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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 Sep 26. 2020

‘칼퇴’ 해도 되는 줄 알았어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서울에 상경한 지 1개월이 조금 지났을 무렵, 취직에 성공했다. 전 재산이 150만 원 안팎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2개월 안에는 무조건 취업을 해야만 했다.


숨만 쉬어도 1달에 최소 100만 원 이상이 빠져나갔다. 1인 가구라도 필요한 건 2-3인 가구와 같았다.

한동안은 텅 빈 집안을 채우느라 돈이 줄줄 샜다.


다행스럽게도 빠른 시일 내에 취업에 성공했고, 운 좋게 전공을 살린 20대 사회 초년생이 됐다.


‘직장인’이 됐다는 것만으로 이미 매일이 설렜다. 어떤 날은 ‘출세했다’는 생각에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나의 슬픈 자뻑이라는 것을. 첫 직장에서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일은 서툴렀고 또래 직원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뭐 하나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엑셀도 다룰 줄 몰랐고, 복사하기나 팩스 보내기 같은 기본적인 사무 업무도 서툴렀고 심지어 전화 예절도 몰랐다. 민폐 그 자체였다.


한 날은 엑셀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또래인 동료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지방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나왔다는 것 외 거의 무스펙인데 기본적인 사무 업무도 보지 못하는 나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동안 나는 자괴감에 빠졌다.


회사에 있는 8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외로웠다. 마음 둘 곳 하나 없었다(딱 한 곳이 있긴 했다. 회사 화장실. 유일한 나의 안식처)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뭔지 알게 됐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해서 취직한 것이 독이 됐다. 신입이니까, 인턴이니까 배우면 늘 줄 알았다. 몰라도 잘 가르쳐 줄 줄 알았다.

듣기 싫은(지금은 누구에게도 하기 싫은) 말이지만 ‘직장은 학교가 아니다’라는 말은 진짜였다. 출석만 하면, 아니 출근만 하면 자리만 잘 지키면 문제없을 줄 알았다.


‘상사’나 ‘멘토’,  ‘사수’라도 1명이라도 있었다면 나를 도와줬을까. 마음을 덜기 위해서 이 회사의 구조나 환경 탓을 하려고 해도, 결국에 내 탓이라는 생각에 잠겼다. 결국 3개월 만에 쫓겨나듯 퇴사했다(잘렸다는 말이 더 맞다)


그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싶은데, 뭐 정확히 왜 싫어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알고 싶지도 않다) 나도 딱히 좋아하진 않았지만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서 애써 맞추려고 아등바등했다.


첫 직장에서 실패한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1. 눈치 없이 칼퇴를 해서. 2. 기본적인 것도 못해서. 3. 업무에 대해 아는 게 1도 없어서 등등이다.(자존감이 더 떨어질 것 같아서 수많은 이유가 떠올랐지만 3개로 간추렸다)


(나의) 후임자를 빨리 뽑고 싶어서 그런 지, 내가 퇴사하기도 전에 신입을 한 명 더 뽑았다. 확실히 나와 비교가 많이 되는 인물이었다. 지금도 그 회사에 다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얼핏 같이 회사가 이상하다고 욕을 함께 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에 들어온 뉴페이스뿐만 아니라,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좋아해 주지 않았던 첫 직장 사람들. 원망도 했었는데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어렴풋이 얼굴만 기억나는 사람들.


무능력, 무스펙인 나에게 실망하는 3개월이기도 했지만 낯선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가 더 컸다. 어딘가 불편한 눈빛, 답답해하는 말투.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생채기가 남아있다.


서울 첫 직장, 첫 입사, 첫 퇴사는 그랬다. 그때 나의 나이는 25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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