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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May 26. 2024

반존대 좋아하는 사람?

일단 나는 아님.

                  '연하 반존대 설렘 포인트'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유튜브 쇼츠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제목의 영상을 종종 만난다. (내 알고리즘에서 왜..?) 대부분 예쁘거나 잘생긴 쪽이 연하 역할로 나와서 반존대를 시전하면 그걸 당하는(?) 상대방이 심쿵해서 호감이 생기거나 썸이 시작되는 그런 내용. 예를 들면,


"00씨 바빠요? 나랑 밥 먹자."


뭐 이런 식. 반존대란 말 그대로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하는 건데, 존댓말을 쓰다가 가끔 반말을 쓰면 그 부조화에서 오는 당황스러움이 심쿵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다. 서로 호감이 있거나 호감을 가질만한 사이라면 반전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할 터다. ('이렇게 훅 들어온다고?')


하지만 사회에서라면 어떨까?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반존대 화법'을 쓰는 사람을 정말 많이 봤다. 그리고 최근 들어 확실히 알았다. 나는 뼛속까지 'K-예절'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A 후배에 대한 얘기다. A와는 업무적으로 몇 번 동선이 겹치면서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 정도가 되었다. 어쩌다 한 번 마주치면 반가웠고 잘 지내는지 가끔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호감이 있는 상대에겐 앞뒤 재지 않고 먼저 연락해서 밥이든 커피든 먹자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희한하게 A와는 굳이 단둘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최근 A와 밥을 먹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반존대!


나는 A가 존댓말 사이사이 툭툭 내뱉는 반말이 불편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였는데 A는 그중에서도 막내였지만 모든 선배들에게 반존대를 했다. 나는 시작과 끝을 중요하게 따지는 편이다. 연애도 '오늘부터 1일!'이 아니고서야 손잡는 것도 꺼렸고, 나보다 연차나 나이가 많은 상대에겐 허락 없이 말을 놓지 않았다.


말을 놓는다는 건, 관계에서 들고 있던 무거운 짐을 놓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오래전 인기를 끌었던 예능 프로그램 <쟁반 노래방>에선 노래 가사를 틀리면 머리 위로 쟁반이 떨어진다. 쨍! 긴장이 되면 알던 것도 틀리기 마련인데, 말을 놓으면 조마조마하게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좀 덜 맞는 느낌이다. 물론 실수하면 언제든지 머리 위로 쟁반이 떨어지는 건 똑같지만.

2000년대 K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 노래를 부르다가 가사를 틀리면 저렇게 머리 위로 쟁반이 꽝 떨어짐!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친해지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확실히 시작부터 말을 놓으면 급속도로 친해지긴 한다. 첫 만남에서 먼저 말을 놓자고 해줬던 언니와는 지금도 가깝게 지낸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사회생활은 또 다르지 않나?!


생각보다 반존대 버릇이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존댓말을 섞어 하기 때문에 지적하기도 애매하고, 상대가 반존대를 하는 순간 호감이 식는 바람에 굳이 지적할 일도 없었다. 계속 볼 사이라면 걱정 어린 조언을 해줬을 텐데… A와 그럴 사이는 될 것 같지 않아 선 긋는 걸 택했다. A의 화법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00 세미나 가세요? 끝나는 시간이 너무 애매하지 않아?
-그거 맛있어? 여기 맛 괜찮다.
-저도 그랬어요. 근데 생각하기 싫어.
-왜 그래? 어쩐지 좀 그랬어.


나는 연차가 꽤 어린 A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했다.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런 면에서 존댓말은 지나치게 고리타분한 면이 있긴 하다. 가끔 해외에 나가면 남녀노소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는 언어가 더 깔끔하고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굳이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려야 하나 싶은 순간도 있고, 지나치게 대접해 주길 바라는 선배를 보면 존중하는 마음이 확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를 충분히 모를 땐 존대가 답이다. 연차와 직급, 나이 등이 존재하는 사회 속이라면 예의 차리는 게 그렇지 않은 쪽보다 훨씬 남는 장사다. 사회생활 10년차, 예의 없는 사람은 꼭 한 번은 손해 볼 일이 생기는 걸 종종 봤다. 소문이 나거나 기회를 잃는다.


문제는 반존대를 쓰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본인의 화법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신경 쓰이는 사람만 쓰인다. 그래서 가끔 헷갈릴 때도 있다. 나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동그라미나 세모 정도일 수도 있으므로. 정답은 없기에 난 반존대를 속속 피해 다니는 편이다.


나이가 들고 연차가 더 쌓이면 반존대 정도야 가볍게 넘길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순간엔 그마저도 귀엽게 봐주지 않을까? 하면서 그 시기가 오길 기다리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들 때 떠올리는 대화가 있다. 내가 일하는 업계에서 아주 오래 일한 선배와의 대화다.


세상 다정하고 인자한 선배라 가끔 엄마 같기도 하고 언니 같기도 한 선배다. 선배는 오랜만에 후배들을 몇 명 모아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인원을 꾸리는 과정에서 A 후배를 추천하자 선배는 씩 웃으며 양손을 들어 검지를 엑스 자로 겹쳐 보였다. 내가 살면서 본 거절 중 가장 우아하고 단호한 'NO' 였다. 큭.


그때의 그 우아한 no는 대충 이랬다ㅋ

(※대문 사진은 유튜브 채널 '너덜트'의 '누나 어디 편찮냐?' 영상의 썸네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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