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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구 Jan 09. 2024

기업의 DEI를 이끄는 리더: CDO

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2018년에 글로벌 명품 패션 브랜드인 프라다는 검은 얼굴에 빨간 입술을 가진 원숭이 모양의 열쇠고리를 출시했다가 한바탕 여론의 혼쭐이 났다. 원숭이를 이용해 흑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했다는 것이다. 파장이 커지면서 유명 연예인들도 나서서 프라다가 흑인 디자이너를 고용할 때까지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하고 전 세계적 불매운동으로 확산하였다. 이후 프라다는 공식으로 사과하고 해당 제품을 전량 회수했다. 그리고 다양한 인종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다양성 협의회를 구성하고, 인종과 성별 등의 다양성 전략을 마련하도록 CDO 즉 Chief Diversity Officer로 맬리카 사벨(Malika Savell)을 임명했다1.

출처: 프라다

한편 또 다른 유명 패션 브랜드인 구찌는 2019년 초에 890달러나 하는 고가의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를 출시했다가, ‘블랙 페이스(Black Face)’ 즉 흑인 흉내를 내는 흑인 희화 또는 비하 행위라는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후 구찌는 곧장 사과 성명을 내고 해당 제품을 모든 매장에서 수거했다. 그리고 기업의 다양성과 포용성 제고를 위해 CDO를 임명하고 다문화 장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 말이 무색하게도 3개월 후에 또 다른 다양성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는 790 파운드짜리 ‘헤드피스’가 문제가 되었는데, 이것은 시크교도들이 쓰는 터번과 매우 유사해서 ‘종교 비하’ 논란이 된 것이다. 당시에 시크교도 연합회는 “터번은 패션 액세서리가 아니라 성스럽고 종교적인 신앙 물품”이라고 말하면서 구찌를 비난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콧대 높은 구찌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가족 출신인 레네 티라도(Renee Tirado)를 CDO로 임명했다. 그녀는 변호사 출신으로 미국 테니스 협회의 CDO로 일하면서 소수 민족이나 약자 그룹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2.

출처: 영국 일간 가디언


출처: 영국 일간 가디언

사실 패션계에서 인종 차별의 문제는 꽤 유명하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미의 기준이 백인이라는 인식과 함께 백인들이 패션계를 오랫동안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와 같은 ‘인종 차별’이나 ‘종교 비하’ 등의 실수를 연발하는 것은 기업 내에 소수 민족이나 소수 그룹을 대변하고 그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다양성 책임자’ 즉 CDO를 임명하여 기업 내,외의 다양한 그룹과 민족, 문화를 포용하는 생태계를 마련하고자 노력한다.


◆ CDO(Chief Diversity Officer)의 등장

21세기에 들어서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으면서, 기업들은 전례 없이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고객은 더 다양하면서 혁신적인 개인화 서비스를 요구하고, 그들의 입맛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국가 간의 장벽은 허물어지고, 기업 간의 글로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한편 기업 내부의 환경은 어떨까? 오늘날의 기업 조직은 베이비붐 세대로부터 MZ 세대까지 여러 세대가 공존한다. 그리고 세대 간의 갈등과 차이로 조직은 더욱 민감해지고 있다. 게다가 여성과 인종 문제, 장애인, 성 소수자 등 복잡한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여러 갈등의 요소들이 잠재한다. 그래서 한 마디로 CDO는 이러한 기업의 대내외적인 문제를, 전략과 조화로 풀어나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기존의 인사나 총무 부서 등 개별 조직에서는 담당하기가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양성, 즉 Diversity는 오래전부터 HR이나 Finance, 마케팅처럼 기업경영의 한 주류가 되었다. 이후 D&I(Diversity & Inclusion), 즉 ‘다양성 과 포용’을 지나 DEI(Diversity, Equity & Inclusion), 즉 ‘다양성과 공정성, 포용성’으로 진화해 왔다. 실제 경영 현장에서도 CDO 즉 'Chief Diversity Officer' 또는 CD(E)&IO, 즉 'Chief Diversity, Equity & Inclusion Officer'라는 고위 임원이 기업의 다양성 전략을 이끌고 있다. 우리의 용어로 해석하자면 ‘최고 다양성 책임자’ 또는 ‘최고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책임자’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CDO는 최고 경영진에 속해 있어서, 기업의 전략적인 목표나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업 체계에서는 아직 생소한 직책이면서, 사실상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2023년 러셀레이놀드(Russell Reynolds Associates)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S&P500 기업 중에서, CDO를 보유한 기업이 2018년과 2020년에는 각각 48%와 53%였다. 그런데, 이후에 크게 증가하여 2022년에는 74%에 이르게 되었다3여기에는 사실상 앞의 사례에서 언급했던 패션업계의 사건들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여러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특히 2020년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기업들이 CDO의 역할과 중요성을 더욱 인지하게 되었다.


