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의 독서법을 말하다를 읽고....)
나는 책을 좋아한다. 아니 책을 사랑한다.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책을 아낀다. 그래서 절대로 책을 누구에게 빌려주지 않는다. 나는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욕심나는 책이 있으면 갖은 아부를 떨어서 가져오거나 사 오기도 한다. 꼭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중고서점에서 아무리 비싼 가격에 내놔도 앞뒤 안 보고 질러버린다.
어렸을 때는 아빠가 사 준 단행본 세계명작집 10권이 전부였다. 내가 그 책들을 닳아지도록 보니까 아빠가 한 권, 한 권 사다 주셨다. 그러다 동네 누구네 집, 건넌 마을 누구네 집 가면 책이 많다는 정보를 들은 뒤론 그 집에 가서 주인도 없는 방에서 그 집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날마다 찾아다니며 책을 읽었다.
나의 그런 책 탐험은 고등학교 때 도시로 유학을 와서 친구와 함께 자취생활을 하면서 잠시 멈췄다. 엄마, 아빠의 조화롭지 못한 부부생활의 여파를 겪으며 오랜 방황을 했다. 다니던 학교가 미션스쿨이라 수녀를 꿈꿨다. 수녀가 되면 이태리에서 공부를 시켜준다니까 그 조건도 너무 좋았다. 내가 세상에서 젤루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그건 안된다며 극구 반대하고 나도 외할머니를 두고 떠나기가 아쉬워 그 꿈을 접었다.
대학 때는 프랑스어를 전공해서 가까이 한 프랑스 작가 중 까뮈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 덕분에 반항심이 깊어지기도 했다. 한 편 언어가 갖는 기호로서의 상징성에 매력을 느껴 계속 공부하고 싶었으나, 4학년 때 내가 1학년 때부터 꾸준히 하던 학교 앞 알바 레스토랑에서 월급사장을 제안하는 바람에 현실을 택했다.
그 후 아기 엄마가 되어서 엄마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좋아하는 책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육아를 책으로 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욕심 없이 키워서 서울대를 가진 않았지만 내가 의도한 대로는 자라주었다. 내가 현실적인 욕심을 내었으면 그 기준도 맞출 만큼 출중한 아이들이었는데, 내가 왜 결이 고운 아이들로 키운 데만 초점을 맞췄는지 지금와서는 자녀들에게 조금 미안하다. 맥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에 나오는 그런 품성의 인간으로 자라주었다. 가끔 병원에서 바뀐건가 싶을 정도로 나에겐 과분한 아이들이다. 다 책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큰아이가 4학년, 둘째가1학년, 막내가 6살 때까지 세 아이가 내 무릎에 기대고 엎어져서 내가 읽어주는 책을 들었다. 그 뒤로는 여러 가지 배운다고 밖에 나오고, 교대 편입에 도전하느라고 꾸준하게 이어가지 못했다. 책을 좋아하니 부지런히 내 책과 아이들 책을 사다 나르기만 했다. 책을 놓을 곳이 없어서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했을 정도다.
책에 치여서 한 번은 집에서 왕창 책을 빼고 꼭 갖고 싶은 책만 놓고 다 처분했다. 어린이책은 중고서점에서 가져갔지만 어른 책은 새 책이 아니라 안 가져갔다. 고물상에 넘겼다. 1톤 차가 와서 우리 집 책을 싹쓸이 해갔다. 내 책들을 큰 망태에 쌓아 저울로 잰 다음 지하창고로 쏟아버렸다. 집에 돌아오니 집이 널찍하고 쾌적해서 좋은 기분도 잠시 지하로 쏟아져 내린 책들이 아까워서 다시 돌아가서 가져오고 싶었다. 마음이 안 좋았다. '다시는 책을 저렇게 안 내보내야지.' 라고 다짐했다. 그 뒤로는 가져가겠다는 지인이 나타나면 주거나 아파트 앞에 내놓으면 사람들이 가져가게 해서 정리하는 법을 택했다.
