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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사이야?

전지적 소 스토커 관점으로 저 둘을 지켜본다.

by 시안 Mar 03. 2025

우리 집 싱크대 위 큼지막한 창문을 열면

좁은 뒷마당을 지나

나지막한 돌담을 넘어 초원이 있고

그 끝에 작은 동산이 있다.


주방 창문 앞 초원은

10만 평 규모 넓은 초지로 연결되는 초원입구다.

넓지는 않고 좁고 길다.

소들은 초원으로 나가려다가

가끔 그곳에서 놀거나 널브러져 있는 거다.


나와 소들의 거리는 가깝다. 60미터쯤 될까?

덕분에 초원에서 녀석들이 하는 짓이

아주 잘 보인다.

아주 잘  보이기도 하고

아주 잘 보려고 내가  기를 쓰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주방 창문으로

소들 사생활을 훔쳐보는게 취미인

스토커임을 고백하는 바다.

소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내가 자기들을 얼마나 집요하게

두 눈 벌겋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지 말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먹고 난 그릇을 씻으며 고개를 들어

주방 창문밖 초원을 내다봤다.

스토커는 늘 쳐다보고, 내다본다.


계속 내리던 장맛비가 잠시 그치니

축사 주인 할아버지는 우리에 있던 소들을

초원에 풀어둔 모양이었다.

오. 소들이 나왔구나!


축사에 갇혀있던 소들이

비 내리는 초원으로 마실을 나왔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를 데리고 나온

어미 소들이 대부분이었다.


보슬비가 가랑가랑 내리는 아침에

소들은 초원을 돌아다니며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풀을 뜯어먹었다.

간간히 이놈 저놈 소리를 주고받으며

우렁차게 음메에에애 음메에에하고 울었다.

어미들도 초원으로 나온 것이 좋은 모양이었다.


점심 무렵이 되자

다시 빗줄기가 굵어졌다.

소들은 초원 가장자리 쪽 덤불숲 쪽으로 몰려가서

덤불에 서로의 몸을 바싹 붙이고 웅크리고 앉아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피했다.


송아지는 가끔씩 어미젖을 빨기도 하고

이 세상 모든 게 신기한지

어미 주변에서 연신 두리번거렸다.

비가 내리니 송아지는 신이 났는지

엄마소 주변에서 네다리로 점프하며

스프링처럼 팅팅팅 뛰어올랐다.


한 녀석이 팅팅팅거리니

옆에 있던 송아지도 덩달아 탱탱탱탱 같이 뛰었다.

앙증맞은 송아지들 노는 꼴을 보니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어린것들이 하는 짓은

사람이나 소나 별반 다르지 다.


송아지들은 태어나서 오늘 처음,

엄마랑 초원으로 나온 것 같았다.

엄마 곁에서 충분히 젖을 먹었으니 배도 부르고

친구들도 함께 있는 데다 비까지 내리니

송아지가 아주 신이모양이다.


두 시간쯤 지난 후에 커피를 내리면서

주방 창문밖을 다시 내다보았다.

비가 와서 더욱 초록 초록해진 초원 위에

누런 송아지들과 어미소들 사이에

하얀 백로가 떼를 지어 몰려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초원에 무리 져 놀고 있는 소들 사이로

하얀 백로들이 날아들었다.


어떤 놈은 털 전체가 하얀 백로였고

어떤 놈은 정수리와 뒷모가지에

황금 털이 있는 황백로였다.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는 되어 보였다.

아마도 한 무리인 듯했다.


날개를 접고 양반자세로 뒷짐을 지며

주변을 거니는 백로를 처음 봤을 때,

지금 내가 본 새가 진짜 백로가 맞는 건지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저게 뭐지?

저거 백로 아니야?

백로가 중산간 우리 동네에 나타나다니.

이게 웬일이람!


백로는 물이 있는 강변이나

물이 있는 곳 근처에서 놀고

높다란 소나무 숲에 둥지를 튼다.


어릴 적 여름 방학 때 외갓집을 가면

외갓집 뒷산 소나무들위에는 항상

하얀 종이를 흩뿌려 놓은 것처럼

백로들이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장관이었는지 모른다.


매년 여름마다 백로들은

외갓집 뒷산 소나무숲으로 떼 지어 몰려와

소나무 숲 곳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때 내가 본 백로들 숫자로 치자면

나는 평생보아도 다 못 볼 백로들을

외갓집에서 다 보았다.

매년 여름마다 그랬다.


외갓집 동네는 뒤로는 높고 깊은 산이 있었고

앞으로는 2킬로미터쯤 산길을 걸어가면

맑고 조용한 강이 흘렀다.


백로들은 외갓집 뒷산 소나무숲 둥지에서 쉬다가

배가 고프면 후더덕덕 강으로 날아가

강물에 발을 담그고 서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조용하고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외갓집 동네는

백로들이 철마다 날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기르며 지내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어린 나는 백로들이 하얗게 내려앉은

소나무 숲을 보면서

외할머니 집 동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동네일 거라 늘 생각했다.

저 멋진 백로들이 매년 찾아오는 동네니까.


매일 아침,

외할머니가 싸리빗질을 해 놓은

정갈한 흙마당에는

아주 가끔 생뚱맞게 물고기가 떨어져 있곤 했다.


마당에 떨어진 물고기를 발견하면

나는 깜짝 놀라서 물고기가 떨어진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서 다급하게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할머니!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졌어요.

이것 좀 봐바요.


