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된 프로그램.. 이효리의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재방송이지만 한참을 화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몇 개월 전 이 프로그램에 대한 예고편을 스치듯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랬다.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곧 다가올 엄마의 칠순으로 인해 혼자 고민에 빠져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문장 하나가 주는 여파가 그리 오래갈 줄은 몰랐다.
혼잣말로 수없이 중얼거려 보았다.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고민 끝에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말로 엄마한테 의향을 물었다. 칠순기념으로 말이다.
"나이 먹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돈 팔고 여행을 간다니? 너 장사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역시 엄마다운 대답이었다.
실망스럽지 않았다.
풍선처럼 잔뜩 부풀었던 마음에 바람 빠지듯 약간의 서운함은 있었지만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둘만의 여행이 우리에겐 아직 상상만으로도 벅찬, 너무나 낯설고 부담스러운 그런 것이었다.
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용기가 나에게는 부족했으리라.
그렇게 엄마의 칠순은 이벤트 하나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얼마 전 새로 이사한 집에 엄마가 다녀가셨다.
하룻밤 묵고 가면서 나에게 이런 톡을 보냈다.
"넓은 새 집에서 하룻밤 자고 왔는데 기분이 참 좋구나. 여행 다녀온 기분이 이런 걸까."
코끝이 찡해왔다.
그러고 보니 평생 여행이란 걸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 엄마였다.
여행 다녀온 기분이 어떤 건지 알려주고 싶었다.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여행은 무슨... 나중에..."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끊겼지만 우리의 여행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팔짱 한번 끼지 않은 어색한 모녀사이지만 조만간 둘만의 여행에 도전해보려 한다.
세상 멋없는 두 여자의 여행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헤어져 살았던 세월만큼 텅 비어버린 추억이란 공간 속에 이제 그것들로 하나씩 채워가면 되겠다.
[이미지 출처: Pixabay Lite]
#여행 #엄마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