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걸 다 쓰는 이야기
결혼하고 시부모님댁에 얹혀살았다.
방 3, 화 2의 34평 아파트.
얼핏 들으면 괜찮을거 같으나 그 당시 시댁 구성은, 시부모님, 이혼한 시아주버니, 5살 조카, 그리고 시동생 이렇게 있었는데 우리 부부까지 합류하게 된거다.
OMG!!!
1년 8개월 후 천오백만원을 지원받아서(그 사이에 모으지 못했다..ㅠ 나는 이미 첫딸을 낳은 상태.) 방 하나에 작은 주방과 화장실이 있는 월세방으로 이사를 했다.
또다시 2년 후 은행에서 이천을 대출받고 친척분이 천만원을 빌려주셔서 창동역 근처 방 두개, 주방, 화장실이 있는 작은 빌라를 오천 오십만원에 매입해서 이사갔다.(2001년)
3년 쯤 살고 빌라 근처에 있던 친언니 소유의 18평 아파트로 전세로 이사를 갔다.
우리 빌라는 전세를 주고.
이듬해 팔천에 빌라를 팔고
아파트에 전세 칠천 오백에 살았다.
큰 애가 초등학생, 작은애가 유치원.
그래도 괜찮았다.
주위에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비슷하게 아이를 키우던 지인들이 이십평대, 삼십평대, 어떤 부부는 오십평대로 이사 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다지 부끄럽지않았다.
교회 목사님 심방을 받고, 교회 식구들을 초대하고 친구들이 놀러와도 그다지 위축되지않았다.
우리의 속도가 좀 늦은 편이었지만 조바심도 많이 나진않았다.
아직은 삼십대.
이것은 다들 지나가는 과정이고 우리도 나날이 나아질 거니깐 괜찮다... 고 생각했던걸까?
이 후 언니가 아파트를 팔았다.
전세금도 들썩들썩 오르고있었다.
칠천오백으론 창동역 근처라도 갈만한데가 별로없었다.
아이들도 5학년, 6살로 많이 커서 집이 좁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서울을 뜨자!! 였다.
같은 돈이라도 경기도로 가면 더 넓은 집에 살수 있겠지.
좁아도 서울, 이라기보단 멀어도 넓은 곳, 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그래서 찾아온 곳이 경기도 *주다.
첨엔 전세 팔천의 34평 아파트에 살았고 이년 뒤 그야말로 영끌을 하여 옆동 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1억 팔천 오백에 매입하여(2011년) 지금까지 살고있다.
방 4, 화 2의 집.
오십이 넘어 삼십평대의 아파트에 살고있으면 뭐 나름 괜찮은가?
집값이 이억이 조금 넘을까 하는 경기도 한 귀퉁이.
그나마 반은 은행대출인 집.
그저 내가 34평과 38평 두평수로만 이루어진, 우리 동네에서는 그래도 넓은 집이 있는 아파트에서 나온다고 어깨에 힘주고 고개 빳빳이 들고 나오나?
남들이 우리 집 대출, 통장잔고 알게뭐야? 하면서..
이 나이에 작은 빌라, 작은 아파트에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까?
그것이 좋은 일 하느라, 남들 돕느라 자발적인 소박함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냥 능력이 없어서, 돈버는 재주가 없어서, 돈버는데 몸과 영혼을 갈아넣지 못해서 이루어진 결과라면 창피한 일인가? 생각해본다.
아직도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속물근성도 본다.
남편은 이 집은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 나이에, 이보다 더 비참함으로 떨어지고싶지는 않다고 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이 곳에 산지 십년이 넘어가니 지겨워서 좀이 쑤신 걸 수도 있다.
괜히 들썩들썩한다.
좁더라도 다시 서울로 진입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대출 위에 몸을 뉘이는 것보다 월세를 살아도 현금을 쥐고있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다들 말리는 일이겠지?
내 노후.
아이들의 미래.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의미있는 일, 인생에서 추구해야할 것, 이타적인 삶..
이런것들은 다시 멀어진다.
*집 팔아서 남을 돕겠다는 건 아님^^
대출 낀 집을 소유하고있으니 하루하루 목구멍이 포도청이 될수 밖에 없는 현실이 어떨 땐 숨막혀 써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