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남기고 간 것
총력전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수단을 총동원하여 싸우는 전쟁이다.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시민은 국가를 지키길 강요받는다. 하지만 승리의 결실이 공평하지는 않다.
우리 교회도 총력전 중이었다. 교회 부도를 막기 위해 건축 헌금을 어떻게든 모아야 했다. 그 시작은 옆 동네인 운정동에 있는 세계로 교회였다. 가건물에 십자가만 겨우 달아 놓은 개척 교회로 시작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세를 불리기 시작하더니 돔 모양의 예배당에 옥상엔 풋살장까지 갖춘 6층짜리 건물을 세운 것이다. 우리 교회는 빨간 벽돌로 지은 3층짜리 건물이었다. 수십 년간 지역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해 온 목사님은 옆 교회의 신축 건물에 자존심이 크게 상한 듯했다. 그래서 새로운 예배당을 짓자고 장로님들께 강하게 건의했단다. 건축안이 통과된 주의 설교 시간에 목사님은 하나님이 도우실 거라고 말했다.
상황은 기도 내용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예배당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철거와 재건축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공사 납입금을 제때 내지 못한 것이다. 공사는 중단됐고, 건축 자재들은 방치된 채 나뒹굴었다. 이후 목사님은 설교 때마다 노골적으로 돈 이야기를 하셨다. 성경엔 자신의 전 재산인 은화 두 닢을 헌금한 가난한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목사님은 먹고살 만한 데도 교회를 돕지 않는 사람이 천국에 가겠느냐고 혼을 내셨다. 건축 헌금을 낸 신도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코너도 신설했다. "김철수, 박경순 집사 부부가 200만 원을 보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집사님의 이름을 기억할 것입니다."
병석이네 부모님은 잘 나가던 토스트 가게를 정리하고 권리금을 몽땅 헌금했다. "주님은 먹을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나에게 구하라! 열 배의 축복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철석, 박옥희 집사 부부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날 설교는 병석이 부모님 특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러 신도의 헌신으로 결국 교회는 완성됐다. 외벽을 모두 강화유리로 만들어 네이버 본사를 방불케 하는 8층짜리 건물이었다. 완공식 날엔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던 목사님의 작은 딸이 잠깐 귀국해 웃는 표정으로 신도들과 인사를 나눴다. 리본 커팅식을 지켜보던 병석이네 아빠는 몰래 눈물을 훔쳤다.
예배당은 세계로 교회보다 더욱 웅장한 돔 형태였다. 단상 위의 목사님은 광고 시간을 빌려 축하 소식을 전했다. "할렐루야! 우리 염포교회의 집사이자 제 막내딸인 이하은이 미국 애플사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언제나 도우시고 축복하십니다." 하지만 축복을 받기도 전에 병석이네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교회가 커지는 바람에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어 권리금이 훌쩍 올라버린 것이다. 병석이 아버지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