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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Oct 31. 2023

인간개조 원룸로

해병대를 칭하는 이런 말이 있다. "인간개조 용광로" 사람을 완전히 탈바꿈시킨다는 말이다. 2011년에 1140기로 입대했던 나는 그 당시 한껏 달라진 모습으로 전역을 했다. 훈단 때 '악'소리를 하도 질러서 목소리 톤이 내려갔고, 근육량도 상당히 늘어 멸치 몸매를 탈출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늘어서 전역 직후 공익 캠페인을 몇 년 동안 기획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스스로 달라진 모습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스스로 '나는 자신감이 넘쳐나!'라는 생각을 했다기보다 '될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으니 실행력이 남달랐다. 부끄럽거나 창피하더라도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그렇게 인간개조 용광로를 뒤로하고 10년이 흘렀다. 세월이 야속한 게, 회사를 다니며 현실에 맞춰 살다 보니 그 좋던 실행력은 오히려 단점이 되어 있었다.


'오래 하지 못한다' 이것은 30대 전후 나에게 꼭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다. 스무 살부터 직장 생활을 했지만 가장 길게 근무한 회사가 고작 3년, 그 밖에도 일상의 작심삼일이 허다했다. 스타트는 좋으나 과정도, 결과도 누리지 못하는 행실이었다. 하나둘 결혼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숙제가 점점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늦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생겼다.


퇴사를 하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 5개월이 되었다. 사업자 등록을 낸 게 그렇다는 것이지, 열심히 일한 날짜를 세어 보면 과연 얼마나 될까? 꾸준히 일정 업무량을 채워야 하는 사업인데 썩 그렇지 못했다. 내 행동에 발맞춰 매출도 꾸준하지 못했다. 지난 8월에는 드디어 바닥을 찍고야 마는데, 다시 보름 만에 역대 최고 매출을 갱신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내 태도에 알맞은 매출 변화를 여실히 만끽했다.


안도감을 취하고 나니 9월 한 달은 정말 망하다시피 매출이 꺾였다. 열심히 데이터를 쌓아 놓지 않았으니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다. 나의 사업 일대기가 이렇게 끝난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일자리를 구했지만 딱 하루 출근하고선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후 되돌아섰다. 그곳에도 그곳 나름의 치열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연장자였던 직원 한 분이 온갖 쓰레기를 처리하시고, 사장님은 퀄리티를 위해 엄격한 룰을 몇 년 동안 따르고 계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괘씸하게 생각했다. 당장 내 사업도 말아먹기 직전인데 감히 다른 직장에서 적당한 노동으로 월급을 취하려고 하다니. 적어도 월급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때마침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왔다. "그 일 하면 사업은 언제 하게?" 새로운 일자리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중압감만큼 내 사업에도 무게를 갖자고 결심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시도하는 실행력을 방지해야 했다. 최대한 모든 정신과 육체 에너지를 사업에 쏟고 싶었다. 가장 먼저 약속들을 취소하고, 술을 끊었다. 미안하지만 SNS 역시 팔로우의 대다수를 삭제했다. 줄곧 쓰던 블로그와 브런치 글도 발행을 멈췄고, 두 번째 사업체였던 취업 컨설팅도 휴식기간으로 설정했다.


아침 5~6시에 기상해서 머릿속을 사업으로 채우기 위해 책을 읽었다. 딱 한 권의 책만 반복해서 읽었다. 작년만 하더라도 1년에 100권 정도를 소화했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남은 내용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면 오래도록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신중하게 나폴레온 힐의 <think and glow rich>를 펼치고 아침을 시작했다.


30분의 독서를 마치면 컴퓨터 책상에 앉아 보통 밤 8시까지 사업에 매진했다. 그래봐야 12시간이다. 주 6일을 했다지만 72시간에 그친다. (대체 일론 머스크는 어떻게 주 100시간을 일하는 것일지 궁금하다.) 그래도 과거 16개월보다는 훨씬 많은 업무 시간을 가졌다. 그러자 놓치고 있던 오류들을 발견했고, 아니다, 오류를 수십 개 발견했다. 얼마나 사업을 우습게 봤으면 오류를 놓치고 있었는지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매일 반성을 거듭하며 오류를 수정해 나갔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한 달이 되었다. 작심삼일이 한 달이 되기 위해선 매일 사업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갖는 게 아니라, 어제 했던 일이 오늘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반복했다. 그러자 오류 수정을 넘어 새로운 전략을 하나둘 발견할 수 있었다.


달 동안 외출과 SNS를 끊고 오로지 사업에만 매진한 결과 망해버린 9월 대비 10월 매출은 300% 성장할 수 있었다. 자신감과 실행력을 단점으로 여겼지만, 매일 아침마다 사업에 정신을 집중한다면 도리어 끈기와 같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군대도 아니고 좋은 환경도 아니지만, 스스로 단련하여 개조되는 상황이 어느 때보다 행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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