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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구 Apr 08. 2024

We are the World

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표지출처: 넷플릭스


1985년 1월 28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A&M 스튜디오에 미국 최고의 팝스타들의 차량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이미 그 시간 녹음실에서 작업하던 당대 최고의 스타, 마이클 잭슨을 비롯, 팝 음악의 전설이던 라이오넬 리치, 밥 딜런, 레이 찰스, 스티비 원더, 브루스 스프링스틴, 윌리 넬슨, 폴 사이먼, 배트 미들러 등 40여 명이 넘는 스타들이 그날 밤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마침 컨템포러리 음악인의 최대 행사 중 하나인 어메리칸 뮤직 어워드 행사가 있던 날이어서, 이 장면을 바라보는 언론이나 팬들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사실상 그날의 레코딩 프로젝트를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하려 했지만, 워낙 슈퍼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목받았기에 동선이 알려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여서 무엇을 하려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었다. We are the World!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본 노래일 것이고 영어권이 아니라도 대부분은 그 노래가 주는 의미도 잘 알고 있다. 사실 노래 자체로도 대단한 감동이지만, 그 밤, 단 몇 시간 만에 그 슈퍼스타들이 레코딩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출처: 위키백과

사건의 줄거리는 이렇다. 예전에 유명 가수였고 당시 인권운동을 하던 정치인, 해리 벨라폰다가 아프리카의 심각한 기아 실상을 세계인들에게 전하고, 기금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본인의 명성에 걸맞는 음악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음악 제작자인 켄 그레이건과 함께 'USA for Africa'라는 임시 음악 그룹을 만들어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는 것이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다른 스타들 사이에서도 신임이 많았던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를 먼저 섭외했다. 그리고 노력 끝에 결국 45명의 슈퍼스타로부터 동의를 받아내고, 그날 밤에 모여 불과 6~7시간의 레코딩 작업으로 'We are the World' 앨범이 탄생한 것이다.  

사실 당시 10대였던 필자의 장래 희망 중 하나가 팝 칼럼니스트이었기에 그 시대의 팝과 록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모인 슈퍼스타들 각각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고 있었고,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레코딩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너무 잘 알았다. 그렇기에 최근, 넷플릭스의 다큐인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The Greatest Night in Pop)'이 보여준 그 날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실로 감동적이었다.1

출처: 넷플릭스

필자의 관점에서, 그날의 슈퍼스타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다양성과 포용을 보여주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수준 높은 음악성과 더불어 행동과 인성으로 보여준 톱스타의 면모였다. 이제 이 사건을 다양성의 관점으로 재조명하면서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당시 최고의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의 리더십이다. 그는 위기 때 리더는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를, 주어진 단 몇 시간의 레코딩 시간 동안에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마도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 중에 퀸시 만큼 긴장하고 가슴을 졸였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들 45명을 한 곳에 붙잡아둘 수 있는 시간은 그 밤, 몇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음반 레코딩을 완벽하게 마쳐야만 했다. 그는 먼저 모든 참여자가 볼 수 있도록 녹음실 입구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써 붙여놓았다. '자존심은 몽땅 문밖에 두고 들어오세요(Check Your Ego at the Door)'. 실로 그의 지혜와 리더십이 빛나는 순간이다. 

한편 각 스타의 독특한 개성과 목소리 톤으로 말하자면, 아마 45개의 We are the World 버전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독특한 다른 목소리를 화음이 아닌 유니슨(Unison)으로, 하나의 코러스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천재성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주어진 시간 동안 가슴을 졸이면서도, 각 멤버의 상태를 살피면서 하나씩 완수하는 그의 모습에서 다양성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이것은 마침내 녹음을 완료한 후, 밀려드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그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완벽한 프로페셔널리즘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출처: 넷플릭스

다음으로, 그날의 스타들은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그 작업의 의미와 목표를 향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슈퍼스타가 왜 슈퍼스타인지의 면모와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그들의 삶 속에서 체화된 다양성 존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배려'와도 차원이 다르다. 음악계를 비롯한 예술 창작 분야에서 뛰어난 스타들은, 대개 범인과는 다른 민감한 성격과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공연 있는 날은 절대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는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당일 버펄로에서 'Born In the USA' 공연을 마치고 이날 밤 지친 몸을 이끌고 LA발 비행기를 탔다. 레코딩의 취지만 알고 정확히 무엇을 하고 누가 참여하는지도 모른 채, 막연히 요청받았던 디온 워릭도 퀸시 존스가 하는 일이면 그냥 의미 있겠다고 생각하고 LA발 비행기에 올랐다. 

