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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후 Sep 01. 2020

파리에서 방탄소년단을!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의 형태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희에게 가망이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때때로 저도 전부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걸 매우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BTS는 지금 대규모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하고 수백만 장의 앨범을 파는 아티스트가 되었지만, 여전히 저는 24살의 평범한 소년입니다.
 어제의 저는 실수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제의 저도 여전히 저입니다. 오늘의 저는 과거의 실수들이 모여서 만들어졌습니다. 내일의 저는 지금보다 조금 더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이 또한 저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저는 제 인생에서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저는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저 자신을 보듬고 조금씩 스스로를 사랑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평소와 같았다면 그냥 넘어가는 뻔한 말들이 가슴에 콕 박히는 순간이 있다. 내가 처음 방탄소년단을 집중해서 본 것은 UN 연설에서였다. 그날 밤 나는 그들의 콘텐츠를 하나둘씩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반년 정도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유럽 여행 준비에 막바지를 다할 무렵, BTS의 유럽 투어가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간 적 없는 그들의 콘서트를 나는 처음 유럽에서 가보기로 결심했다.



 순탄하지 않았던 외국 티켓팅을 겨우 해내고, 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몽블랑을 지나 파리에 왔다.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일찍 집을 나섰지만, 메트로가 공연장에 정차하지 않고 공항까지 직행하는 바람에 나는 다시 한참을 되돌아와야 했다.  막상 도착해서 본 8만 명의 대기줄은 상상을 초월할만큼 길었다. 하지만 유럽 각지에서 모인 팬들은 곳곳에 음악을 틀고 BTS의 안무를 추며 기다리는 시간조차 즐기고 있었다. 주변에 한국인은커녕 동양인 조차 볼 수 없었지만 같은 노래를 즐기고, 공감하고, 누군가를 응원하는 에너지에서 나는 익숙함을 느꼈다. 비가 내려 모두가 우비를 쓰고 있지만 얼굴을 찌푸린 이는 하나도 없었다.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티켓 검사를 받을 차례가 됐다. 하지만 해외 콘서트는 나에게 쉬이 관문을 내어주지 않았다. 내 티켓을 찍은 프랑스 스태프는 자꾸 알 수 없는 불어를 하며 입장을 막았다. 주변에 동양인도 없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아 답답한 찰나 다른 외국인 한 명이 영어로 상황을 설명해줬다.


"네 티켓이 유효하지 않아. 다른 게이트로 가봐야 한대."



 나는 또다시 다른 게이트의 긴 대기줄 끝에 섰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지만 나는 여전히 긴 줄 끝에 서있었다. 이미 공연장 안에서는 기대감에 부푼 사람들의 함성이 들렸다. 공연장을 둘러쌓던 대기줄도 이제 거의 사라져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또다시 나의 차례가 됐지만 내 티켓은 여전히 입장 불가로 떴다. 내 카드로 직접 티켓팅한 표였는데 대체 왜. 파리까지 와서 대체 왜. 억울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어떤 방도도 찾지 못하던 그때, 호출을 받고 온 다른 스태프가 영어로 처음부터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다시 티켓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새로 티켓을 다운로드하고를 반복한 결과, 드디어 티켓이 정상 인식이 됐다. 그 스태프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돈만 날린 채 내 상황을 비관하며 숙소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공연 시작을 5분여 앞두고 공연장을 향해 뛰었다.


 처음 눈 앞에서 본 그들의 무대, 관중들의 미친듯한 환호, 심장을 뛰게 하는 음악. 시작부터 끝까지 에너지가 넘치는 무대였다. 나는 인생 최고의 공연을 파리에서 즐겼다.

 특히 프랑스 사람들은 공연의 하이라이트에서 발을 구르는 문화가 있다. 8만 명의 사람들이 발을 구르기 시작하면 내가 있는 이 공연장이 우주의 다른 곳에 위치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공간이 지구로부터 떨어진 세상과도 같았다. 그 기분이 생소하면서도 미친 듯이 좋았다. 관객석에 있는 나도 이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 자신을 향한 발구름 소리를 듣는 방탄소년단은 어땠을까. 언어도, 문화도, 생김새도 다른 8만 명의 관객들이 자신에게 이토록 환호하는 것을 보며 그 순간 어떤 감정이었을까. 짐작도 할 수 없다. 관객들은 방탄소년단의 환상 속 이미지를 보고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사랑이었다.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위로가 있다. 바로 옆에 있는 가족, 친구, 연인에게 받는 사랑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랑의 모습이 아니다. 언어도, 살아온 환경도, 생김새도 다른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사랑과 위로도 존재하는 것이다. 곁에 있는 가족도 자신을 구할 수 없던 누군가에게 그들의 노래는 한줄기의 희망이 되었을 테고, 사는 게 의미 없던 누군가에게 그들의 무대는 다시 심장을 뛰게 하는 삶의 이유가 되었을 테다. 끝없는 고난에 지쳐있던 누군가에게 그들의 메시지는 '우린 다르지만 결코 다르지 않다'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의 성공 이유를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한다. 미디어의 수혜, 팬들과의 소통, SNS의 확산, 진정성 등 많은 요인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중 '성장 스토리'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들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작 또한 너무나 평범했고, 때로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의 스토리를 안다. 나아가 그 감정과 경험을 스스럼없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당당히 전한다. 그것에서 많은 사람들은 위로를 얻고 희망을 찾았다.



 파리에서 만난 방탄소년단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자 8만 명의 관중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가수였으며 그와 동시에 비슷한 또래의 청춘이었다. 다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삶에 대한 아낌없는 태도를 보았다. 그들은 무대에 아낌없는 열정을 바치고, 아낌없는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아낌없이 애쓰고 고민했다. 최고가 되기 위한 고민이 아닌 진심에 대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방탄소년단이 한국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들의 이름은 더 이상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으로 편견의 경계를 허무는 일에 여전히 힘쓰고 있다. 나는 그들의 끝없는 성장을,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청년의 화양연화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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