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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 노튼 Apr 12. 2022

자유냐, 노예냐

빅브라더는 가까이 있다

중국에는 천망(톈왕)이란 시스템이 있다.

천망 프로젝트는 하늘의 그물이라는 뜻으로, CCTV를 아주 촘촘하게 깔아 범죄자를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일반 카메라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안면 인식 기술을 적용한 최첨단 CCTV이다.

천망 시스템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과 차 번호를 통해 신상정보를 확인한다.

수억 개의 카메라는 도주범만을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민들이 자동차 경적을 울리는지, 무단 횡단을 하는지도 모두 지켜본다.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사회신용제도는 모든 위반 사실을 수치화하여 개인에게 불이익을 준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은 해외여행, 대출, 고용 등에서 손해를 받는다.

오프라인에 천망이 있다면, 온라인에는 만리방화벽이 있다.

특정 사이트와 정보, 검색어 등을 차단하고 삭제하는 시스템이다.

중국 정부가 민감해하는 위구르, 홍콩, 대만 문제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통제된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온 오세아니아는 멀리 있지 않다.


천망과 만리방화벽 속의 삶은 감옥에 있는 수감자와 같다.

자유에는 정신의 자유와 몸의 자유가 있다.

수감자가 몸의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이라면,

정보와 사상의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은 '정신적 수감자'일 것이다.

수백 년 전엔 반대파를 없애기 위해 물리적 힘을 사용해야 했다.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발전은 세련된 방법으로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있다.


개인의 생각을 지배하려는 시도는 비단 중국에서 일어나는 것만이 아니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백신 패스이다.

유럽, 미국, 아프리카. 전 세계 사람들은 백신 패스를 나치에 비유하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백신 접종에 대한 개인 자유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접종자와 비접종자로 나누어 분류하는 것은 파시스트적 정책이란 주장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코로나19 자체가 빌 게이츠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음모론자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백신 패스가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인의 입장에선 미국의 백신 반대 시위가 유난 떠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서양인들의 '유난'은 역사적 교훈에 근거한다.

나치가 처음부터 유대인을 학살했던 것은 아니다.

게르만족의 번영이라는 깃발 아래 개인의 자유를 야금야금 줄여갔다.

통제된 언론은 괴벨스의 선전술에 맞춰 움직였고

안보의 이유로 공산주의자를,

경제적 이유로 노동조합을,

보건 정책으로 장애인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가스실에 들어갔던 수백 만의 유대인들 또한 나치 초기에는 식당 이용을 제한받았을 뿐이다.

나치가 패망하고 5000만의 사람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사람들은 역사적 가르침을 얻었다.

모든 사람의 자유권의 침해가 아주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서구권의 백신 패스 반대는 파시즘에 대항하는 일종의 면역 작용인 셈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사례는 정말 특이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사생활 침해를 경험하였지만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백신 패스는 물론이고

CCTV와 신용카드, 핸드폰 이용 기록을 통해 확진자의 동선을 샅샅이 브리핑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심지어 부천시에서는 천망과 유사한 안면인식 CCTV를 이용해 확진자 동선을 파악하겠다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정부가 자화자찬했던 K-방역의 본질은 정부가 환자를 추적, 감시하고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자유의 통제를 대하는 태도는 서구와 완전히 달랐다.

파시즘에 대항하는 시민저항운동 대신, 정치적 공세와 저급한 음모론이 주류를 이뤘다.

집합 금지로 인해 헌금을 못 받게 생긴 일부 보수 교회 목사는 신도를 선동해 코로나 조작설을 퍼뜨렸고

과학자들이 수차례 검증한 백신에 마이크로칩이 들어있다는 가짜 뉴스도 널리 퍼졌다.


음모론자들의 활약(?) 덕에 개인의 자유권에 대한 건설적 논쟁이 진행되지 않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

 AI CCTV, 동선 추적 등에 대한 거부가 없다는 것은 중국의 천망 시스템을 언제 도입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얼마 전 윤석열 당선인은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밝히며 AI CCTV를 이용해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수 만 명의 사람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것이 어떻게 소통인가?

그게 어떻게 쓰일 줄 알고! 이런 추세라면 가까운 미래엔 전국에 상용화될지도 모르겠다.

작년만 해도 N번방 방지법의 하나로 전기통신사업법이 개정되어 카카오톡 검열이 가능해졌다.

이름은 N번방 방지법이지만, 문제 해결과는 전혀 상관없는 법안이다.

다만 합법적으로 범죄 혐의가 없는 개인의 카톡을 정부와 카카오가 볼 수 있게 되었다.

"죄 안 짓고 살면 상관없는 거 아니냐?"라는 반박도 있다.

진정한 자유는 정부의 호의 아래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야 괜찮을지 몰라도 미래에 새로운 지도자가 독재주의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픈 채팅방만 검열하는지 어떻게 믿나?

범죄 근절이 목적이라면 개인 카톡방도 검열하는 편이 효과적일 텐데, 나중에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

그럼 천망 프로젝트는 정말 선량한 중국인의 치안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는가?


권력은 본래 불확실함을 싫어해서 무엇이든 질서를 세우고 통제하려는 성격이 있다.

반대로 시민은 명령을 듣기보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성격이 있다.

규칙과 자유. 둘 중 필요 없는 것은 없다.

모두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선 서로에 대한 견제력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 서로 죽창을 날릴 수 있어야 한단 뜻이다.

정부가 유영철 같은 연쇄살인범의 사형을 선고하고, 시민들이 박근혜 정부를 탄핵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검열은 정부와 시민 사이의 균형을 깨려는 시도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각, 사상, 취향을 드러낼 자유도 있고 숨길 자유도 있다.

정신적 자유가 침해당할 때 시민은 권력에 대한 견제력을 잃고 노예가 된다.


모든 감시와 통제의 명분은 좋은 것들 뿐이다.

평화나 성착취를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시민들은 더욱 정신 차려야 한다.

본질을 탐구하고 부당한 간섭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것이 인류가 발전해 온 방식이고, 우리가 자유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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