할머니는 마당에 떨어진 물고기를 집어 들며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뒷산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아이고.

백로가 물고기를 물고 둥지로 날아가다 떨어뜨렸구나.


뒷산 백로들이 강에서 잡은 물고기였다.

백로가 물고기를 물고서

둥지로 날아오다가 놓치면

그 물고기는 종종 할머니 마당으로 떨어졌다.


어떤 날은 미꾸라지가 있었고

어떤 날은 아주 큰 피라미가 있었다.

아마도 그건 새끼들 몫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 집 마당에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질 때마다

할머니는 백로가 물고기를 물고

둥지로 날아오다가 놓친 거라 말했다.

그러나 나는 백로가

착하고 외로운 우리 할머니 드시라고

선물을 주고 갔나 보다. 생각했었다.


그런 백로가 제주 중산간 초원에서,

그것도 무리 지어 있는 소들 사이를

저렇게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니.

나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겠는가.


중산간 우리 집 근처에는

물이 고인 연못도 없고

더군다나 강도 없다.

있는 물이라곤 차로 20분을 달려야 당도하는

저 넓은 태평양뿐이다.


백로들은 바닷가에서 배 터지게 고기를 잡아먹다가

심심하면 소들하고 놀고 싶어서

중산간 우리 동네로 놀러 오는 모양이었다.


소들은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개의치 않았고

여전히 초원 덤불숲에

몸을 바싹 붙이고 앉아있었다.


백로들은 소 주변을 어슬렁 거리면서

소등에 올라타 곧게 서서

소 등위에 붙은 진드기를 잡아먹거나

소 다리에 붙은 진드기를 쪼아 먹었다.

성격 좋은 소는 그러한 백로를 귀찮아하지 않았다.


소가 백로를 귀찮아하는지 아닌지는

소 꼬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소 꼬리가 위, 아래, 왼쪽, 오른쪽으로

채찍질을 하듯이 신경질적으로

홱 홱 움직이면 귀찮다는 뜻이다.


 빨아먹는 파리가 귀찮아서

소들이 파리를 꼬리로 쫓아낼 때만 봐도 알 수 있다.

소들이 파리 때문에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를.


소는 백로가 귀찮지 않은 모양이었다.

백로가 소 등위에서 사뿐사뿐 걸으며

진드기를  잡아먹을 때도

소는 우물우물 풀만 먹을 뿐이지

백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풀위를 어슬렁거리던 백로 한 마리가 겁도 없이

푸다 다닥 날갯짓을 하여 풀쩍 뛰어올라

리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소 리를 꼭 꼭 쪼며 진드기를 잡아먹었다.

그다음은 천천히 소 척추를 따라 걸으면서

소 등위에 붙은 진드기를 잡아먹었다.


백로는 소 대가리 정상부터 척추를 따라

엉덩이 부근까지 자근 자근 밟아 내려왔다.

 모양새는 마치,

타이 마사지사가 손님 에 올라가

척추를 따라 잘근잘근 밟는 모습과 닮았다.


나는 소 척추를 밟으며 걷는 백로를 바라보다가

백로 발톱이 소를 움켜쥐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그러나 백로가 발톱을 어찌 숨기며

걸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상상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소가 백로 발톱에 찔려서 소리를 지르거나

투덜거리나 화를 내며

후떡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소들과 백로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제주 새 도감 책을 펼쳐서 백로와 소의 관계를 찾아봤다.

예상대로였다.

소와 백로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 관계라고 했다.


초원에서 소들이 풀을 뜯어먹을 

소 주변을 알짱거리던 백로는

 주위로 나풀거리며 날아오르는 벌레들을

덤으로 잡아먹었다.


소 피부에 들러붙은 귀찮은 진드기를

백로가 꼭꼭 쪼아 먹어주니

소들도 백로가 고마운지

백로에게 당장 꺼지라고는 하지 않았다.


거기 등 오른쪽 좀 쪼아봐. 라던지

아니. 아니. 거기 말고 좀 더 아래

어. 어. 거기야. 하는 게 분명했다.


소와 백로의 이러한 모습은

마사지를 받는 점잖은 손님과

정성스럽고 부드러운 손길로

손님을 마사지를 해주는

자상한 마사지사의 모습 같았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아주 딱이었다.


몇 시간이 더 지났다.

소와 백로들이 지금은 또

무슨 짓을 하고 있나 궁금하여

주방 창문을 내다보았다.


백로는 여전히 소들을 옮겨 다니며

진드기 제거 서비스 중이었다.

소들은 비를 맞으며

숙련된 백로 마사지사의 서비스에 몸을 맡기니

온 삭신이 노글노글했는지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소 스토커의 호기심은

이제 저 백로들로 향해 발동하여

저 백로들이 사는 동네는 어디쯤이며

어디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놈이

바다에서 노는 백로들에게

우리 동네 가면 소들이 많으니

거기 가서 소 척추도 잘근잘근 밟아주고

진드기도 잡아먹으라고 가르쳐주었는지

나는 그것이 무척 궁금한 것이다.


내가 백로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지만

백로들은 입을 꾹 다물고

절대 가르쳐주지 않을 거란 걸 안다.

소들도 원체 입이 무겁지만

백로들도 보기완 다르게  입이 아주 무겁다.


백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누가 우리 동네로 가라고 일러주었는지는

죽어도 말하지 않는다.


저 앙다문 백로 주둥이를 보라.

백로가 순순히 대답하게 생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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