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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물 Aug 30. 2024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③ <잠>

책방지기의 느리게 읽는 고전


 우리는 '꿈'이라는 말을 두 가지로 씁니다.

 하나는 잠잘 때 꾸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되고 싶은 모습을 생각하는 거예요. 잠잘 때 꾸는 꿈은 우리 눈앞에 신기한 장면, 무의식의 욕망, 두려움들을 보여줍니다. 현실이 아니지만 꼭 진짜처럼 느껴지죠. 깨어있을 때 꾸는 꿈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을 상상할 때, 아직 현실은 아니지만,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꿈은 우리를 신기한 세계로 데려가요. 잠잘 때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으로, 깨어있을 때는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로요


 왜 이렇게 다른 두 가지를 같은 말로 부를까요? 이것은 단지 가상 시나리오를 표현하는 은유적인 표현일 뿐일까요? 이 작은 언어적 우연은 놀라운 진실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잠들어 있을 때나 깨어있을 때나, 우리는 끊임없이 '꿈'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발을 내딛고 있는 것입니다. 이토록 소중한 꿈을 꾸기 위해서라도 잠자는 시간은 중요합니다. 잠자는 명상이 따로 있을 정도니까요.  깨어있는 꿈과 잠든 꿈이 서로  춤추는 무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이라 그랬는지 저도 이 중요한 잠을 요즘 통 잘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다음날 수업준비를 하느라 늦게 자고, 또 어느 날은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좋아 책을 붙들고 있기도 합니다. 뭘 안 해도 잠들기를 미루곤 했습니다. 잠 2시, 3시 넘어가는 시간을 발견할 때면 잠이 중요한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맘과 비슷한 대목을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에서 발견했습니다. 잠에 대한 구절에서 찾을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 1. 시간의 상대성

 "내 나이에는 짧은 순간의 졸음이라도 완전한 것이면, 이전에 천체들이 반(半) 회전을 모두 할 동안 계속된 수면에 상당한 것이 된다. 나의 시간은 앞으로는 훨씬 더 작은 단위로써 측정되는 것이다."

하드리아누스는 나이가 들면서 시간의 경험이 변화함을 지적합니다.


서서히 나를 버리고 있는 모든 행복들 가운데, 수면은 가장 귀중한, 또한 가장 평범한 행복의 하나이다

고치기 힘든 병까지 앓게 돼 죽음을 앞둔 늙은 황제는 삶을 반추하면서 이제 잠까지 잘 못 자게 된 고통을 토로니다.


# 평등한 잠

 "잠이 든 연후에는 가이우스 칼리굴라와 정의로운 아리스테이데스도 우열이 없으며, 나도 나의 그 헛되고도 중요한 특권들을 내려놓게 되고, 나의 방 문지방 위에 가로누워 자고 있는 흑인 근위 초병과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 것이다."


수면의 질과 양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계가 없지요.

# 불면증과  집착

 "우리들의 불면증이란, 우리들의 지능이 그것에 고유한 사상들과 연속되는 추론들과 삼단논법과 정의들을 제조하는 데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 우리들의 지능이 감은 눈의 기막힌 멍청함이나 꿈의 예지로운 광기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하드리아누스는 불면증을 의식의 과도한 활동으로 해석하는 이 부분은 정말 공감되었습니다. 요즘 불면증이 많아지는 것은 의식적 상태에 대한 집착이었다 말합니다.

 '꿈의 예지로운 광기'라는 표현으로  꿈을 단순한 환상이 아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로  보는 동시에 꿈의 비합리적 특성도 인정하며, 이를 광기'로 표현합니다. 즉 존중하면서도 경계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적 사고와 무의식적 과정 사이의 균형을 가지는 게 중요하고요





# 잠과 죽음의 관계

"죽음의 형제인 잠..... 이소크라테스의 생각은 잘못되었으며, 그의 그 문장은 수사학자의 과장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죽음을 알기 시작하고 있다. 죽음은 수면보다 우리들의 현재의 인간조건에 더욱더 생소한 다른 비밀들을 가지고 있다."

# 하드리아누스의 잠과 죽음에 대한 견해  "죽음의 형제인 잠"이라는 관점을 거부합니다. 죽음이 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에게 죽음은 더 깊고, 더 미지의 영역입니다.
"나는 이제 죽음을 알기 시작하고 있다" 죽음을 지식이 아닌, 죽음을 앞둔 사람의 이해와 고백니다



# 잠의 취약성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잠으로 더럽혀진 자기 얼굴에 수치를 느낀다. 내가 공부나 독서를 하기 위해 아주 일찍 일어나, 그 구겨진 베개와 그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는 이불을 나 자신 원상태로 정돈해 놓은 적이 얼마나 않았던가...."

하드리아누스는 잠에서 막 깬 모습을 부끄럽게 여겼어요. 그는 잠자는 동안 우리가 약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걸까 구겨진 베개와 이불을 정리해 잠잔 흔적을 지우고 다시 완벽함으로 돌아왔어요

 하드리아누스에게 잠은 극복해야 할 약점 같은 거였나 봅니다


 잠에 대해 쓰다 보니 저도 이만 쓰고 잠을 청해야 될 것 같습니다.  모두 좋은 잠을 만나는 날들 되세요.






책방지기가 뽑은 발제문


1. 나는 잠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

2. 잠은 나의 자아 인식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3. 나의 수면 습관은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어떻게 반영하는가?

4. 잠과 죽음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

5. 현대 사회에서 '완벽함'에 대한 압박이 우리의 수면 습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6.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시간을 어떻게 다르게 경험하는가? 또,  짧은 순간의 의미 있는 경험이 긴 시간의 무의미한 경험보다 더 가치 있을 수 있는가?

7. 좋은 잠을 자기 위한 나의 노력은?


※ 이 작품은 이 작품은 1950년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쓴 유명한 소설입니다.  대화가 없는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소설이란 점도 특이한 작품입니다.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작가의 문장력은 실제 하드리아누스가 쓴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역사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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