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에 첫 아이를 임신했다.
입덧이 시작되고 몸이 힘들어지면서 잠시 일을 쉬게 되었는데 막상 입덧이 가라앉을 때쯤 되니 그렇게 돈이 아쉬울 수가 없었다.
결국 지역신문을 뒤져 액세서리 부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부업이라는 게 집안 일도 제쳐둔 채 종일 손에서 일감을 놓지 않아도 한 달 수입이 십만 원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마저도 두 달이 채 안되어 그만두어야 할 일이 생겼다. 배 속에 아기가 임신주수에 비해 너무 크다고 했다. 이대로 두면 출산이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한다고 산부인과에서 알려 주었다.
그렇게 지지리 궁상 부업을 그만두고 매일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그 당시 살던 지역이 경기도 송탄이었는데 조용한 시골동네엔 대형마트 하나 없었다. 한 여름 땡볕에 걷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가끔 평택으로 가서 대형마트를 돌기 시작했다. 냉방시설이 잘 되어있는 넓은 대형마트는 걷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층별로 돌아다니며 실컷 아이쇼핑을 하다 배고프면 푸드코드에서 밥 한 끼 사 먹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일코너를 지나치는데 먹음직스러운 빨간 체리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체리를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그날따라 유난히 먹고 싶었다. 그러나 가격을 보고는 이내 포기를 했다. 임신을 핑계로 사 먹기엔 가격이 너무 사악했다. 그 돈이면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 몇 가지를 살 수 있었으니 쉽게 욕심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체리를 두고 돌아서 나온 이후로 동네를 걸을 때마다 곳곳에서 체리가 눈에 띄었다. 골목골목에서 할머니들이 바구니에 체리를 담아놓고 파는 풍경이 매일 눈앞에 펼쳐졌다.
"체리 얼마예요?"
어떤 날은 용기 내서 체리 앞으로 다가가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작은 바구니는 오천 원, 큰 바구니는 만원이라고 하는데, 결국 망설이다 돌아섰다.
오천 원짜리는 양이 너무 적었고 그렇다고 만 원짜리를 사 먹자니 그 만원을 가지고 5일장에 가면 일주일치 반찬거리들을 살 수 있는데...
아냐. 됐어. 안 먹고 말지 그러면서 매번 참았다.
그런 날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서 1500원짜리 팥빙수 아이스크림 하나에 우유 한통 사들고 왔다. 아이스크림에 우유 부어먹는 게 그땐 왜 그리 맛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팥빙수 아이스크림도 맘껏 사 먹질 못했다. 1500원짜리를 두 개 사면 삼천 원인데 그 삼천 원도 커 보여 한번에 두 개 사는 날이 드물었다.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아껴서 빨리 빚 갚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느라 가계부를 끼고 살다시피 했으니.
그런 내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그 와중에도 하루 건너 일은 터지고,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데 수습할 일은 끝도 없고..
앞이 보이지 않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큰 애 임신기간 내내 체리 한알 못 얻어먹고 출산하게 된 나는 훗날 체리에 한 맺힌 얘기를 우연히 동서한테 하게 되는데...
그 얘기를 들은 동서는 몇 년 후 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임신선물이라며 체리 두 박스를 내 가슴에 안겨주었다.
그 체리 두 박스를 모조리 혼자 먹고 난 후, 신기하게도 체리에 대한 복잡 미묘했던 감정이 싹 사라졌고 이제는 그렇게 체리가 마구 먹고 싶지도 않게 되었다.
임신 때 서운한 일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던데,
두고두고 남편을 원망할뻔한 일이 동서 덕분에 아무런 앙금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 마트에서 체리를 보게 된 날은 어쩔 수없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땐 그랬지 하며 넘기기엔 너무나 무거운 날들이었다.
#체리 #임신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