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거리와 생활 권역 사이
얼마 전 친한 지인의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으셨다. 그것도, 생존 확률이 극악이라 불리는 췌장암. 처음으로 세상과 빛을 맞이한 이후로 줄곧 나와는 상관없는 엽편소설처럼 느껴져 왔던 이야기들이, 서서히 내 주변에서 원치 않는 일상처럼 스며들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누군가 아프다는 말을 들을 때 친분의 깊이를 떠나 남의 일 같지가 않는 것까지도.
이는 나 또한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진짜 나이를 먹어간다는 의미겠지만 동시에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또한 나이가 들어가신다는 의미로 해석이 되었다.
문득, 그런 사실이 슬프게만 느껴졌다. 시간은 늘 똑같이 흐르고 있는데 예전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삶의 크고 작은 멍울들이 조금씩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서. 어떤 순간에는 이름도 모를 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에 감정이 이입되고는 해서.
이를 과학적으로는 여성 호르몬 증가라고는 하지만, 나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고 싶지는 않다.
아니, 정확히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공감대의 시야가 조금 더 넓어졌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나름 세상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잣대가 쌓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다소 외람된 이야기일 순 있지만 해외 봉사 활동을 갔을 때였다.
인도네시아 산기슭, 병원조차 없는 곳에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도 한참을 이동하여 도착한 어느 산기슭.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게 느껴졌던 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대개는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작은 병원조차 없는 곳에서, 사소한 아픔 정도는 스스로 이겨내거나 감내해야 할 수밖에 없는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당장은 봉사활동이라는 명목으로 방문한 의료진이 진료를 해주겠지만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떠날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실제로도 얼굴에 큰 혹을 달고, 치료는커녕 진료조차 포기한 채 일상을 버티는 친구들을 본 적이 있다. 사실상 현지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했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비용이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한 명의 친구는 한국 기업의 후원으로 수술을 받긴 했지만 다른 친구는 선택받지.. 아니 외면당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거액의 돈을 쓰면서 기업의 이미지 또한 제고했어야 하니 말이다. 그런 기업의 판단이 '누군가에게는 빛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되려 상처만 남은' 운명의 엇갈림이라고 해야 할까? 결과적으로 참 아이러니 한 상황이었다.
한편으로는 이곳에서는 암이라는 병에 대한 증상조차도 알지 못 한채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문득 '한국에서 태어난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한 번씩 들고는 한다.
이는 누가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또는 '책에서 그렇게 적혀있어서'가 아니라 실로 경험을 통해서 느껴지는 부분이다.
특히, 시간의 물결에 따라서 건강에 대해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더욱더 많아질수록 느끼고는 한다. 빙판길을 무대 삼아 뛰어놀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 빙판길에서는 엉금엉금 걷거나 애써 길을 둘러 지나치는 사소한 행위부터 잠들기 전에 꼭 양치하는 사소한 습관들까지도.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문득 아프다는 사실에 짜증을 내던 나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반대로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 느껴보기로 했다. 물론, 암이라는 거대한 폭풍 같은 병명을 진단받는 순간 밀려드는 분노와 좌절 마음의 고통도 차마 헤아릴 순 없겠지만 빠른 검사와 진료로 빠르게 회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삶 또한 감사할 수 있도록 마음의 노력을 해 보기로 했다.
지난날 흔들리는 치아 하나에도 예민해지는 나를 보며, 때로는 갓 뜯은 A4 용지에 베인 손가락에서 나오는 피 한 방울에도 밴드를 붙이고, "살이 아물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는 나를 돌이켜 보니 그 시절이 문득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마음도 아프게 한 적은 없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지인의 아버지는 암 판정 이후로 매주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외래검진을 받고 계신다. 대전과 서울 간 거리는 약 165km.
왕복으로 이동할 경우, 약 4시간 이상을 이동에만 소모하는 것이 환자가 보호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이동이라는 것이 신나는 상태로 여행으로 갈 때와, 아픈 몸을 이끌고 진료를 위해서 오가는 것은 상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암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는 마음가짐도 쉽게 무너지고는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암이 무서운 이유는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한 들 누군가는 20대에 찾아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70대에 찾아오기도 한다. 애석하게도 젊으면 더 잘 이겨낼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병들과 다르게 암이라는 녀석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젊은 사람들은 전이가 되려 빠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불과 며칠 전 지인분이 그렇게 40대의 남편과 이별을 고 했다.
문득, 이곳에 더 머물러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혹시라도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아프실 때를 대비해서 병원이 가까운 곳. 심리적으로 이곳이 작은 쉼터 역할을 할 수 있는까?라는 생각에 말이다. 내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면, 언젠가 이곳이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곳에 나의 속내를 조심스레 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