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면 '워싱턴보다는 뉴욕' 호주 하면 '캔버라보다는 시드니' 형제의 나라 터키 하면 '앙카라보다는 이스탄불'이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인도네시아 하면 '자카르타보다는 발리'를 먼저 떠 올릴 것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발리는 줄곧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휴양 지면서 신혼부부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그렇게 천국 같은 휴양지의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일본처럼 짧게 다녀오기에는 조금 먼 곳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멀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인도네시아 그것도 수도 자카르타까지 가기로 마음먹게 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아니 정확히는 가야 할 각기 이유가 하나씩 만들어졌고 결과적으로 크게 3가지 이유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이 되었다. 어쨌든 가야 할 이유를 만드니 그 어느 때보다 실행에 속도가 붙었다. 마치 의사가 살을 빼라고 경고했을 때 비로소 다이어트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 첫 번째, 11만 원 항공권
첫 번째 이유였다. 그렇게 특별히 계획된 것이 없는 여행의 시작은 초저가 항공권 가격이었다. 그저 싸다는 이유만으로 결제부터 해 버렸고 항공권을 결제했으니 어느덧 여행 준비의 절반이 끝나버렸다. 당연히 경유를 해야 하고 운이 없으면 연착도 되고 시내버스 같은 좌석에 장시간 앉아있으면 불편해서 어느 순간 엉덩이가 아파서 짜증이 날 것도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여행자' 에게 중요한 것은 정해진 기한 없이 여행해도 된다는 심리적 평안함이었다.
이는 마치 한도가 없는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지만 적당히 써야 감당이 되는 것과 비슷했다.
다시 한번 대만이 좋아졌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는 항공권 가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니 말이다. 항공기에 대한 불편함 혹은 위험함? 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내 걱정 밖에 위치해 있었다. 그저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대만의 지리적 환경이 너무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가격이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여전히 매력적인 가격에 갈 수 있다. 참고로 당시에는 에어아시아를 이용했다>
결제를 마친 후에 통장의 잔고를 살펴보니 조금 위험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두 번째, 버락 오바마의 흔적을 거슬러
타지에서 살게 되면 평소보다 독서량이 증가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안타깝게도 만날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말을 할 일이 별로 없다는 말인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책이 곁에 둘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이 된다. 그러한 이유로 귀국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짐이 되어버린 책들을 얻어오고는 했는데 그때 얻은 책 중 하나가 오바마의 성장기를 다룬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DREAMS FROM MY FATHER)'이었다.
갑자기 前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자카르타가 무슨 교집합이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증이 있을 것 같은 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오바마는 미국 국적을 가진 백인 엄마와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친부는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오바마의 엄마는 이후 인도네시아 국적의 남성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면서 오바마는 자연스럽게 계부의 고향인 자카르타로 이주하면서 그는 자카르타에서 유년시절(6살 ~ 10살)을 보내게 된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 인물에 깊숙이 빠져버린 나는 그의 성장 배경에 크나큰 호기심이 일었고 그의 흔적을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에 항공권 검색을 해 보니 위에 언급한 대로 11만 원 편도항공권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2018년 10월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이 끝난 후 그 열기가 패럴림픽으로 이어지고 있는 붕가르노 주 경기장은 자카르타 지도에서도 가장 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정확히는 자카르타 남쪽에 더 가까웠는데, 이는 자카르타의 부촌이 남쪽에 집중되어 있는 탓이기도 했다. 그래서 외국계 기업들의 사무실과 그로 인해 영업을 하는 고급 식당이나 카페들도 남쪽에 많이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자카르타 남쪽에 위치한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고급스러운 한식당에서 고대하고 고대하던 JFK와 조우했다. 먼저 도착해서 좌석에 앉아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행님" 하고 사투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식당에 있던 모든 외국인들이 쳐다볼 정도였지만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대기업의 인도네시아 지사를 책임지는 주재원과 시간이 남아도는 한량의 만남'이 자카르타에서 성사된 것이다.
인도 뭄바이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후 실로 몇 년 만에 만남이었다. 나는 그가 건네는 악수와 포옹을 통해서 반가움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인도 주재원으로 이제 막 사업을 키워나가던 JKF는 어느새 인도 지사를 성장시킨 후, 그 해 인도네시아 지사까지 책임을 질 정도로 회사의 중역이 되어 있었다. 삶에서 내가 아무리 따라가려고 애써도 그 이상으로 멀찍이 나아가는 존재였지만 적어도 브런치 세계관에서는 내가 먼저 입문을 했으니 선배라고 할 수 있겠다.
