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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Apr 26. 2024

파리의 아침

Rue des Barres

아침 산책을 나섰다.

숙소가 생루이섬과 맞닿은 쪽이라 세느강을 따라 산책하기가 좋다. 세느강을 따라 쭉 걷다가 루이 필리프다리를 건너 오래된 건물이 많이 있다는 Barres골목으로 들어섰다.

우리말 지도로는 바흐 가라 명칭 되어있는데 금방 끝이 난다.

학교 가는 애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ᆢ학교 가는구나.

학교 가는 아침을 기억해 본다.


금방 끝나버리는 바흐가 골목을 벗어나 대로로 들어서니 파리 시청 건물이 보인다. 여름에 있을 올림픽으로 분주할 것이 홍보 장식물로도 대략 보인다.

파리 혁명 중 파괴된 교회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saint -Jacques 탑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되짚어오니 바흐 가는 더욱 빨리 끝이 나버린다. 파리에서 오래 살았다는 어느 작가가 세느강으로 가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해서 지도에 표시해놨는데 너무 짧다. 그 골목 끝에 있는 카페에 들어와 커피와 크로와상을 시키고 창 밖 분주한 파리를 본다.

밤이면 마치 축제처럼 세느 강변에 주황 불빛들을 홀리듯이 켜놓고 에펠탑까지 전신을 밝히며 여행자들의 넋을 잃게 만들지만, 아침은 이렇게 가차 없이 온다.

누구는 강변을 조깅하고 누군가는 가방끈을 조이며 출근하고 거리를 청소하는 손길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자전거들은 연신 씽씽 목적지들을 향해 달려간다,


파리에 도착한 날 밤에 세느강에 나가서 노을에 물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래서 다들 파리 파리 하는구나 싶었다.

저녁 9시가 되는 순간 마치 신데렐라 호박 마차 나타나듯 에펠탑이 하얀 조명으로 반짝 거리며 켜졌다. 화이트 에펠.


팬데믹으로 모두의 발이 묶이고 학교도 문을 닫았을 때 연금되듯 있던 시간에 여행책들을 읽었다. 그때 파리 단상들을 읽으며  언젠가 가려나 하며 지도에 많이 저장해 놨다. 특히 세르방도니 거리에 대해 브런치에 글로도 남겨놨었다.

https://brunch.co.kr/@sun3330/15


그 세르방도니 거리를 드디어 찾아갔다. 관광자들은 절대 찾아오지 않을 무명의 거리 같은 세르방도니.

일부러 찾아간 것이 아니고 유명한 마고 카페와 플로라 카페를 찾아갔다가 버스 내린 곳이 생쉴피스 성당인 것과 그 분수대를 보고 떠올랐다. 그 분수대 앞 작은 길 하나가 세르방도니인 것이.

그 조용하고 짧은 길을 걸으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올라왔다. 그곳을 가기 전 바로 보쥬 광장에 있는 빅톨 휘고의 집을 봤고 그의 소설 속 주인공 장발장이 살았다는 세르방도니 거리를 온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뭔가 마음속에 담아두면 의식 밑에 내려가 있다가 언젠가는 현실로 드러난다는 그 시크릿 매직 같은 것이 진짜 있나 .


게다가 그 거리를 지나 팡테온 옆 우연히 들른 성당에서는 소프라노 노랫소리가 들렸다. 미사를 이리 드리나 싶어 기어이 앞쪽까지 나가서 자리 잡고 앉았다. 말을 알아먹지 못하지만 신부님이 향로를 흔들며 축복을 하고 사람들이 나가서 줄을 서기에 흔히 미사과정에 있는 의식인 줄 알고 용기를 내서 나가 줄을 섰다. 평상시 유럽성당에서 미사를 참석하더라도 그 의식에 나가지는 않는다. 순전히 그 소프라노가 그때 슈베르트 아베마리아를 부르고 성당 울림이 너무 좋아 눈물이 흐를 정도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가서 앞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자 싶었는데 나가보니 제단이라 생각했던 것이 관이라는 걸 알았다. 어떤 할머니의 장례식이었고 다들 관을 향해 성수를 뿌렸다. 할머니의 가족이거나 지인일 사람들이 할머니를 추억하며 마지막 축복을 드리는 그 순간에 빨간 스카프까지 두른 누가 봐도 성당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그 자리까지 간 것이다. 뒤로 빠지긴 너무 늦었고 더구나 뒤에 초로의 신사분이 제일 뒤에 서려던 내게 자리까지 양보해서 나를 세운 터라 나는 성수를 십자가 모양으로 뿌릴 수밖에 없었다. 그 황당한 순간 속에 눈물은 왜 주착 맞게 흐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 할머니 가족들이 보기에 얼마나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었을까. 왠 동양 여자가 느닷없이 나타나 그렇게나 할머니를 추도하며 빨개진 눈으로 성수까지 뿌리니 할머니 숨겨놓은 딸이나 되지 않을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이게 모두 다 그 소프라노 때문이다. 슈베르트 아베마리아가 나오면 미사가 아닌 줄 알았어야 했는데 그 소리에 홀려 그렇게 까지 갔던 것이다.

장례식 끝나고 민망해서 그 유가족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성당밖으로 못 나가고 구석지에 계속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와 전생에 인연이 있었으리라고 꼭 내가 그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했어야 했을 거라고 우기듯이 정리했다. 그래야 덜 부끄러울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성당이 바로 영화 <Midnight in paris>에서 주인공 남자가 올드카를 얻어 타고 과거 속으로 가던 그 지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성당 옆쪽 계단에서 그 남자는 매일 밤 그 차를 타는 것이다.

Eglise saint- Etienne-du mont 성당


연보라색 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내가 무슨 매직에 걸린 것 같았다. 이렇게 우연히 마음속 담아두었던 곳을 오게 되다니. 그 영화 속 주인공도 그 매직 속에 들어가 본인이 그동안 만나보고 싶었던 작가들을 실컷 만난다.


그 동네 산책의 마지막 지점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에서 한국책을 하나 샀다. 안톤 허의 에세이를 읽었던 터라 그가 번역한 백세희 작가의 책을 골랐다.  그 서점에서 그 책을 선택해서 추천하고 있는 것이 흐뭇했다.

I Want to Die but I Want to Eat Tteokbokki.

한국에서라면 안 샀을 책을 샀다.


이 서점 주인덕에 제임스 죠이스는 율리시즈를 출판할 수 있었고 헤밍웨이는 책을 빌려보며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서점에서 나와 퐁네프 다리를 지나다 그 밑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출렁이는 파리의 불빛 속으로 같이 흘러가며 오랜만에 그 시도 떠올려 봤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다들 그 시를 가슴속에 품었던 한 시절이 있으리라.


페흐 라쉐즈 묘지에서 기욤 아폴리네르 무덤을 찾아보았다.

세월은 흐르고 시인도 가고 하루 지나는 객이 무덤을 바라본다.

이 묘지도 세르방도니 거리를 지도에서 찾아보던 날 더 먼저 저장했던 곳이다. 프루스트와 쇼팽 무덤에 가서 내 존경과 사랑을 가득 두고 왔다.

상대적으로 초라하던 모딜리아니 무덤엔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의 여인이 있었다.

목이 길고 눈이 텅 빈 여인.


파리 ᆢ

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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