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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나 옥탑방 Dec 13. 2022

어쩌다 빈소년_2

/ 초대라고 쓰고 시험이라 읽는다

없었던 일로 치고 까묵고 있던 어느 날, “we would like to invite your son for a trial week to the school of the Vienna Boys Choir as soon as possible.” 로 시작되는 이메일을 받았다.

엇, 1차는 붙은 거구나!! 신기방기하기가 무섭게.. 오라 하니 가야 하나 큰 고민이 생겼다. 가서 붙으면 집안의 경사, 떨어져도 그런 경험은 또 없을 테니까 한번 가 봐? 갔는데 별 볼 일 없으면? 그래도 안 가 보고 미련 떠느니 가 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아? 이래저래 걸린 일들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 한 달여... 여행도 아닌 그렇다고 내가 시험 보는 것도 아닌 이상한 도전이지만 유럽은 또 처음이라 살짝 들뜬 기분도 들었다. 네 살짜리 둘째의 간이 유모차까지 싣고 온 가족이 비행기에 올랐다. 얼마나 힘든 고난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생각도 못하고...


금요일 비행기로 빈에 도착해서 <비엔나 소미네 민박>에 짐을 풀었다. 빈소년 한국인 단원 3호인 박**군 가족이 운영하는 이곳은 입단을 꿈꾸는 한국 소년들의 전초기지나 다름없다. 이 댁은 아들이 빈소년이 되는 바람에 온 가족이 이주해 온 케이스라서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이곳을 거치며 각종 정보를 얻고 분위기를 익힌다. 우리도 이곳 4인 가족실에 열흘 동안 묵으면서 빈소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나 미디어로 알던 것과는 다른 점이 많거니와 생생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넘쳐났다. 멋지게 합격해서 이 이야기 속에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심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학교는 월요일부터 가는 것으로 하고 주말 동안 잘츠부르크를 거쳐 할슈타트 여행도 호기롭게 다녀왔다. 춥고 우중충한 날씨에 마음까지 콩밭에 있어서인지 「사운드 오브 뮤직」의 그 아름답던 미라벨 정원이며 폰트랩 대령의 집이 실상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빈소년합창단의 주소는 Augartenpalais, 1020 Wien - 빈 2구에 있는 아우가르텐 궁전이다. 1600년대부터 사용된 황실의 사냥 별장이었던 곳으로 빈에서 가장 오래된 바로크식 정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정원은 공식 사진을 찍을 때만 배경으로 등장한다^^a) 그 자체로도 문화재지만, 연방 정부 소유의 큰 공원부지 내에 함께 있기 때문에 소년들이 실제로 드나드는 곳은 따로 있었다. Castellezgasse 25, 아는 사람만 다니는 문이다 보니 그냥 밖에서 보면  여기가 그 유명한 빈소년인지 아무도 모를 듯했다.


빈소년합창단이 되려면 반드시 빈에서 최종 오디션을 거쳐야만 한다. 현직 단원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다방면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다. 수업에 적응은 잘하는지, 합창단 연습은 얼마나 따라가는지, 또래들과는 잘 어울리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평가 – 기숙사 생활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잘하는지... 알려진 대로 빈소년은 전원 기숙사 생활이지만, 수요일과 주말에는 집에서 지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 실제 기숙사에서 자는 날은 일주일에 3-4일뿐이지만, 고작 9세 10세인 어린애들에겐 가족과 떨어져 규율을 지키며 합숙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겨우 합창단 캠프로 2-3일 떨어져 지낸 것이 공동생활의 전부인 아들이 이 과정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그래도 늘 의젓하고 똘똘하다 소리 듣던 녀석이니 믿을게 아들!!


대망의 월요일, 정각 8시에 학교의 모든 행정을 총괄하는 Mr. Heider의 방을 노크했다. 그는 아주 키가 크고 멋진 포와로 수염을 가진 사람으로 표정에서부터 노련미가 팍팍 풍겨왔다. 최종 오디션과 합격 후의 절차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마친 후 학교를 구석구석 안내해 주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함께했을까? 그의 태도는 굉장히 예의 발랐지만 긴장한 우리한테는 살짝 거북한 느낌이었다.


앗, 쟤들은 TV에서 보던 매튜하고 필립!! 지나가던 노랑머리 갈색머리 소년들이 헬로 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얼떨떨했다. 뭔가 본진에 온 느낌이랄까? 복도를 뛰어다니면서도 흥얼흥얼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니 지나가는 아무나 그 노래를 같이 부르며 금세 아름다운 하모니가 흘러나왔다. 우와우와~ 콘서트에나 가야 듣던 천사의 목소리를 이렇게 라이브로 듣게 되다니.. 이 소년들이 곧 아들의 선배,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두근두근 요동을 쳤다.


2007년생인 아들은 한국에서 막 초4가 된 참이었는데, 9월 학제인 이 나라에서는 벌써 중1, 그것도 2학기였다. 초4-중4-고4 같은 12년 학제지만 만 6세에 입학을 하는 데다 학령의 기준도 한국과 달리 9.1-8.31이다 보니 아들은 얼떨결에 중학생이 되어버린 거다. 어리바리 아들은 벌써부터 기에 눌려 허옇게 뜬 얼굴로 교실에 끌려 들어갔는데..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울먹울먹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바보 된 거 같아~ 애들이 무슨 말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고 ㅠ ㅠ”

아이고 이 아들놈아~~ 하루도 안 있어보고 벌써부터 울면 어떡해!! 오늘부터 당장 기숙사에서 자야 되는데 이래 갖고 일주일은커녕 밤은 넘기겠냐? 덩달아 안절부절 마음에 들어찬 불안이란 돌덩이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_201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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