JKF는 격주로 인도 뭄바이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업무를 병행하고 있었기에 JFK 일정에 맞춰서 항공권을 결제했다. (덧붙이자면 '뭄바이와 자카르타는 직항이 없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태국과 싱가포르 등을 경유한다고 한다) 대만에서 잠시 한량으로 지내는 나에게는 부러워 보이는 노선이었으나, 업무적인 목적으로 격주로 국제선을 이동한다는 것은 고역임을 잘 알기에 JFK가 할애해 준 시간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쯤 되면 항공권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가야 할 이유는 충분했던 것 같다.
나와 다르게 JFK는 업무차 방문을 했기에 우리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했다. 각자 위치에서 경험하고 또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이야기와 더 나아가 철학적인 영역까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는 각자 위치에서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삶을 대하는 진지함의 깊이까지 공유하면서 Bromance 또한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집의 벽돌을 조심스럽게 올리는 것처럼 차근 차근 쌓아올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또다시 몇 시간 후?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두 번째 만남을 이어갔다.
일요일 오전부터 시작된 두 번째 대화(JFK과 브런치를 먹으며 또 다른 브런치 이야기. 그러니까 이곳에서 글쟁이가 되는 법에 대한 이야기도 이때 시작 된 것이다)는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끝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JFK는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고, 반대로 나는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새벽 4시. 아침 6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나는 공항에 도착을 했다. 새벽 시간임에도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새롭게 준공한 자카르타의 공항은 마치 게임 속 세계로 들어온 것처럼 공항을 이용하는 이들을 환하게 환대해 주었다.
안녕, 자카르타 and 'Good Bye' 자카르타
편도 3만 원 하는 국내선 비행기의 좌석이 편할리 없었지만 어찌나 피곤했던지 약 2시간 동안 비행에서 기억이 나는 건 '앉자마자 눈을 감은 것과 착륙할 때 바퀴가 바닥에 닿는 충격으로 눈을 뜬 것' 뿐이었다. 그 사이에 내가 느꼈던 체감 시간은 고작 3초 정도였다. (하나 둘 셋 하면서 잠이 들었고, 다시 하나 둘 셋을 하니까 도착이었다) 자카르타에서 머무르는 시간 동안 싸구려 숙소만 골라 다닌 탓에 제대로 된 숙면을 못 했기에 피곤이 하늘을 찔렀지만 괜찮았다.
JFK와의 대화는 내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영감이었고, 나의 이야기는 JFK를 브런치 작가의 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
국제선도 없는 작은 소도시의 공항을 벗어나니, 자카르타에서는 흔했던 고층 빌딩도 그렇다고 북적거리는 오토바이나 버스 한 대도 보이지 않는 이곳은 천혜 자연을 자랑하는 바뉴왕이였다. 그리고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서 봉사활동을 왔던 지역을 7년 만에 자유로운 신분으로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비워진 나의 머릿속은 또다시 수많은 많은 생각들로채워졌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여전히 그대로 보관이 되어 있다. 어쩌면 자카르타 아니 인도네시아를 오게 된 4번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읽게 된 버락 오바마의 자서전'을 시작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했던 항공권' 그리고 그 시기에 '세계 인구 4위라는 거대한 잠재적 시장을 시장을 접수하러 온 JFK와의 만남'까지 삼위일체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자! 이제 자카르타 여행도 JFK와의 만남도 끝이 났다. 하지만 나의 인도네시아 여행은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다. 그 이야기는 4번째 이유라는 주제로 따로 다루고자 한다.
P.S
JFK는 Jason From Korea의 약자이며, 그의 글로벌 닉네임이기도 하다. 처음 만났던 순간은 다름 아닌 인도 뭄바이에 있는 어느 풋살 구장이었다. 너무 더워서 마치 방독면을 쓰고 달리는 기분이 들 정도로 힘들었지만 거칠었던 인도생활의 정신적 피로를 해소하며 동시에 인도에서 근무하는 분들과 교류하는 이 시간이한 주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