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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 Mar 23. 2021

나의 다섯 번째 서울 방

서울살이의 시작

서울살이의 시작은 집, 아니 방 구하기부터 시작된다.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한 가지는 꼭 포기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아니 한 가지가 아니라 결국 한 가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기도 한다.


처음으로 서울에서 살게 됐을 때 머물렀던 곳은 친척집의 남은 빈방이었다. 교류학생으로, 서울에 있는 K대학에 다닐 때 머문 곳이다.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게 1순위였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무엇보다 친척집이 K대학 근처에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빼박'이었다.

친척집에서 비록 눈칫밥을 먹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불편하진 않았다. 딸이 없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정말 나를 막내딸로 받아들였고, 애지중지 아껴주셨다.

덕분에 잘 먹고 잘 잤고 그렇게 원하던 서울 생활을 원 없이 할 수 있었다. 한 학기 정도였지만,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서울살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서울에서 두 번째로 머물렀던 곳은 고시원이다. 말로만 듣던 고시원. 2-3개월 정도 고시원에서 살았다. 본격적인 서울살이에 앞서 예행연습이라고 해야 할까. 독립하기 전에 먼저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모아두었던 돈을 몽땅 털어 고시원의 작은 방을 얻었다. 처음으로 직접 고른 나의 보금자리였다.

고시원은 그간 TV에서 봤던 곳들보다 훨씬 좁았다. 소형차 한 대 정도 주차가 가능할 것 같은 면적. 그 작은 공간에 놀랍게도 침대, 냉장고, 화장실까지 다 있었다.(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곳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나 싶다) 내창이 있냐, 외창이 있느냐에 따라 5만 원-10만 원이 왔다 갔다 했는데 그 돈이 아까워서 창문 없이 살았다.

고시원의 장점은 목돈이 필요 없다는 점이었다. 월 27만 원 정도만 있으면 밥도 주고 라면도 공짜로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 외 단점, 그러니까 고시원에서 살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사실 무수히 많기 때문에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다. 아무튼, 2-3개월도 잘 버텼다고 생각한다.

그 작은 공간에 몸을 구겨 넣고 수많은 고민을 했다. 그 고민들의 결과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고시원에서 탈출한 후 살 공간을 찾으러 다녔다. 도시 뷰를 느낄 수 있는 오피스텔에 살 줄 알았는데 개뿔. 그건 정말 꿈의 집이었다.

부모님의 손도 모자라, 언니의 결혼자금까지 탈탈 끌어모아 목돈을 마련해 골목 구석에 위치한 건물의 원룸을 하나 얻었다.

좋은 집도 아니었는데 더럽게 비쌌다. 도배지는 더러웠고 늘 습했다. 아담한 방이었지만 좁디좁은 고시원보다 나으니까 나름 만족스러웠다.


한 가지 불만족스러운 건 집주인이었다. 집주인은 그 건물의 꼭대기층인 펜트하우스(?)에 살았는데 마주칠 때마다 잔소리를 해댔다. 친척집에 살 때보다 몇 배 더 불편했다.

결국 집주인과 감정이 상한 채로 첫 번째 집과 이별했다. 직장인이 된 후 처음으로 살게 된 집이라 정이 많이 들었는데 끝이 좋지 않아서인지 그 동네에 잘 가지 않게 됐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드디어 꿈에 그리던 풀옵션 도시형 주택에 살게 됐다. 이전 집과 비교하면 보증금과 월세는 비슷했지만 퀄리티는 확실히 달랐다. 다 붙박이로 되어 있어서 인테리어가 엄청 깔끔했다.


그 대신, 회사와 거리가 멀어졌다. 출퇴근 시간이 왕복 2시간 30분이 훌쩍 넘었다. 그렇지만 삶의 만족도는 컸다.


이 집에서 3년 정도 살았는데 이전과 달리 천사 주인님을 만나 아름답게 이별했다. 집을 떠나는 날 눈물이 핑 돌정도로 좋았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서울살이 7년 차인 올해 또 한 번 이사를 가게 됐다. 이번엔 전셋집이다. 그것도 대형 건설사 브랜드 오피스텔. 이번에도 한 가지는 포기했는데, 그건 회사와의 거리다.


이전 집과 같은 동네에 위치한 브랜드 오피스텔을 눈 여겨보다가 전셋집이 나오자마자 계약을 진행했다. 전셋집 전쟁에 실패 없는 선택을 하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좋은 집을 구했다.


월셋집과 달리 진짜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라 이집에 온전히 이사하기까지 1-2달 정도 엄청 시달렸다. 은행 대출까지, 신경 써야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야 일이 조금씩 해결됐다.


이사 온 지 3개월 정도 됐는데, 이제야 조금 안심된다. ‘깡통전세’를 걱정하는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최근에 전세보증금 보험까지 야무지게 들었다. 넘어야 할 산을 넘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나의 다섯 번째 집과 만났다. 이 집에선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이런 집에서 살게 됐으니, 내 삶이 달라질까.


솔직히 말하면 사실 이보다 더 좋은 집에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그리 크진 않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거다. 어떤 집에 사느냐는 사실 부수적인 거니까. 다섯 번째 집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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