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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 다이어 교수는 없었다. 자열은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록이 헛기침을 해, 존재를 알렸다. 기침 소리에 자열이 뒤돌아보았다.
마이크로바이움에 있는 미생물은 관찰과 동시에 사멸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각 개인은 다른 미생물을 지니고 있었기에, 한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움에 존재하는 미생물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존재할 것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생태학적으로 다른 조건에서, 미생물은 다른 군집을 이룬다. 어떤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움은 아마존의 열대우림과 같고, 어떤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움은 그린란드의 빙하와 같다.
연구실에서 진행 중인 실험은 한 사람에게서 특징적으로 진화해온 미생물이 타인의 마이크로바이움에서 세대교체를 반복했을 때, 다른 종으로 분화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지난 밤 켜두고 간 컴퓨터는 아직도 B형의 유전 정보를 시퀀싱을 해독하고 있었다. A형과 비교해 이종인지 판단해야 했다. 그 이전 실험에서 구한 데이터 세트에서 크랙이 났다. 오차가 심했다. 사실 이 연구는 오로지 다이어 교수의 고집으로 강행되고 있었다. 다이어 교수가 천재인 건 사실이었지만, 천재라고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다이어 교수는 그래봤자, 인간이었다. 한 인간이 다른 개체와 비교해 특출나다고 해도, 그건 인간의 테두리 안에서였다. 연구는 다이어 교수의 지적인 한계선 안에 있었다. 결과는 나오지만, 성과를 내기 어려운 연구는 현재 우선 순위에서 최하위로 밀려났다. 학문의 구도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개인 연구에 대한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번 랩미팅에서 자신의 연구가 유의미함을 증명해내야만 했다.
그에 비해 자열은 태평했다. 인생을 취미로 사는 것 같았다. 취미로 인생을 살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진 않았을까. 생각할수록 손해보는 주제인데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생각할 때마다 손가락이 구부러졌다. 무엇이라도 잡고 싶어서.
오전 9시 정각 나준이 기운 찬 목소리로 인사하며 본인 등판을 알렸다. 출근하자마자 나준은 가방에서 구움참외과자 세트를 꺼내 사람들에게 돌렸다. 세록과 자열을 발견한 나준이 달려와 과자를 던졌다. 세록은 한 손으로 받았고, 자열은 놓쳤다.
“집에서 푹 쉬고 왔어? 몸도 잘 챙기고, 그러다가 랩미팅하다 죽어!”
나준이 유난을 떨며, 말걸었다.
“가서 미토 밥은 줬냐? 너 막 굶기는 거 아니지.”
바닥에서 주운 구움 과자를 털어 입에 넣으며 자열이, 세록에게 말했다.
“사료통에 충분히 넣어뒀어.”
“사료통? 내가 미토라면 외로워 죽었을 것 같다. 너같은 주인 만나서. 하루종일 혼자 있을 거 아냐.”
“이제는 아냐, 친구가 있거든.”
“누구? 남자 친구. 같이 살아?”
나준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세록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상상력이 전개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고향 친구.”
“너한테 고향 친구도 있었구나. 친구는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서운하네.”
뒤틀린 농담을 자열이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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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하미는 다정하게 미토에게 인사했다. 미토는 반쯤 눈을 뜨고 부스스 일어났다. 하미가 온 지 3일이 지났어도, 미토는 아직 하미를 경계했다. 영역을 지키기 위한 견제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절벽 끝에서 버티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옷소매는 때로 찌들었고, 머리는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말도 하지 못했다. 결정적 시기를 놓친 게 분명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능력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하미는 오늘 다리를 건널 예정이었다.
“자, 미토 날 따라해.”
하미가 윗옷을 천천히 벗었다. 미토는 움직이지 않고, 조심스럽게 바라만 보았다. 하미는 다시 옷을 입고는 벗는 동작을 반복했다. 여전히 미토는 가만히 있었다. 하미는 세록의 책상으로 가 종이를 들고 와 네 칸을 그린 후, 각 칸 속에 옷을 벗고, 샤워하는 동작을 그려넣었다. 그러고는 하미가 가슴에 볼펜을 그은 뒤, 화장실의 문을 열어둔 채로 들어가 옷을 벗고 천천히 샤워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하미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볼펜 자국이 사라진 것을 미토에게 보여줬다. 옷을 갈아입은 하미는 다시 윗옷을 천천히 벗었다. 그제야 미토도 따라서 윗옷을 벗었다. 드러난 맨살에는 여러 군데 흉터가 있었다. 최근에 난 상처는 없었다. 짐작대로였다.
하미는 미토를 화장실로 데려가 씻겨주었다. 샴푸를 손에 짠 다음 거품을 내서 미토의 머리를 비볐다. 몸에 부드럽게 비누칠을 해주니, 간지러웠는지 미토가 움찔움찔거렸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기고 수건으로 물기를 완전히 닦아냈다. 다른 옷이 없어, 하미가 고향에서 들고 온 티셔츠와 후드를 입히고, 드라이기로 말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양갈래로 머리를 따았다. 거울 앞에 선 미토는 달라진 모습이 신기했는지, 큰 눈을 껌벅이며 보았다. 미토의 몸에서 좋은 향이 났다. 하미는 미토를 꼭 끌어안았다. 볼수록, 안을수록, 맡을수록, 세록과 겹쳐졌다.
늦은 밤, 세록이 지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저전력 모드로 쉬고 있던 하미는 외부 자극을 느끼자마자 깨어났다.
“마실 거 줄까?”
“아니, 괜찮아. 그냥 씻을 동안 태블릿 꺼내서 충전 좀 해줘.”
가방을 침대 아래에 던지고 세록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하미는 가방을 열어 쪽빛에 헤어라인이 그려진 태블릿을 꺼내어 책상 위 충전 패드 위에 올려두었다. 얼굴만 씻고 나온 세록이 태블릿을 열어 화면을 띄웠다. 공중에 입체 시각 자료가 떠올랐다. 빛에 반사되어 주변이 밝아졌다. 자고 있는 미토의 윤곽이 드러났다.
“씻겼어?”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걸 알아본 세록이 말했다.
“응. 더러워 보이길래.”
“고마워. 그렇다고 너무 신경쓰지는 마. 혼자서도 잘 있었던 애니까.”
하미에게, 그 말은 미토에게도, 세록에게도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들렸다.
세록은 3시간 더 자료를 만들고 나서, 잠들었다.
이불을 덮어주고, 하미가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