그 후 초등학교 교사가 되자 수업 관련, 교사관련, 아동 관련, 심리 관련 책들을 열심히 사다 나르며 읽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교사직에 자리가 잡히자 관심의 영역이 넓혀져 갔다. 이젠 책을 읽다가 그 책에서 소개되는 책이 나오면 그 책을 읽는 것으로 가지치기를 했다. 신랑 입이 곧 말할 것 같았다. “또 금세 책값이 00이 되겠네.”
산 것을 다 읽은 것도 아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책은 다 이상주의적 소재였던 것 같다. 단 한 번도 독서를 재화의 수단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앎과 문제해결의 수단으로는 생각했기에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항상 책을 가까이했다. 문자로 된 것은 다 좋아하는 내가 왜 그것은 생각 못하고 읽을 기회가 없었을까?
나이가 들어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읽은 책을 통해 부동산은 오히려 실패하고 현실에 눈을 떴다.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책들을 만났다.
한근태 작가님도 작가님의 책들마다 일관되게 말씀하신다. 독서는 현실을 잘 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공부해나가는 요즘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다.
이런 세상을 몰랐으면, 유유자적 평범하게 살 뻔했다. 아니, 나태하게 살 뻔했다. 돈 낭비가 무서운 게 아니라, 시간의 낭비, 능력의 낭비가 진정 무서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근태 작가님을 모른 상태에서 처음 접한 책이 『인생에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이다. 거기엔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밥그릇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 마디로 올인하라는 것이다. 난 지금 밥그릇을 걸었다.
외가나 친가나 첫째인 나는 위로 언니, 오빠가 없다. 살면서 딱히 가까이한 선배도 없었다. 결혼 후 늦게 대학 때 조교하던 선배와 가까워졌는데, 언니가 생겨 넘 좋았는데....아쉽게도 40대에 자궁암으로 떠났다. 그나마 나에게 조언해줄 수 있었던 단 한 사람, 언니가 가끔 보고싶다.
선배, 멘토, 스승이 나에겐 없었다.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영양가 없이 읽은 것 같다. 그 뒤로 스승의 필요성을 느껴 고수를 만나기 위해 좋은 강의를 찾아다녔다. 길잡이의 안내를 받고 하는 공부는 확실히 달랐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알아지는 것도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은 배워야 하고 스승에게 고개 숙여 배움을 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한 작가님은 우리가 하는 공부, 지식과 경험의 축적은 결국은 직감 단련을 위해서라고 했다.
『한자는 어떻게 공부의 무기가 되는가』에서는 후적박발厚積薄發을 강조하며 “쌓는 것이 먼저고 드러내는 것은 나중이다.”라고 했다. 자신을 먼저 채우고 채운 걸 통해서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작가님이 계속 강조하시는 몰입과 집중, 디테일, 심플라이프 등은 거인들의 강조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아마도 성장을 위한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의 나는 분명한 목적 있는 책 읽기를 하고 있다. 단순히 읽고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웃풋이 있는 생산적인 독서를 지향한다. 『고수의 독서법』에서 한 작가님은 “아웃풋없이 인풋만 하면 정체된다. 뚜렷한 목적 없이 취미로만 읽으면 성장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나섬에 목적지가 분명하면 그 길이 순행하듯이 책 읽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목표가 분명하니 늦게 안 과제도 바지런하게 이렇게 챙겨진다.
책을 사랑하고 문자를 사랑하던 나는 이제 책 내용을 더 호기심 있는 마음으로 살펴보고, 나만 책 읽기를 좋아하는 데서 끝나지 않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이 책 읽는 즐거움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뇌가 섹시한 사람이 좋다. 타인의 감겨 진 눈을 뜨이게 하는 사람, 지적 자극을 주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런 면에서 한 작가님을 만나 고수독서에서 지혜로움을 경청할 수 있었던 시간은 내게 행운이고 자극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행복한 책 읽기 계속해갈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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