◆ CDO의 역할 

CDO의 역할에 관해서는 많은 다양성 관계자나 학자에 따라 달리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산업이나 지역의 특성, 기업의 조직체계 등에 따라서도 약간씩 상이한 것 같다. 여기서는 필자가 다양성을 연구하면서 정리한 내용을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본다4


첫째는 인력 다양성을 모색하는 역할이다. 즉 기업 안에서 다양한 인력이 양성되고, 이들이 서로 협력하는 조직 모델을 만드는 일을 말한다. 또한 소수민족이나 여성, 장애인 등, 소수그룹에 대한 차별 금지 규정을 준수하고 관리하는 일도, CDO의 중요한 역할이다. 최근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인지적인 스타일을,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인지 다양성을 기획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두 번째 CDO의 역할은 다양성 모델을 기업의 가치사슬과 결합하는 것이다. 다양한 기업의 이해관계자들, 즉 다양한 고객이나 파트너, 공급자와의 관계 속에서, 니즈를 파악하고 제품이나 서비스 전략에 적용하는 역할을 말한다. 그래서 기존의 시장을 강화하고 신시장 개척의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세 번째 CDO의 역할은 다양성으로 기업의 이미지를 향상하는 역할이다. 즉 소수그룹을 포함한 다양한 고객층에 적합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서, 기업의 이미지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의 프라다나 구찌의 사례는 제품의 다양성 문제로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오히려 실추시킨 사례가 된다. 네 번째 CDO의 역할은 기업의 다양성 전략이 탑-다운으로 전개되도록 하는 역할이다. CEO를 비롯한 C-레벨의 임원들과 매니저들이, 먼저 다양성을 잘 이해하고 솔선하도록 지원하면서 기업 전체의 문화로 자리 잡도록 하는 일이다. 다섯 번째 CDO의 역할은 세대 간의 다양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설계하는 역할이다. 즉 기업 내 공존하는 이질적인 여러 세대가 서로의 방식을 인정하면서 협력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CDO의 역할은 시장의 문화나 환경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이다. 즉 다양성으로 발현된 혁신과 경쟁력이, 고객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하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 CDO의 도전

최근 미국 디즈니랜드의 CDO인 래톤드라 뉴튼(Latondra Newton)이 돌연 사표를 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디즈니의 다양성 전략, 즉 성 중립 지향이나 여러 콘텐츠에서 소수 그룹의 캐릭터를 늘려,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글로벌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돌연 사임한 이유는 문화 전쟁의 한복판에 놓이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이뿐 아니라 유명 미디어 기업인 넷플릭스와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등의 CDO가 사임하거나 해고되었다고 한다. 한동안 미국에서 CDO는 유행처럼 늘어났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이유로는 보수층을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염증을 느끼고, 여러 모양으로 CDO를 공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다소 어이없는 사실 때문이다. 맥주 회사인 버드라이트가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마케팅을 해서 불매운동을 당하거나, 유통업체인 홈디포는 인종 형평성을 준수했는지 점검하는 감사를 중단하라고 주주들이 요구했고, 스타벅스의 주주들은 다양성을 고려한 채용 정책이 오히려 차별이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어느 CDO는 다양성을 강조하고 보상 제도를 평등하게 바꾸려는 노력이 자기 몫을 빼앗긴다는 직원들의 반발에 부딪힌다고 하소연한다. 이렇게 회사 내,외부의 반발이 커지면서 CDO들은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다. 최근 사임한 어느 CDO는 소셜미디어에 ‘CDO의 역할은 결코 쉽지 않으며 종종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고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5. 이것은 소위 '다양성 피로감(Diversity Fatigue)’이란 말로 종종 회자하고 있다.


◆ 결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CDO의 필요성과 역할은 절실하다. CDO는 다양한 직원 개개인의 정체성 문제나, 기업 내 소수 그룹의 인권과 차별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을 공격하는 등의 배타적인 이념과도 맞서 싸워야 하고, 때로는 기업의 이익과 상충하는 DEI 정책으로 주주 등 여러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 한다. 한편 신자본주의 속에서 DEI 가치를 근간으로 기업의 경쟁력이나 브랜드를 강화할 수 있는 비즈니스 전략도 모색해야 한다. 동시에 멀티 문화의 글로벌 시장진출을 위한 도전과, 그것을 극복하여 성과로 전환할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정말로 뉴 노멀 시대의 CDO는 초인이 되어야 할 수밖에 없다!


표지출처: Center for Creative Leadership 

https://www.ccl.org/articles/leading-effectively-articles/why-the-chief-diversity-officer-is-a-critical-yet-endangered-role-in-the-future-workplace/


참조문헌

1. https://www.impacton.net/news/articleView.html?idxno=668

2.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4254957

3. https://www.russellreynolds.com/en/insights/reports-surveys/a-global-look-at-the-chief-diversity-officer-landscape

4. “Top Executives In Corporate Diversity”, Derek T. Dingle, Black Enterprise, 2018.03

다양성 시대(2019), 이종구, 서울경제경영

5. https://www.chosun.com/economy/weeklybiz/2023/10/12/VGDQOBYBDBB3RJ4NY3TMSK5Z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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