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어푸 Feb 05. 2022

오늘은 나의 생일이고, 나는 생일이 싫습니다

나의 생일에 할아버지 죽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던 열세 번째 생일 아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나는 학교가 아닌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슬픔에 잠긴 어른들 사이에서, 처음 가본 장례식장이란 곳에서,  숨죽이며 생일을 지나 보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의 생일은 아주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지나다. 열일곱 살의 생일, 아무도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미역국이 없는 아침상을 꾸역꾸역 먹고 학교를 갔다. 학교가 끝나고 혼자 영화관을 가고, 밥을 사 먹고, 밤 열두 시가 지나서야 집에 돌아갔다. 뒤늦게 내 생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가족들은 미안해했지만, 그 후로 유독 내 생일은 많이도 잊히고 사과받기를 반복하며 그냥 지나가 버리는 날이 되었다.

 


엄마는 말했다. 해가 바뀌고 정신이 없다 보니 내 생일은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고.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십 개월을 품고, 비로소 낳은  어떻게 엄마도 잊을 수 있? 차라리 말이라도 하지 말지.’ 뱉지 못한 말이었다.

 

아빠가 내게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언니가 태어나던 날은 아빠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 가장 행복한 날이었어." 처음 아이를 낳던 순간의 기쁨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아빠는 말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당연히 그구나, 둘째로 사는 건 항상 그런 거구나' 생각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다. 술만 먹으면 하는 아빠의 말이 귀를 틀어막고 싶을 만큼 지긋지긋다. 누군가의 다음인 삶. 두 번째가 당연한 삶. 그러니 서운해선 안 되는 삶. 나의 첫 단추는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생일이라 좋았던 기억도 있다. 친구들이 깜짝 파티를 해줬던 열두 살의 생일, 친구들과 함께여서 행복했던 열여섯 살의 생일. 친구가 미역국을 직접 끓여줬던 열일곱 살의 생일, 그 밖에도 괜찮았던 여러 번의 생일들. 하지만 머릿속을 헤집고 꺼내야만 나오는 행복한 기억과 달리, 슬프고 외로웠던 기억은 '생일'이란 단어에 반사 조건처럼 튀어나왔다. 행복했던 기억보다 슬픈 기억이 더 오래 강렬하게 남는 인간의 사고 회로를 탓해야 는 걸까.

 

 

그리고 올해의 생일은 제주에서 혼자 보내게 됐다. 누군가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 없이, 누군가로 인해 서운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에 혼자인 생일 꽤나 평화로웠다.

 

그러다 나처럼 생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일이 돌아오면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사람, 축하를 받아도 되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인터넷에 생일 축하를 검색하면 나오는 '생일인데 아무에게도 축하받지 못했어요, 제가 인생을 잘못 산 걸까요?'라는 질문글, 축하받지 못한 외로움, 서운한 감정들. 더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되려 행복할 가능성을 상쇄하는 날. 나는 여전히 생일이 싫었다. 나에게 생일은 무사히 지나가버리길, 되도록 빨리 사라져 버리길 바라는 일 년의 유일한 날이었다. 

 

 



그동안 내가 생일에 부여한 의미 무엇이었을까? 누군가로부터 축하받고 싶은 마음, 그중에서도 가족에게 축하받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컸다. 그럴수록 생일에 의미를 지웠다. 그래야 축하받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덜 할 테니.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게 마냥 좋은 방법이 아니건만, 애써 중요하지 않 나조차도 나의 생일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중요한 날이 맞다. 나의 인생이 시작된 날인데 그것만큼 의미 있는 날이 있을까. 혼자 보내는 올해 생일에는, 작정하고 의미를 여해 마음껏 행복겠다고 다짐했다. 생일의 의미를 남에게서 찾지 말고, 나에게 찾겠다고 말이다.

 

대단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다. 축하의 주체를 타인이 아닌 나로 바꾸니, 생일은 좋고 싫을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나에게 축하하면 그만인데! 축하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으면 되는 거고!



“너의 인생이 시작된 오늘을 축하해!”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좋아해야 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는 나로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만, 지금은 내가 살아있지 않나. 살아있음에, 앞으로 살아갈 날에 오늘만큼은 나에게 축하를 했다. 12시 정각에 축하 연락이 오지 않아도, 챙겨주는 이가 없어도, 하물며 아무도 나의 생일을 모른대도, 생일을 우중충하게 보낼 필요는 없었다. 나의 생일이 처음부터 특별하지 않았더라내가 기억했으니 됐다. 나는 나의 생일을 죽는 날까지 기억할 것이니 괜찮다.

 

카페에 와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이 순간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 더할 나위 없는 생일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빵집에 들어갔다. 이미 어제 받은 케이크가 집에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레드벨벳 케이크를 하나 샀다. 가장 좋아한다 말하면서 한 번도 생일날 먹은 적 없는 레드벨벳 케이크를.

 

 

생일이라 특별히 더 외로움을 느낄 사람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 싶지 않다. 혼자여도 뭐 어떠냐는, 축하를 받지 않아도 큰 대수는 아니라는 나의 말은 진심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내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누군가로부터 받은 마음과 선물이 아니라 '너 벌써 스물일곱 해나 산거야? 그래, 살았으니 됐다. 오늘 맛있는 거 꼭 먹어라' 라며, 내가 나에게 가볍게 웃어 보이니 혼자인 생일도 괜찮은 날이 됐다. 꼭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누구와 함께 하지 않아도 '살아가느라 고생이 많다. 오늘만큼은 내 기분을 최우선으로 돌보면서 하루를 보내자' 메모에 적어본다.


완벽한 생일이 아니라, 나와 좀 더 친해지는 생일이 되길.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나에게 주는 선물을 하나 골라봐야겠다. 누구에게 받길 기다리기보다 나 자신에게 주고 싶은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을 받을 자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