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그리고 나의 나 11화

by 설다람


저녁으로 메일리 버거를 먹고 있던 세록에게 메세지 하나가 왔다. 6만 달러가 입금되었다는 알림이었다. 뒤이어 메세지 하나가 더 도착했다.

[이전에 했던 말 농담인 거 알지? 가서 잔고 증명서 받고, 바로 돌려줘.

진실함을 담아,

자열이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비참해서, 다행이라서, 수치스러워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서.



세록보다 먼저 집에 도착한 하미는 곧바로 바닥에 앉고는 엎어지듯 미토를 안았다. 미토는 온기가 사라진 하미의 몸을 데우기 위해 꽉 힘을 주기도 하고, 빠르게 비벼보기도 했다. 하미는 가만히 미토의 온도에 자신이 맞춰지길 기다렸다.

"아바?"

갑자기 들린 음성에 하미가 고개를 들어 미토를 바라보았다.

"아바?"

미토가 말을 한 게 맞았다.

"응, 아파."

그 말을 듣고, 미토가 하미의 등을 토닥였다. '바'가 아니라 '파'야. 공기를 세게 내보내야 해. 따라해 봐. '파!'. '바?' 미토는 결정적 시기를 지났고, 언어를 배우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지금 나온 ‘아바’는 세록이 흘렸던 언어의 부스러기를 그러모아 빚어낸 작은 알맹이였다. 하미는 미토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말이 ‘아파’여서는 안 되었다.


상황이 나아진다면, 은밀했던 폭력들도 자취를 감출 것이었다.



서류 전형을 통과했고, 면접 일정이 잡혔다. 세록은 툭치면 자기 소개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제출한 지원서와 개인 프로젝트 보고서를 외웠다, 사이언스 포춘 연구소의 최근 연구 경향을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생을 뒤집을 유일한 기회라고 믿었다.


면접은 영상으로 진행되었다. 미팅방에 먼저 접속해 대기했다. 인터뷰는 정확히 정시에 시작했다. 면접관은 마흔 초반 대로 보이는 인도계 일본인이었다. 면접관은 간단하게 자기를 소개한 후, 곧바로 질문을 시작했다. 질문은 평이했다. 기초 지식 평가로 세균과 고균의 차이를 물었고, 장내 서식하는 미생물을 아는 대로 말하고, 특성을 설명해라고 했다. 다음으로 연구소가 하는 프로젝트 중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질문했다.

세록은 내성균 치료라고 답했다. 오랫동안 집중해왔던 연구 주제였다. 연구 계획서에서 읽었는지, 면접관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비즈 바이러스를 활용해 혈액장벽을 통과한다는 아이디어는 기발하더군요. 그렇다고 해도, 침투 후에 정상세포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할까요? 나노입자를 콘트롤하기엔 아직 부족해 보이는데.”

“사이언스 포춘 연구소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록의 말에 면접관이 미소지었다.



처음 말을 뱉은 이후로, 미토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하미는 미토가 ‘아바’라고 말했던 것이 꿈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반려체들은 과최적화 상태를 예방하기 위해, 종종 꿈을 꿨다. 특정 패턴을 과도하게 신뢰하지 않기 위한 장치였다. 판단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하미는 잠시나마 종속되어 있던 구문을 끊어냈다. 만약을 대비해, 휴대용 청귤 향수도 사두었다. 같은 일이 생겼을 경우, 결코 손을 대지 못하게. 이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하미는 새로운 주제로 이행했다. 미토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미토의 언어 수용 능력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말의 불씨가 아직 어딘가에서 꺼지지 않았으리라. 단언하듯이, 하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미토.”

자신을 부르는 말에 미토가 귀를 쫑긋 세웠다.

“너는 아아이야.”

하미가 미토를 가리키고 다시 말했다.

“자 ‘아’부터 해볼까.”

입을 크게 벌리고 하미가 성대를 모방한 진동관을 울렸다. 미토도 하품을 하듯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이’”

입을 양 옆으로 최대한 벌리면서 하미가 소리냈다. 미토는 하미의 입모양을 유심히 보고, 따라했다.

“합쳐서 ‘아-, 이.’ 해봐.”

“아. 이”

더듬거리고, 부정확했지만 발음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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