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사의 시작은 열두 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활발하고 회장을 도맡는 언니를 따라 부모님은 나를 컵스카우트에 등록시켰다. 활동적인 언니와 달리 조용했던 나에겐 그 시간이 고역이었다. 컵스카우트 활동이 있는 금요일 전 날부터 내 심장은 콩콩 뛰었다. 눈에 튀는 단복을 입어야 하는 것도, 동갑이 아닌 언니 오빠들과 팀으로 활동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활동에 가던 나는, 한 학기만에 컵스카우트를 그만두기로 한다.
한 번은 영어 챈트 대회에서 대상을 탔던 언니를 따라 챈트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나는 간신히 장려상을 탔다. 나는 대체 뭘 잘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게 나인 걸.
중학생이 돼서도 따라쟁이의 역사는 멈추지 않았다. (언니가 그랬듯이)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수월성 교육을 다녔다. 면접을 보고 어렵사리 합격한 교육임에도 나는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 또한 일 년을 겨우 다닌 끝에, 엄마를 설득해 그만둘 수 있었다.
나의 길은 앞서 걸은 언니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 나의 앞엔 늘 거뜬히 상을 타고, 공부를 잘하는 언니가 있었다. 나는 쉽사리 실패하거나, 겨우 언니 발 끝에 미친 일화가 수도 없이 많았다.
어릴 때는 언니와 다르게 어떤 일이든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머저리로 여겼다. 어린 나는 몰랐다. 언니와 나는 다른 사람일 뿐인데, 언니 같지 못한 나를 어딘가 하자 있는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보다는 3년 먼저 앞서간 언니를 성공의 지표로 삼고 따라 하기 급급했다. 언니와 달리 버티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나는 끈기가 약한 사람이구나' 단념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
사실 나에게 중요한 건 영어 챈트 대회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일 년 중 독서퀴즈대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수월성 교육에서 하는 영어마을 캠프보다 학교 도서관에서 자는 1박 2일 캠프가 훨씬 즐거웠다. 수학을 싫어하고 영어를 좋아했던 언니와 달리, 누구보다 수학을 좋아하던 나였다. 이십 대 중반이 지나서야, 나는 서서히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대기업 취직이라는 확고한 꿈이 있던 언니와 달리, 나는 그런 꿈이 없었다. 그럼에도 취업 준비 첫 시즌에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기업에 허겁지겁 원서를 썼다. 당연하게도,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가 되고 말았지만.
내가 대기업 취직에 꿈이 없는 이유는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서였을까?
그보다는 나의 커리어에 실직적으로 도움이 될 회사를 다니고 싶었다. 내가 바란 건 대기업의 소속보다 내가 관심 있고 가슴이 뛰는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남들이 좋다는 게 나에게도 좋다는 건 아니'라는 당연한 이치를 알면서도, 안정을 포기하는 건 나를 작게 만들었다. 다행인지 몰라도 대기업에 불합격해도 크게 낙담하진 않았다. 오히려 서류가 붙으면 의아할 정도였으니까. 나를 왜? (정신승리인가 싶지만, 진짜 속마음은 그랬다.)
최근 에밀리 와프닉의 책 <모든 것이 되는 법>에서 다능인이란 키워드를 접했다. 진득하지 못하고 뚜렷한 목표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다양한 관심사와 열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사람. 책에서 말하는 다능인의 모습이다.
영화, 연극, 스페인어, 목공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곁다리 걸쳐온 지난날의 나를 떠올렸다. 그래, 나는 뱁새가 아닐지도 몰라. 나의 딴짓은 시간 낭비가 아닐지도 몰라. 처음 나에게 '다능인'이란 정체성을 부여했다. 나는 끈기가 없는 게 아니라 관심사가 많은 거였다. 좋아하는 게 많아서, 남들이 하라는 걸 따라가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먼 먼 길을 돌아온지도 모른다.
내가 동경하는 삶은 대기업에 다니는 언니가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게 여전히 많은 나는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회사원보다 관심사를 펼칠 수 있는 '1인 기업'을 꿈꿨다. 그게 마케터나 카피라이터일 수도,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일 수도, 책을 쓰는 작가일 수도, 세계를 떠도는 사진작가일 수도, 가구를 만드는 목수일 수도 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모든 것이 되고 싶었다.
어차피 내 인생, 한 번 지나면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
재미있게 살다 좋은 사람들과 일하며 그렇게, 좋아하는 세계를 확장하며 걸어가고 싶었다. 내 깊이 묻혀있던 꿈을 말로 내뱉자 처음 깨달았다. 해볼 만하겠는데?
그러기 위해선 모든 선택의 기준을 '나'에게 두어야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기존의 일을 끝마칠 때도 기준은 오직 당신에게 있다.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용기가 나지 않아 꽁꽁 싸매 놓은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삶, 당신은 사실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에 안정이라는 게 있을까? 내 인생의 정답은 내가 내린 선택들 밖에 없다.
모두와 비교하고, 모두가 좋다는 선택을 따르기보다 내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나와 잘 살아보기 위해 과감히, 또한 전폭적으로 나를 믿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