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일이 나 버렸다는 구만.덕천강 그 회오리 도는 데 안 있나.뱅글뱅글 돌아가 언젠가 사람 잡아 묵으끼라는.귀신 나오는 데라꼬 그리 가지 말라캤는데 결국 말 안 듣고 갔다가 어떤 외지 사람이 죽었다 안 카나.”
동네 아줌마들이 여기 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어린 나에게도 들렸다.나도 그곳을 안다.아니 우리 동네 사람들이면 아마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그곳은 초,중,고등학교 소풍을 꼭 1년에 한 번은 가야해했던 곳,그래서 질리도록 많이 갔던 곳.너무도 익숙한 그곳이 언제나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그 회오리 때문일 것이다.그 강은 언제나 여름이면 사람이 북적거린다.봄,가을이면 여러 학교의 소풍지로 북적거린다.그런데도 그 강은 외로움을 안고 있다.그 강은 작은 동산 하나를 안고 있다.그 동산에는 암자가 있다.난 그 암자에서 스님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늘 녹음된 경소리가 들릴 뿐 인적이 없었다.강 둑을 따라 가다보면 그 동산이 나온다.동산에 있는 작은 암자에 가려면 한 사람 정도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시멘트로 된 다리가 있다.아래를 쳐다 보면 꽤 높은 시멘트 다리다.난 그 다리를 한번도 건너가 본 적이 없다.그 암자는 내가 수학여행 때나,어디 유명하다고 놀러가 본 절들과는 사뭇 달랐다.종교의 거룩함이랄까,평온함이랄까,그런 것이 없고,어린 나에게,아니 지금 그 곳을 떠올려 보아도 어쩐지 한기가 도는 그런 곳이었다.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개구쟁이 내 친구들도 한번쯤 그 암자에 가볼 만도 한데 대부분의 친구들은 절대로 그 다리를 건너지 않고 그냥 지나쳐 동네로 갔다.소풍 때 몇몇 아이가 도저히 큰 볼일을 참을 수 없어 그 절에 간적이 있었다.그런데 그곳에서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그런 빈 암자를 우린 왜 그토록 무서워했던 걸까? 아마도 그 회오리에 얽힌 전설같은 이야기 탓도 있을 것이다.실제로 그 회오리는 그 전설같은 이야기가 진정 사실일 것이라고 확신이 들게끔 하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회오리의 지점을 분명히 본 적이 있다.동산을 굽어 돌아가는 강줄기의 세기가 급속하게 휘돌며 빨라지는 지점,동산과 연결되는 큰 바위들이 마치 그곳을 지키는 파숫꾼처럼 사납게 서 있는 지점.그 바위들에 올라가 발을 잘못 딛기라고 하면 곧장 그 회오리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위태한 지점.
어느 여름에 덕천강에서 멱을 감다가 튜브 공을 놓쳐 버린 적이 있다.오빠들이 너도나도 강물을 따라 수영을 하며 그 공을 따라 갔다.그런데 생각보다 공은 너무 빨랐다.공은 급기야 오빠들을 앞서 그 지점에서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빠르게 한 바퀴를 돌면 빠져나올 듯 하다가 또 돌고,빠져나올 듯 하다 또 돌고…….그러기를 수백번, 수천번.어느 누구도 더 이상 헤엄쳐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공이 돌기 시작하자,강물에 밀려 몸이 떠내려 가면 다시 멈췄던 그 자리로 돌아오고,또 밀려 떠내려가면 그 자리로 돌아와 돌고 있는 공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그 지점을 공이 알아서 벗어나 주길 바라며.그 공을 찾으러 간 오빠들도, 그 오빠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내 친구들도 왜 더 이상 그 공을 찾으러 내려가지 않냐며 따지는 이 하나 없이 조용히 그 공을 보기만 했다.결국 우리는 그 공을 포기했다.날이 어스럼해질 때까지 우리는 그 공을 포기하지 못해 회오리를 째려보다,놀다가를 반복했지만 결국 그 공을 구할 순 없었던 것이다.그 시절에 그 튜브 공은 우리들에게 매우 귀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말은 안했지만 모두 다 그렇다고 물귀신에게 잡혀갈 순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의 전설은 누구나 다 안다.누구한테 들었는지,누가 가장 그 얘기를 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그저 태곳적부터 아는 듯,누구나 다 알고,누구나 다에게 금기시 됐던 곳이다.소풍 때도 선생님들은 계속 동산 아래 바위들한테는 가지마라고 신신당부를 했다.어떤 이들은 그곳이 그냥 위험하니까 물에 빠질까봐 어른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했다.회오리에 무슨 귀신이 있냐며,순 거짓말이라고 했다.난 사실 그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어른들은 늘 우리를 조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으니까.
그곳엔 물귀신이 산다.한 번 작은 발이라도 잡으면 절대 놓지 않아서 물 안으로 반드시 끄집고 간다.정확히 몇 년도인지,누군지 모르지만 어떤 아이가 그 귀신에게 끌려갔다느니,그래서 그 아이를 찾으러 간 그 애의 아빠도 끌려갔다느니 하는 전설 같은 소문.누구도 내가 직접 봤다고 한 사람은 없지만 누구나 진실이라고 믿는다.그렇듯 흉흉하게 그 옛날 어느 때에 연신 사람이 죽었는데 단 한번도 시체를 찾은 적은 없다는 것이다.
덕천강은 강 바닥이 돌로 되어 있다.물론 강 가장자리도 돌로 되어 있다.그래서 우리의 여름 일과는 멱감기 말고도 그 돌들에 가득 붙어 있는 고동을 줍는 것이다.커다랗고 투박한 수경을 눈에 대고 고동을 주워 한아름 들고 엄마한테 가져다주는 기분은 그야말로 일품이다.누가 같은 시간에 가장 많은 고동을 줍는가는 우리에게 큰 관심거리였다.나는 지고는 못 사는 아이라서 사생결단으로 고동을 주웠다.그래서 단연 고동 줍기 대회는 내가 늘 1등을 차지 했었다.저녁에 그 고동을 넣고 엄마가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주셨다.가난했던 시절,나물이 아닌 다른 반찬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단 사실이 즐거웠다.된장찌개의 국물 맛 같은 건 그 어린 나이에 잘 몰랐고,그 된장찌개 사이사이를 풀숲을 헤매듯 고동을 찾아 흰 쌀밥에 올려 먹는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그래서 가끔 마트에 하얀색 스티로폼 팩에 눈꼽만큼 담긴 다슬기라고 쓰여진 그것을 사와 마트에 파는 된장을 풀어 엄마가 해 준 그것을 흉내 내어 본다.호박이며 요것 조것들을 썩썩 썰어 넣어 된장찌개를 끓여보면 그때 그 고동으로 만든 것과는 내 허벅지에 있는 작은 점만큼도 흡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