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임이 Aug 16. 2024

이 더위도 물러가면 섭섭하겠지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입추가 지난 날씨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목덜미에는 벌써 땀이 흥건하다. 가방에 부채질할만한 게 있나 급히 뒤져보니 빳빳한 종이봉투 하나가 나온다. 다행이다. 열심히 부채질하며 신호등을 건너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전광판부터 확인했다. 하악!  내가 탈 버스가 15분 뒤 도착이라니.

 이 더위에 15분을 기다리다가는 그대로 녹아내릴게 분명한데 그렇다고 별다른 방법도 없다.


전광판을 쳐다본다고  버스가 더 빨리 오는 것도 아닌데 떡하니 버티고 선채로 빨간색 숫자들만 노려보고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와 달리는 자동차 타이어가 마찰을 일으키며 지독한 고무냄새를 풍기고 있다.  종이봉투로 있는 힘껏 홱홱 부채질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뜨거운 바람과 불쾌한 냄새는 도통 가시질 않는다.

버스 시간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나온 내가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의자 위에 점잖게 앉아계시는 저 어르신은 괜찮은가 모르겠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도 어쩜 저렇게 고즈넉한 모습일 수가 있는지..

새삼 내 행동이 방정맞아 보여 슬며시 부채질을 멈췄다.



이때,

버스 한 대가 스르륵 내 앞에 멈춰 섰고 미처 번호를 확인하기전에 나는 냅다 그 버스에 올라탔다.

카드를 찍고 허둥지둥 빈자리를 찾아 앉고 나서야 가게와는 정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해 지금?

미칠듯한 더위에 나는 방금 미칠뻔했는데? 강아지였다면 혀라도 길게 빼들고 하악하악 더위에 지쳐 쓰러져가는 모습이라도 보였을 텐데 사람이라 차마 그러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을 뿐이란 말이다. 아무튼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여기는 천국임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듯한 조금 전의 고통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걸 보니.

에라 모르겠다. 이왕에 온 천국 실컷 즐기고 정신이 좀 돌아오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지 뭐.

아! 정말 살 것 같다.

아까 그 어르신도 함께 탔으면 좋았을 텐데.






#더위 #기다림 #버스 #에세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