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후 Jan 30. 2020

말 그대로 배낭여행

혼자를 위한 도시, 방콕

잔스포츠 백팩 하나 덜렁 메고 방콕 시내 한복판에 서있다. 버스에서 내려 람부뜨리 거리에 있는 숙소로 걸어가는 동안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싶을 만큼 어안이 벙벙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사실 무덤덤했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고 공무원 수험기간 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라서 그런지 기대보다는 긴장의 두근거림이 시작됐다. 비행기에서 내려 방콕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자 비로소 실감이 났다. 화려한 불빛과 차분한 날씨가 아주 매력적으로 섞여있는 방콕의 집과 거리를 보면서, 아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겠구나 직감했다.




방콕에서 머물렀던 숙소는 짜오프라야 강이 옆에 흐르는 람부뜨리 거리의 호스텔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 여행을 가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근사한 호텔에서 호캉스도 하고, 수영장도 즐기고 하던데. 도망치듯 떠나온 돈 없는 휴학생(나이로 치면 백수)이라 그런지, 만원 남짓한 돈으로 도미토리가 아닌 싱글룸에서 묵을 수 있단 사실만으로 감격했다.

말이 좋아 싱글룸이지, 씻거나 볼일을 보려면 2층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내 방에는 작은 테라스가 딸려 있었고, 숙소 로비는 작은 공원으로 가꿔져 있어 휴식하기 좋았다.

무엇보다 태국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곳인, 람부뜨리 거리 한가운데에 숙소가 있다는 점이 여행 내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유명한 방콕의 사원이나 사람들이 추천한 그 어떤 핫 플레이스보다, 문 밖만 나가면 펼쳐진 살아있는 거리의 풍경이 방콕 그 자체였다.


이 곳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것!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여행 스팟!

꼭 먹고 꼭 해야 할 것은 누가 정하는 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천하는 것은 좋을 때도 있지만, 그것으로만 여행을 채운다면 여행 후에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을 느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남들이, 이 사회가 좋다고 세뇌하는 것들 (이를테면 공무원을 꿈꿨던 과거의 내 모습)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루는 방콕의 작은 수상마을인 반 실라핀에 갔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택시나 그랩보다는 마을버스를 자주 이용했다.

방콕은 그랩과 지하철이 잘 갖춰져 있지만 내 숙소는 지하철 역과는 거리가 멀었고, 혼자 그랩을 타기엔 몇백 원밖에 하지 않는 버스의 매력이 훨씬 컸다. 사실 나는 서울에서도 지하철이나 택시보다 버스를 훨씬 애용한다. 그냥 나라는 사람은 버스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구글맵에서 알려준 마을버스가 오지 않자, 나는 구글맵 경로와 비슷한 태국어 노선을 가진 버스에 운을 맡겨 타기로 했다. 가끔은 불확실한 가능성에 용기를 가져보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 아닌던가. 다행히 거침없이 난폭 운전하는 버스기사님 덕에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고 빠르게 마을 근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더운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묻어난 골목골목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조그만 다리로 이어져 있는 수상 가옥의 풍경은 낯선 이방인을 들뜨게 했다.


이 마을에선 한적한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도, 교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도, 하릴없이 상점 앞에 앉아 있는 사람마저도 평화로운 얼굴을 띄고 있다. 내가 살던 곳에서도 보았던 낯설지 않은 삶의 모습. 하지만 그들의 표정과 여유로운 기운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타인인 내가 어떤 사람을 두고 행복하다, 불행하다며 섣불리 구분할  없다. 적어도 이 마을의 사람들은 태어난 환경에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의 일상에서 한 가지가 보였다. 평생을 경쟁에 시달리며, 누군가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살아가진 않을 거란 걸. 그런 삶은 서울에 살던 나와 너무나 다른 형태라는 사실이 조금 슬프기도 했던가.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태어난 지역과 살아가는 문화에 따라서 참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문명이 거대하게 발달한 대한민국에 사는 내가, 작은 마을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태국의 이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 살기 편리하니까, 돈을 더 잘 벌 수 있으니까, 이는 곧 모두에게 좋은 환경인가?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우리는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로 각자의 삶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에서 나를 사랑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