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나에게 그 순간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오랜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가정사라면 더더욱.
영화 <세 자매>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바라본다.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덤덤히 드러낸다.
극 중 첫째 희숙(김선영), 둘째 미연(문소리), 셋째(미옥)는 어른이 된 후 각각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품고 있는 어린 시절의 아픔은 같다. 그 기억들은 지금까지도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보지 말아야 할 남의 가정사를 몰래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느낌이라 더더욱 그랬다.
<세 자매>를 친언니와 함께 봤기 때문일까. 그래서 더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
우리는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한동안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우리도 알잖아."
처음으로 그때의 그 순간을 입 밖으로 꺼낸 순간이었다.
30대가 되어서야 겨우 우리는 그 아픔을 함께 이야기하게 됐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순간들. 늘 덤덤한 언니마저 그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나 보다.
"사과하세요."('세 자매' 미연 역 대사 中)
그래서 <세 자매>의 절규가 더욱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들이니까. 지금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가해자는 평생 기억해야 한다. 꼭 사죄를 해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