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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Oct 06. 2023

어떻게 놀까?

걷고 또 걸으며

포르투갈엘 왔다.

어제 포르투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북대서양 바닷길로 종일 걸었다. 7시간쯤 걸어야 하루의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포르투 시내를 벗어나니 본격적 나무 데크길이 시작되며 줄곧 푸른 대서양바다만 보며 걷게 된다.

아무리 간단히 쌌다 해도 이십여 일 살아야 할 짐이 들어간 배낭은 점점 무겁다.

10월의 햇볕은 따갑고 바다엔 아직도 한여름 휴가철인가 싶게 사람들이 많다. 모두들 최소한으로만 입고 모래사장에 철푸덕들 누워있다. 서양사람들은 피부가 빨리 늙어 구릿빛으로 주름지고 바다사자처럼 흘러내린 피부를 아무렇게나 모래 위에 두고 햇빛을 즐긴다.

한가하고 여유로워 보이며 무엇보다 아무 걱정 없이 자연 속에 안겨있는 것 같다.

나는 선크림도배에 챙이 큰 모자, 팔토시에 장갑까지 햇볕 앞에 무적함대처럼 무장하고 걷는데 끝없이 누워있는 바닷사자들을 보니 내가 뭐 하나 싶어 진다.

다들 놀자고 온 것 같은데 왜 저 바다에 나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뗏짐지고 걷기만 하고 있는지.

그냥 나도 배낭 모래에 처박아버리고 수영복 없어도 속옷만 입은 채로 바다 첨벙첨벙 들어가면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든다. 다들 놀자고 하는 건데 나는 왜 이런 형태를 선택했지?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지나오며 의문의 1패를 하는 기분이다.

동행들과 어서 빨리 가서 숙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 또 걸음을 멈추면 다시 걷기가 더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 빨리 도착해서 개안하게 씻고 놀자는 생각으로 걷기만 했다. 출발이 늦은 데다 점심시간이 길어진 탓에 결국 해 질 무렵 목적지에 도착하고 순례자들이 간다는 알베르게는 모두 들어차 갈 데가 없다. 더는 못 걷겠다 싶게 지쳤는데 다시 숙소잡으로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녀야 한다.

결국 해변가 호스텔을 잡았는데 도착하니 저 길 끝 바다에 해가 진다. 일찍 닫아버리는 귀한 마트에서 먹거리라도 얼른 사자 싶어 배낭만 두고 뛰어가니 마트는 닫혀있고 다시 돌아오니 해도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그자니 이미 어둡다.

다들 놀자고 하는 일인데 나는 이리 놀고 있다.

시차 때문에 새벽 세시에 잠이 깨였고 이 글을 쓰며 해 뜨면 바로 바다에 가볼까 생각 중이다.

오늘부터는 해변길이 아닌 센트럴 루트로 가기 때문이다.

이 대서양 바다를 떠나면 언제 올지 모른다. 제주도 바다보다 예쁘지도 않은 이 대서양에 언제 뛰어들겠는가.

옷이 두 개뿐이라 뒷계산은 안되지만 ᆢ


우리나라 시골길도 다 안 걸어봤는데 뭐 비행기 타고 멀고 먼 대륙 끝까지 와서 이리 시골 길들을 걷는가 싶기도 하고 ᆢ

아직은 왜 여기서 이리 줄창 걷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인의 꾐에 빠져 왔으니 걸어보자.

단, 놀면서 걷자.


나는ᆢ순례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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