 지냈어?”
세록은 드라이어를 수건 바구니 위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물론, 너는?”
“죽을 맛이지.”
세록의 눈에는 붉은 기가 가득했다.
“아이를 낳았어?"
처음부터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아아이야."
“아아이라고? 그냥 넌데?"
"단성생식으로 했거든. 이름은 미토야."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미토가 조심스럽게 하미를 향해 다가왔다.
하미는 미토에게 악수를 건넸다.
"잘 부탁해요. 저는 하미, 오늘부터 같이 살 거예요."
"그렇게 공손할 필요는 없어. 이미 서열을 훈련시켜 뒀어."
세록은 미토의 어깨를 잡았다.
"내 친구야, 미토 인사해."
미토는 말없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랑 같이 침대에서 자면 돼."
침대에 걸터 앉으며, 세록이 말했다.
"세 명이서 자기엔 좁을 듯한데, 난 서서 자도 돼."
"아냐, 미토는 원래 바닥에서 자."
하미는 세록이 미토를 대하는 방식이 어색했다. 저항하려고 해도, 자꾸만 미토가 평범한 아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록에게는 인간과 아아이 사이에는 확고한 경계선이 있는 듯했다. 미토 역시 그 선을 넘지 않는데, 익숙한 것 같았다. 미토는 ‘바닥에서 자.’라는 말을 듣자, 방 구석으로 가 작은 매트에 앉았다. 매트 앞에는 사료가 담긴 민트색 그릇이 놓여 있었다. 미토는 조심스럽게 한 주먹 사료를 집어먹었다. 일상적인 행동에도 긴장이 서려있었다. 하미는 관찰한 부조화를 못 본 척했다.
다음날 아침 6시 세록은 일어나, 학교로 갔다. 집을 떠나기 전 세록이 부탁했다.
"잘 놀아줘. 워낙 일이 많아서 그동안 잘 못챙겨 줬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