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이야기
바니는 고양이 중성화 수술 후 수술부위 실밥을 제거하기 전까지 환묘복을 입고 있었다. 수술실 밥을 풀기 전까지 환묘복을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해서 입혀뒀다. 바니는 조금 갑갑해하는 눈치였지만 억지로 벗으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환묘복이 붕대 같은 재질로 되어있어 고양이가 그루밍을 하자 실이 한 올 한 올 일어났다. 고양이 혓바닥에는 도돌도돌한 돌기가 있어 환묘복이 조금씩 뜯어진 것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겨 그대로 두었다. 그러다 큰일 날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바니가 격하게 그루밍을 하다가 뜯어진 실밥에 아랫니가 걸린 것이었다.
턱이 빠질듯한 모습으로 치아가 환묘복에 걸리자 바니는 당황해 하기 시작했고, 나도 놀라서 황급히 다가서자 그 모습에 더 놀라 잡히지 않으려 도망가기 바빴다. 겨우 진정시키고 치아에 걸린 실밥을 가위로 뜯었고 바니는 안정을 취하는 듯했다.
나 : 어휴.. 큰일 날 뻔했네. 저 환묘복 위험해서 안 되겠다. 내가 새로 하나 만들어 줄게!
난 안 입는 레깅스를 찾아 다리 부분을 자르고 4개의 구멍을 뚫었다. 대충 사이즈가 맞겠지 하고 입혀봤는데 구멍을 작게 뚫었는지 움직임이 불편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레깅스의 나머지 부분도 잘라서 새로 구멍을 뚫고 있는데 바니는 붕대 재질의 환묘복에 또다시 이빨이 걸렸고 난 빛의 속도로 환묘복을 제작해서 새로 입혔다.
입히고 보니 카오스 무늬 바니에게는 아이보리색보다는 브라운 색상의 환묘복이 잘 어울렸다.
어느 날은 외출 후 돌아왔더니 너무 편안하고 개운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왜 바니가 좀 달라 보일까? 하고 의아해했는데, 옆을 보니 살포시 옷을 벗어놓고 자유를 얻은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것이었다.
순간 난 당황해서 고양이 수술 부위부터 살폈고, 다행히 실밥은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날부터 저녁마다 환묘복을 벗기고 그루밍 시간을 주기 시작했다. 지켜보며 기다렸다가 그루밍이 다 끝나면 다시 환묘복을 입히기를 반복해줬더니 바니는 더 이상 환묘복을 억지로 벗지는 않았다.
드디어 대망의 실밥 푸는 날이 다가왔고, 바니는 씩씩하게 실밥을 풀었다.
병원에서 중성화 수술 후 혹시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특별히 바뀐 점은 없고 말이 좀 많아진 거 같다고 얘기했다. 어찌나 옆에서 냐옹냐옹 냥냥 거리는지.. 발정 왔을 때의 그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우는 건 없어졌지만, 종일 옆에서 냥냥 거린다고 얘기했다. 나한테 따지는 건지 말을 거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다 얘기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그냥 웃으면서 아무 문제없는 거 같다며 안심해도 되겠다 했다.
바니는 중성화 수술 후 특별히 달라진 점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다만 수다쟁이 고양이가 되어서 내 옆에서 쉴 새 없이 무슨 말인지 모를 냥냥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