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길에,이거 실화냐.
아침 애들 등굣길은 늘 바빴다.
더군다나 내가 아이들 학교에서
금요일 아침 학부모 책 읽어주기 하는 날에는
나 챙기랴. 애들 재촉하랴 정신이 없었다.
우리 집 애들은 어째서 등교시간이 되면
더 느그작 느그작 하는걸까?
아침에 최대한 침대에서 버티고 안 일어나면,
아침에 샤워를 오오오래 오오오래하면,
아침에 옷을 처어어어언처언히 갈아입으면,
우리 엄마 속이 터질까 안 터질까
시험을 해보는 것 같았다.
그러는 게 분명했다.
진짜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매일 허구한 날,
아침마다 어쩜 그럴 수 있는 건지
나는 도오저히 이해가 안 갔다.
또리와 오도리는 협동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 엄마 속을
터지게 할 수 있을까를 탐구하며
(공부를 그렇게 해봐라.)
아침에 할 거 다 하고
안 할 것도 다한 후에
느리잇 느리잇 마당을 걸어 나와
내차에 올라탔다.
내 자식들은 등교 시간이 임박해도
절대로 절대로 급 할 것 없는
나무늘보처럼 움직였다.
드디어 학교로 출발했다.
출발시간이 몇 시 몇 분인지,
등교시간이 이십 분 남았는지
십삼 분이 남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 정문을 향해 막 달리는 것이다.
나는 카레이서처럼 학교를 향해 달렸다.
언제는 안 그랬겠는가.
아침시간 등굣길 시골길을 내달려서
10년쯤 애들을 학교로 나르다 보면
어느 순간 기냥,
나도 모르게 카레이서가 됐다.
등굣길 카레이서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출발시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리나케 시골길을 달렸다.
그리고는 끝끝내 학교 정문에다가
제 시간 안에 아이들을 내려놨다.
비가 오나
태풍이 부나
폭설이 쏟아든지 간에
나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 자식들을 차로 실어다
제시간에 학교 정문에다가 쎄잎시켰다.
그날 내차는 처음엔 자알 달렸다.
처음엔. 처음에만!
자알 달렸다는 뜻이다.
학교 바로 옆 삼미슈퍼를
막 지나던 찰나 차가 이상했다.
속도가 쫌씩. 쫌씩. 줄더니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슈엘레레 스류룩스르륵르릌 차가 멈춰 섰다.
왘. 아니. 오뭬. 우쒸!
차 기름이 바닥이어서
길 한복판에서 서버렸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전날 일이 바빠서
제주시를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내차는 제발 기름 좀
먹여 달라고 깜빡댔었다.
차가 배고파 죽겠다고 내게 신호를 보냈으나
나는 지갑을 안 들고 나온 관계로
됐고!
지갑 안 갖고 왔으니까 조용히 해. 했었다.
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늘 있는 일이었다.
내 차는 늘 기름이 바닥이라
평상시에도 깔딱깔딱 곧 숨이 넘어갈 듯이
쫄쫄 굶은 채로 온 세상을 뽈뽈뽈 기어 다녔다.
내 차는 평상시에도
배부르게 다닌 적이 별로 없었다.
전날 이동할 일이 많아
무식하게 장거리를 뛰어다녔던 걸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나는,
다음날 아침에
기름이 바닥인 차를 끌고 학교로 달린 것이다.
내차는 결국
바쁜 아침 등굣길 한복판에서
이 주인놈아. 난 이미 글렀어. 걸어가. 하며
나 잡아잡쏴! 늘어졌다.
정신없는 아침 등굣길.
그것도 금요일 아침이라
교실에서 책 읽어주는 날인데 말이지.
이거 지금 실화냐. 실화냐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내 차가 굶주린 배를 인내하며
기를 쓰고 달려서
학교근방 이백미터 앞에서 멈춰준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른다.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거다.
사람은 자고로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이
내 차가 멈추지 않게
학교 근처까지 내 차를 이끌어주시고
격려해 주심을 깨닫고는
주여. 감사합니다. 했다.
아니. 말이야 바른말이지,
등굣길을 달려오다가 학교 근방
5킬로 미터 전 플라스틱 공장부근에 멈춰 섰거나
3킬로 미터 전 목재소쯤에서 멈췄으면 어쩔뻔했나.
만약에 그랬다면
나는 학교 책 읽어주기고 뭐고 간에
아이들 손을 양손에 붙들고
인도도 없는 그 길을 따라 터벅터벅
이삼 킬로를 걸어서 등교해야 했을 거다.
푹 퍼진 차에서 내려서
아이들 손을 양손에 잡고 학교를 향해 걸었다.
우리는 그나마 학교 근처에서
차가 퍼졌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감사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낄낄대며 길을 걸었다.
학교로 걸어서 등교하는 길.
덕분에 우리는 학교 앞 벚나무 가로수들이
이제 막 꽃봉오리를 피워
환상적인 벚꽃터널을 만들어 놓은 길을 걸었다.
또 보건소옆 자그마한 연못에
벚나무에서 떨어진 벚꽃들이 물 위에
동동 떠있는 모습을 구경했다.
학교 정문 앞 집에 사는
진돗개 왕왕이가
지나다니는 차를 피해서
길을 왔다갔다 건너 다니는 묘기도 구경했다.
그렇게 학교운동장에 도착하니
여덟 시 십오 분.
