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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n 02. 2024

만약, 어려지는 약을 판다면?

대신 조건은..

"뭐야, 귀여운 척하는 거야?"


모니터 앞에서 볼에 빵빵하게 바람을 불어넣은 나를 보고 동료가 말했다. 평소 같으면 바로 반격에 나섰겠지만 나는 짱구 같은 볼을 한 채 고개만 한 번 끄덕일 뿐 전쟁에 응하지 않았다. 밀면 밀린 만큼 가서 밀고 왔던 터라 동료는 눈을 반짝 거리며 나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귀여운 척' 정도로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사실을 말한다면 그때부터 더욱 신경 쓰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볼에 바람을 넣고 가글 하는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자제했지만, 혼자 업무를 보거나 대중교통을 기다릴 때면 의식적으로 볼을 부풀렸다. 그동안 긴가 민가 했던 '그것'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걸 깨닫고 나서 생긴 습관이다. 그게 뭐냐고?


바로.. 팔 자 주 름 !


나는 남이 동영상으로 촬영한 내 모습을 보자마자 영상을 정지시켰다. 거슬리는 게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그 모든 걸 압도하는 건 단 한 가지, 팔자주름이었다. 나무에 나이테가 있다면 사람에겐 팔자 주름이 세월을 나타내는 흔적이 아닐까. 나는 어느새 너무나도 뚜렷한 팔자주름을 갖고 있었다.


노화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일찍 겪었다.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스스로를 '다 자란' 어른으로 생각했고, 20대도 금방 지날 거라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다 보니 성숙하지 못한 상태로 나이만 찰까 봐 항상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서 답을 찾고 싶어 했다.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들과 친하게 지냈고 학교 기숙사 경비 아저씨와도 수다를 떠는 사이가 될 정도였다. 지하철을 타면 노약자석 근처에 서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거나 표정을 엿보기도 했다. 진정한 어른에 대한 동경이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양가적 감정에서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스를 없는 세월을 수용해 가는 나만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은 생각보다 쉽게 성장하고 쉽게 늙었다. 나는 '젊꼰'(젊은 꼰대)로 불리기도 했고 삼십 대가 넘어가자 '요즘 애들'이라는 표현도 종종 썼다. 추한 아집이 생기지 않도록, 적어도 지난 나의 시간들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만 나이를 먹고자 노력 중이다. 하지만 외모는.. 어쩌지..?


외모에서 변화가 오자 크게 신경이 쓰였다. 나는 타고나길 머리숱이 많고 피부가 건강한 편이었다. 무시무시한 '에이징커브'(aging curve)가 오기 전까지는.... 에이징커브는 스포츠 선수가 나이 들면서 능력이 감퇴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요즘은 피부나 신체 등이 급격히 노화하는 기점을 표현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나는 대체 언제 에이징커브를 맞은 걸까. 늘 자만이 문제다. 자만이 오만이 되고 오만은 오답을 만드는 법. 집안 곳곳에 수북이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과 푹 패인 팔자주름이 특히 그걸 증명했다. 팔자주름은 내가 환하게 웃는 순간까지도 날 통제하려 들었다. 기분 탓인지 웃을 때마다 피부 속으로 진하게 파고드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대체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니..)


오랜만에 외장하드를 꺼내서 지난 사진들을 되돌아봤다. 작년, 재작년.. 그리고 20대, 학생 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나는 슬펐다. 어린 나는 피부에서 빛이 나고 눈빛이 밝았다. 수줍은 몸짓이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조차 귀여웠고, 길게 늘어뜨린 웨이브진 머리카락은 윤기가 흘러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내 안에 바다가 있었다.


얼마 전 누군가 내게 물었다.


-어떤 약을 먹으면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럼 먹을 거야?


10년 전. 어리고 아름다웠던 그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번지는 그 날들. 잠깐의 고민 후 입을 떼려는 순간, 뒤따라오는 질문이 나의 대답을 가로막았다.


-대신 지금의 기억은 다 사라진 채로 돌아가는 거야. 그래도 먹을 거야?


오히려 문제 풀이가 쉬워졌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그다지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30년 넘게 살아왔으면서도 여전히 내 스스로가 밉고 낯설고 가까워지기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소중하다. 보잘것없지만 여기까지 크는 것도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더 자주 팩을 하기로 결론지었다. 그리고 오늘이 제일 젊으니 오늘 더 많이 웃고 행복하고 추억을 남기기로. 앞으로 10년 뒤에는 오늘의 나조차 정말 그리울 테니, 나의 바다를 잘 끌어안고 있어야지. 그 안에 많은 것들을 깨끗이 품고 시원하게 파도치며 살아야지! 철썩철썩.  

5년 전 내 머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빽빽하고 빈틈 없는 머리 숱.. 돌아와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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