그 밤의 멤버들은 퀸시 존스가 문 앞에 써 놓은 대로 누구도 자존심이나 입지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참여한 멤버 중, 코러스와는 별도로 자신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솔로와 듀엣에 참여한 가수는 20여 명 정도였다. 코러스에만 참여했던 다른 스타 가수 중, 솔로나 듀엣에 참여하겠다고 프로듀서에게 요청하거나 고집부리는 일도 없었다. 물론 쉴라 E 같은 가수는 다큐 인터뷰에서 솔로 참여를 못 했던 실망감을 보여주었지만, 전설적인 팝 가수였던 배트 미들러나 포인터 시스터스, 홀앤오츠의 존 오츠 같은 스타들은 단지 코러스에만 참여하면서 동료 멤버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는 그 밤에 모인 스타들이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과 겸손함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스티비 원더의 장난기 어리면서도 멤버들의 음악적인 어려움을 세심히 지원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평소 성격이 직선적이고 무덤덤한 밥 딜런이 그의 파트를 스티비에게 부탁했을 때, 그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반주하며 그를 흉내 내 모창하는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이다. 한편 다이아나 로스가 휴이 루이스에게 다가가 본인이 찐팬이라고 악보에 싸인을 부탁하는 장면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다이아나 로스가 누구인가? 1960년대에 슈프림스의 리더로 활발히 활동했고, 1970~80년대는 솔로 가수로서, 당대 가장 성공한 흑인 여성 보컬리스트가 아닌가? 상식으로는 휴이가 먼저 싸인을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녀는 솔직하게 먼저 다가가 슈퍼스타다운 겸손함을 보여준다. 이 일이 발단되어 그 방에 모인 슈퍼스타들은 서로에게 싸인을 요청한다. 

한편 밤샘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배고프고 지친 멤버들은 치킨을 오더해 달라고 요청하고, 티나 터너는 피시버거를 오더해달라고 외치면서 너스레를 떤다. 사실 그날밤의 스타들은 매일 살인 같은 일정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당일 어메리칸 뮤직어워드의 사회를 보면서 6개의 상을 휩쓸었던 라이오넬 리치, 같이 참여해 공연했던 신디로퍼, 쉴라 E 등을 비롯하여, 당일 공연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LA에 도착한 브루스 스프링스턴 등, 누가 보아도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여러 에피소드와 웃음거리를 만들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다. 사실 대부분의 스타는 평소 많은 스태프로 둘러싸여 있고, 이 정도 상황이면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일상인데, 그날 그 스튜디오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출처: 뮈키백과

마침내 밤이 지나고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녹음이 끝났다. A&M 스튜디오의 스타들은 좀 힘들었지만, 그저 색다르고 좋은 경험을 했다 정도의 느낌으로 서로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의 노력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었는지는 3개월이 지나고서야 알게 된다. ‘We are the World’ 앨범이 출시되고 1주 만에 초판 100만 장이 모두 팔리고, 이후 상상 초월의 판매량으로 결국 8천만 달러가 넘게 모금되었다. 그리고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음반 발매 당시 전 세계 10억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We are the World’를 듣고, 따라 부르며 열광했고, 아프리카 기아의 실상과 원조의 필요성을 세계인에게 각인시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리고 이제는 래이 찰스, 마이클 잭슨, 티나 터너, 해리 밸라폰다, 케니 로저스와 같은 슈퍼스타는 고인이 되었다. 그들의 일생이 어떠했든지, 어떤 스캔들이 있었든지, 아마도 그날 밤의 헌신만으로도 꽤 많은 부분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위대한 일이었다. 

  

어떤 부름에 귀 기울일 때가 왔습니다. 세계가 하나로 뭉쳐야 할 때입니다. 어느 곳에서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삶의 손길을 빌려주어야 할 때입니다.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물을 말이에요. 우리는 매일매일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습니다. 누군가는 어디에선가 곧 변화를 일으킬 거라며 모르는 체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신의 위대한 대가족의 일부입니다. 신이 진실을 알고 있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뿐이랍니다. We are the world(우리는 하나이며) 우리는 모두 신의 자녀입니다.2

’We are the World‘의 가사를 음미하면서, 잠깐이었지만 그날 그 밤에 A&M 스튜디오에 머물렀던 슈퍼스타들의 모습과 열정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참조문헌

1.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The Greatest Night in Pop)’,  2024년 1월, 넷플릭스

2. https://namu.wiki/w/We%20Are%20the%20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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