책읽어주기 시간은 여덟시 사십오 분!
참. 착하고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훌떡 벗어 놓고
또리 담임샘 지휘하에
헛둘헛둘 운동장 달리기를 했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나도
애들한테 읽어줄
책 꾸러미를 옆구리에 끼고
앞서 뛰는 아이들을 한 번씩 손으로
툭툭 치면서 장난을 하며 반 바퀴를 따라 뛰었다.
책 읽어주기와 책 읽어주기 팀원들의
느낌나누기가 끝난 다음
난 학교 앞에서 퍼져버린 차를 움직일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어. 일단은 보험회사로 전화를 해야겠지?
생각하며 전화를 걸려고 보니
내 전화기 배터리도 떨어져
전화기 전원이 꺼졌다.
옆에 언니 전화기를 내놔라. 뺏어 들고서
자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당시 밤늦게 하루 일정이 끝나는 남편에게
그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 생체리듬 패턴으로 보자면,
한참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약 새벽 세시 삼십 육 분이었다.
띠리링.
여보세여.
남펴언.
나. 지금 학굔데에
내차가 엥꼬나부렀네?
으응. 다행히 학교 근처 삼미슈퍼 앞이야.
남편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남편과 나의 거리는 약 15킬로 떨어져 있었다.
죄를 지은 나는 이러한 내 죄를 자각하며
남편이 화가 났나 안 났나 눈치를 살폈다.
죄인인 내 모든 오감은
남편을 향해 레이다가 작동했다.
나는 전화기 저너머 남편 숨소리만 들어도
남편이 지금 화를 누르고 목젖을 움직이며
크게 침을 삼키고 있구나. 를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남편.
보험회사에 전화 좀 해줘봐바.
삼미슈퍼 앞으로 오라고.
내 전화기 배터리도 나가부ㄹ..
내 전화에 짜증이 날대로 난 남편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십분. 이십 분. 이십칠 분...
나를 구원해 줄 보험사 직원은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죽어라 안 왔다.
시골에 산다고 무시를 하나아.
출동이 왜 이렇게 느린 것이여? 하면서
목을 빼고서 시내 쪽 방향 도로를 쳐다봤다.
저 멀리 남편 차가 나타났다.
오. 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죄를 지은 내 신분도 잊은 채
손을 높이 들어 마악 흔들었다.
남펴어언. 여기야 여기!
남편이 차에서 내렸다.
머리는 자다 깨서 급하게 달려오는 바람에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두 눈은 벌게져서
뚜벅! 뚜벅! 나한테 왔다.
그리고 말했다.
남편 잔소리가 이제 막 스타트하여
1절과 2절 후렴구를 거쳐서
다시 3절 4절로 이어질 참이었다.
나는 남편의 시선과 45도로 빗겨 나
저어어 머얼리 한라산 산자락을 바라봤다.
(안들린다. 안 들린다. 나는 안 들린다.)
남편은 짜증이 잔뜩 난 표정을 지으며
투덜투덜 입이 댓발 나온채 자기차로 걸어간 다음,
트렁크에서 시푸르딩딩한
휘발유통을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그건 남편이 나무할 때 쓰는
엔진톱에 넣을 휘발유였다.
급한 김에 집에 있는
휘발유를 가지고 오긴 했으나
휘발유는 바닥에서 촐랑촐랑했다.
용량으로 보자면
플라스틱 음료수 한 병 양도 안된 양이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그는
기름 넣을 것을 대비해
집에 있는 생수병 모가지를 싹둑 잘라왔다.
비상사태에 대응할 깔때기 대용인 거다.
나는 죄를 지었기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로 웃으면 안 되는
천하의 비천한 신분이었다.
그러나 남편손에 달랑달랑 들린
모가지가 뎅강 잘린 생수통 꼬투리를 보고는
퐥!하고 웃음이 터졌다.
(잘라진 생수 대가리가 어쩜 그리 웃기냐!)
아니,
얼마나 오기 귀찮고 싫었으면
집에 굴러다니는 생수병 대가리 하나
뎅강 잘라서 들고 왔냐 이 말이다.
창고에 기름 넣는 쭈구리 호스도 있구먼.
남편은 생수병 모가지를 자른 것을
기름 주유구에 쑤셔 넣고서
초록색 휘발유 통을 가져다 댄 다음
기름을 넣었다.
쫄쫄쫄쫄.
응급 심폐소생술을 처치받은 내 차는
겨우 기운을 차려서
시골길을 툴툴툴 달려
주유소로 가서 배를 채웠다.
내 차에 기름이 퀄퀄퀄 들어가는 동안
나는 내 차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겨운 주인 놈 같으니라고.
미리미리 좀 배 좀 채워주면 안 되냐.
이게 도대체 몇 번째냐.
내 필시 조만간
길가에서 눈깔을 뒤집고
꽥! 아사하는 날이 올 게야!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서
마당 데크 계단에 둘이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셨다.
마당에 세워둔 내차를 보더니
남편이 한마디 했다.
마눌!
당신 차는 어째서 맨날 불쌍해 보이냐?
언뜻하믄 엥꼬나.
언뜻하믄 긁어대.
언뜻하믄 갖다 박어.
끄응.
내가 거기에 대고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커피 마시다 말고 슬그머니 일어나
데크난간에 걸쳐둔 호미 들고
텃밭에 가 앉았다.
나도 양심은 있어서
남편 말이 하등 틀린 말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