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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후 Nov 20. 2020

파리에서 나를 사랑하기

나에게 사소한 애정을 건네본다.

파리의 생활에 적응해간 무렵이었다.

나는 아침으로 볼로네제 파스타를 먹고, 장을 보러 갔다. 내가 외국에 살며 가장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는 장을 보는 일이다. 장을 본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아는가? 궁금한 재료를 이것저것 골라보고, 내가 좋아하는 취향으로 바구니를 가득 채우는 일은 아주 든든하기 짝이 없다.


저번에 볼로네제 소스를 샀으니까 이번엔 크림소스 파스타를 만들어 볼까?
닭가슴살을 사서 덮밥을 해 먹을까? 그럼 계란도 더 사야 겠네.

아, 이 초코 시리얼은 아침마다 먹을 일이 기대될 만큼 맛있었어! 이번에 또 사야 해.

디저트로 이 치즈케이크를 사둘까?

더군다나 외식 한 번할 돈으로 여러 번의 끼니를 행복하게 채울 수 있다니! 장보기는 내가 나를 돌보고, 가장 쉽게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한국에서는 기껏 해야 두 끼를 먹고, 그마저도 귀찮아서 라면을 먹거나 아침에 먹은 것을 또 먹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밖에서 먹지 않는 이상 누군가 사다 놓은 것들로 하루하루 연명했달까. 하지만 이 곳 파리에서는 나뿐이다. 나를 챙길 것도 나뿐, 장을 봐야 하는 것도 나뿐.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이왕 먹는 거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다. 더 이상 끼니를 챙기는 것이 귀찮지 않았다. 여행은 단순히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 돈을 많이 쓰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다. 모든 과정이 '나를 위한'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꽉 찬 나날들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에 대한 애정으로 채운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부슬비가 내리는 저녁, 하루는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파리의 한 가정 식당을 찾았다.

그곳은 작은 공간에 서너 개의 테이블만 두고 주인 할머니 혼자 요리하는 비스트로였다. 내가 갔을 때엔 세 개의 테이블이 차 있었다. 주인은 조금만 기다리라는 제스처와 함께 피스타치오를 건네주신다. 한 입, 두 입 꺼내 먹는데 주인은 다시금 나에게 오더니 과자와 작은 와인잔을 손에 쥐어 주신다.



작은 테이블 공간이 비어지고 나는 부르기뇽을 주문했다. 그곳에 동양인은 나 혼자 뿐이었다. 모두가 프랑스어로 대화하지만 친절하게도 손님들이 나서서 나에게 이야기를 설명해주곤 했다. 내가 프랑스어로 아주 맛있다고 말하자 할머니는 애정 어린 손길로 나의 등을 토닥였다. 주인은 내가 레스토랑을 떠나기 전까지 체리를 한 움큼 주고, 작은 기념품도 주고, 프랑스식 건강주도 따라 주었다. 아주 정성스럽고 행복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주인을 보며 사람들은 함께 즐거워했다. 주인은 모든 손님과 사진을 남기고, 레스토랑을 나서는 나에게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는 애정 어린 말을 전했다. 세 시간 동안 정성스러운 음식을 준비하는 느린 식당. 자신의 레스토랑을 방문한 열 명 가량의 낯선 사람들을 웃게 해주는 주인 할머니. 그녀의 인생은 참으로 멋있었다.

사소한 애정이 넘치는 곳. 사소한 애정은 지나치기 쉽고, 선뜻 건네기도 어렵다. 사소할수록 자연스럽게 베풀기 어려운 게 사랑이다. 살면서 나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사소한 애정을 받고, 때때로 그것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나는 파리에서의 많은 날을 공원에 가서 책을 읽거나, 세느강에 앉아 글을 쓰거나 엽서를 썼다. 세느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노트르담에 도착하기도, 에펠탑에 도착하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과로만 채운 나날은 파리라는 공간 속에 더욱 아름다웠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지구의 일부에서, 해야 할 것이 정해지지 않은 시간 속에 살아간 꿈이었다. 지난 50일은 나에게 현실이자 현재였지만, 꿈에 가까웠다. 꿈꾸는 이상을 실현한 나날.



만약 당신이 잠깐의 텀을 원한다면, 하지만 용기가 없어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행이, 잠깐의 휴식이 인생의 해답이 되진 않는다. 이 여행이 끝나면 내 삶이 180도 바뀌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들로 당신은 더 나은 내일을 꿈꿀 것이고, 앞으로 살아갈 더 많은 날들을 자신의 선택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나이에는 무얼 해야 한다는 것, 새로운 시도를 한다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 다음에, 다음에, 그다음에. 내 삶을 이런 말들에 휘둘리지 말고, 어떤 선택을 하든 나를 책임질 수 있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선택의 시기는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누군가와 비교하지 말고, 늦을까 봐 불안해할 필요도 없이 내가 정한 나의 텀이자 나의 삶. 당신이 일 년, 한 달, 일주일, 아니 단 하루라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채워가기를.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을 챙기고 사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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