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커튼이 없다.
남편이 제발 커튼 좀 달자고 아무리 궁시렁대도
난 사실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부터는
커튼을 달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아니.
마당으로 초원으로 숲으로
이렇게나 시야가 트여 좋은데
블라인드가 웬 말이며 커튼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물론 나도 아파트 생활을 할 때엔
볕이 드는 시간을 빼고는
대부분 블라인드를 치고 살았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24층 고층이었고
앞 동 건넛집이 훤하게 내다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먼 거리에서도
우리가 사는 모양새가 비칠 수도 있으니
해 질 무렵이 되면 나도 늘 블라인드를 쳤었다.
그건 그때 얘기고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여긴 시골 동네라 집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으니
옆집 앞집 뒷집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더 중요한 이유는
커튼으로 잠시라도 창을 가리기에는
창문마다 보이는 나무와 숲과 초원 전망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우리 집 뚫려있는 4면 창문으론
모두 온통 초록만 보인다.
게다가 창문들도 모두 큼직 큼직하다.
비가 오는 날에 비 오는 뜰을
바라보는 재미는 또 어떻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
이쪽저쪽 창으로
뒷동산 숲 속 나무들이
어떻게 몸을 흔들며 바람을 타는지
집안에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 집에는 거의 매일
애들 친구들이나
내 친구들이 제 집 드나들듯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쳤다.
몇 시간 시끌벅적 놀다가 거나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는게 일상이었다.
내가 내 친구들이랑 우리 집 텃밭에다가
공동 텃밭 농사를 지을 땐,
새벽 다섯 시 오십삼 분에
(뻥 아니다.
진짜 새벽! 다섯 시 오십삼 분이었다.)
몸빼 입고 호미를 들고 우리 마당에 나타나
데크를 지나 텃밭으로 내려가
호미질을 하던 내 친구도 있었다.
음. 그래.
남편이 볼멘소리를 낼만하다.
애들 친구들과
내 친구들이 놀러 와서 난리법석일 때마다
남편은 나에게 간청했다.
마눌. 제발 커튼 좀 달아주면 안 돼?
우리 집 외벽 삼면 따라 비잉 둘러
ㄷ자형으로 데크가 깔려있다.
창들이 크기 때문에 데크에 서서 보면
방안이 훤하게 들여다 보인다.
그러니 휴일 낮잠을 사모하는 그는
자다가 망신당할 일을 걱정했던 거다.
내 친구들이 나와 함께
마당 풀을 뽑겠다고
호미를 들고서 데크를 돌아다니다가,
무방비상태로 자고 있는 그를
본의아니게 들여다보는 그러한!
봉변이자 망신이요,
불상사이자 비상사태말이다.
팬티 바람으로 낮잠을 자다가
본인이 오늘은 무슨 색, 무슨 패턴 팬티를
입고 자는지 만천하에 공개당하는,
봉변 중에 최악의 봉변을 걱정하여
(떼헤!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라고.)
나에게 부탁하기에 이른 것이다.
마눌. 제발 커튼 좀 달아주면 안 돼?
그렇다고 뭐,
그런 남편도 그냥 나에게 투덜댈 뿐이지
마눌이 본인 사생활 보호해 주기 위하야
언감생심 커튼을 달아줄 리 없단 걸 안다.
내가 왜 커튼을 달지 않는지를
너무나 잘 아는 까닭이다.
다만,
주님의 철통 같은 보호하심 속에
무방비상태로 자다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만 바랄 뿐인 거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오히려 커튼은 고사하고
뿌연 안개 유리로 된 욕실 유리도
뒷동산 숲이 훤하게 내다 보이는 유리로
확! 바꿀 의사가 있다.
화장실 창에서 보이는 숲은
10만 평 초원 한복판에 있는 동산이다.
일 년 365일,
그곳에 올라가는 사람은 없다.
20년 동안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그 숲에서 우리 집을 내려다보는 생명들이라곤
그 숲에서 놀고먹고 자는 노루들이나
숲 속 나무 위에서 울어대는
수억 마리의 새들 뿐인 것이다.
노루와 새들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녀석들은 우리 집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일엔
개뿔 관심도 없다.
숲으로 향한 욕실 유리창을 확 열어젖히고 지내도
난 네가 화장실에서 한 짓을 다 알고 있다.
협박하는 생명들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니까아. 내 말이 그거다.
저 숲에 들어가 앉아
우리 집 욕실을 염탐하는 변태 파파라치도 없는데
굳이 뿌연 안개유리를 써서
저 멋진 숲 전망을 가리고 사냐 이 말이다.
내가 이 말을 꺼냈을 때
남편 표정을 봐야 했다.
그는 내 말에 절망했다.
절망하며 다급히 되묻기를,
아니 그럼,
화장실에서 편안하게 볼일도 보지 말란 말이야?
샤워할 때는 또 어쩌라고? 하길래
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에헤.
걱정말라니까아.
누가 저 숲에서 우리 집을 들여본다고 그래?
아.을마나 좋아.
욕실에 앉아서 저 숲이 훤히 보인다고 생각해 봐.
완전 멋지지 않아?
그리고 샤워할 때는
창문에 샤워 커튼 하나 달면 되는 거지.
뭐 그게 어려운 일이라고.
목욕할 때만 딱 가려!
뭐 누가 볼일도 없겠지만.
암튼, 남편 생각은 그런 줄 알겠고.
하여튼 나는
커튼 없는 우리 집 창이 참 좋다.
남편은 안될걸 알면서도
20년 동안 지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잊을만하면 또 말한다.
마눌. 우리 커튼 좀 달면 안 돼?
응. 안돼.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