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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n 01. 2024

'갓생'에 대하여

난 사실 거의 갓 태어난 생

V 퇴근하고 자기 계발하는 시간을 갖는가?

V 운동을 하는가?

V 독서, 미술관 관람 등의 문화생활을 하는가?

V 새롭게 배우는 것이 있나?

V 정신적 성숙을 위한 수련을 하는가?


'갓생러'란 이런 걸까. 맹목적인 소비보다는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갓생 살이가 유행이다. 트렌드 치고는 지나치게 모범적이고 어려운 게 아닌가 싶지만, 사실 그냥 '생'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종종 부끄러워진다.


나도 매년 한 해의 계획을 세울 때면 자기 계발을 꼭 포함시킨다. 불필요하게 소비하는 시간을 아껴서 공부나 운동, 독서를 하기로 한다. 인격적 성숙을 위한 계획도 넣는다. 남 흉보지 않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등등. 하지만 나는 대문자 P. 내가 다 못 지킬 거란 걸 안다. 하하..


그래도 모든 계획을 무시하진 않았다. 결혼 준비할 때는 다이어트를 연중 계획으로 삼았고, 이사를 앞두고는 일정 금액 모으기도 했다. 잔잔하게 계속해야 할 것들은 생각이 나는 대로 적당히 했다.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날 쯤이 되면 일 년을 되돌아보면서 잘했던 일과 아쉬웠던 일을 정리해보기도 했다.


나에게 계획이란 지키지 못하면 아쉬운 것이지, 엄청 속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나치게 목표 지향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갓생러 천지다. 지인들만 봐도 그렇다. A는 새벽에 일어나 공복 운동을 하고, B는 매 끼니 샐러드를 챙겨 먹고, C는 퇴근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이직을 위한 이력서를 쓴다.


이게 다가 아니다! D는 블로그, 티스토리 등 다양한 채널을 운영하면서 용돈 벌이를 하고 E는 직장 생활을 하며 박사 공부를 하고 있다. F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각종 공모전에 도전하고 있고, G는 세컨드 잡으로 무인샵을 운영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알이 꽉 찬 석류가 떠오른다.


나는 이렇게 사는 이들을 보면 빨갛게 익은 석류를 마침내 알알이 수확하는 상상이 든다. 새콤 달콤한 알갱이들을 한 데 모아 면보자기에 넣고 쭉 짜내면 붉고 생기 넘치는 과즙이 시원하게 흐를 테지. 얼마나 뿌듯할까! 내가 이들이 부러운 이유는 단순히 부지런함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생기가 질투 난다.

갓생 살겠다면서 자전거 타고 출퇴근했더니 백팩 멘 자국 그대로 땀 남.


나는 열심히 무언가를 하다가 금방 관둬버리기도 하고, 애초에 죽기 살기로 뭔가에 도전하는 일도 드물다.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친구는 말했다.

"난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은 중요하지 않아."


무엇이든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똑 부러지고 야무진 친구였고 실제로 본인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반면 나는 어떤가! 난 결과도 과정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가 좋으면 하는 거고 마음이 동하면 움직인다. 물론 먹고사는 일에서도 그렇게 태평하진 않다. 일은 바짝 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발도 동동 구른다. 하지만 내 인생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의 독기를 찾아보기란 모래사장 위 바늘 찾기다.


나는 악동뮤지션의 노래 '라이의 꿈'을 좋아한다. 계란 후라이처럼 후라이팬 위에 널브러져 있고 싶을 때가 많은, 갓생러가 아닌 걍(그냥)생러. 난 좋아하는 일만 하는 후라이다. 좋아하는 일은 열과 성을 다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은 후라이처럼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일 때가 많다.


업무를 할 때도 편식을 하는 편이다.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일을 찾고 거기서 성과를 낸다. 그래야 계속하니까! 집안일도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가장 열심히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도 함께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편집해 공유한다. 모자랄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은 꼭 내 차지여야 한다.


물론 나도 그닥 후라이 같은 내 모습이 맘에 들진 않는다. 주위 갓생러들을 보면 그들은 후라이가 아니라 야생 닭 같다. 누구보다 빨리 깨어나 목청껏 울고 열심히 돌아다니는 건강한 닭. 그에 비해 나는 멍 때리거나 늘어져 있거나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영양제와 샐러드 챙겨 먹기, 운동하기, 바로 치우기, 공부하기 등등. 매일 계획만 세우고 열에 아홉은 실패한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좌절하고 우울해하기도 한다. 갓생러만이 세상을 제패(?) 할 것만 같고 나는 그저 엑스트라로 살아갈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


나도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도 멋지게 살고 싶은데! 그래도 좋아하는 걸 계속해서 차지하다 보면 언젠가는 부화하지 않을까 하는 설렘을 갖고

오늘도 후라이는 닭을 꿈꾼다. 꼬꼬댁.. 흑.

난 오늘도 ㅍㅓㅈㅕ있고 싶ㄷ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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