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네 글자에 담긴 당돌함이 좋다. 메이저급 유통, 판매사들의 요구에 당당히 저항하며 할 이야기는 해야겠다는 결의가 보이기 때문이다. 정갈하게 정돈되어 대중성이라는 옷을 입힌 생각이 아니라 날 것의 생각 그대로가 잉크를 타고 드러나 있어 녀석은 감히 내 지갑을 연다.
서점을 들어서면 예술, 문화, 일상, 사색에 대한 책들이 마치 분양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표지를 펄럭이며 인사를 건넨다. 과도한 매대 장식과 화려한 팜플렛은 당연히 없다. 그저 큐레이션을 맡은 서점 주인의 짧은 글 몇 줄이 전부다. 대형서점에서는 읽어보지도 않을 손글씨를 읽는다. '나랑 비슷한 생각이려나...?'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게 만드는 곳이 독립 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독립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시간들이 참 좋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삶의 형태를 벗어나기를 희망하거나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암묵적 연대가 일어난다고나 할까. 책을 찾는 사람들도 책을 쓴 사람도 그 생각의 결이 언제나 신선해서 좋다.
아마도 이 기분 좋음은 '누군가와 같아지고 싶지 않다'라는 독립된 자아를 지키려는 용기가 모여 특별함이 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도 '유별나다', '일을 만든다'라는 평가를 평생 듣고 자라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간혹 아집인지 가치관인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도 있지만 그건 대중에 속해 살아가는 인생 또한 비슷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책을 펼쳐 본다. 그의 인생과 그의 그림을 엮어가며 그림 속에 숨겨둔 메세지를 스도쿠 풀듯 시간을 들여 해석 해본다. 그의 대표작인 '밤을 새는 사람들'에는 새벽녘에 담소를 즐기는 네 사람이 보인다. 필리스 시가(Phillies Cigar)라는 간판이 그 곳이 부유층이 아닌 평범한 동네의 작은 가게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그 중에서도 등을 돌려 앉은 남자가 눈에 밟힌다.
밤을 새는 사람들, 에드워드 호퍼.
불 꺼진 도시. 밤을 지새우기 위해 찾은 공간에서조차 등을 돌린 그는 고립과 고독을 겪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저 어깨와 등에는 어떤 삶의 무게가 있는 걸까?'
내가 살아온 인생이 투영되어서 그런지 나는 늘 약자를 응원하는 선택을 많이 해왔다. 그래서 고립된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부조리와 불합리와 싸우는 사람들의 인생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그런 인생들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나 보다. 아마도 불행한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일 것이다.
다시 시선을 독립 서점으로 돌려 본다. 주인장의 까다로운 면접을 통과한 녀석들의 공통 분모를 찾아내려 애써 본다. 역시나 자유, 사색, 여행, 공부, 휴식과 관련된 주제들이 많다. 이 글들을 요약해 보면 '혼자 살아도 괜찮아', '혼자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께!'를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것이 완전한 고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고립과 자립은 다르다. 고립이 분리된 영역이 있어 넘나들지 않는 완전한 차단된 상태를 말한다면, 자립은 동떨어져 있어도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자립된 인생에는 고립된 인생에는 없던 연합이 일어난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언제든 인생을 함께 할 건강함이 내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자립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타인을 도울 기회'도 주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여기서 고립이 고독한 성장이 되느냐 사회와의 단절이 되느냐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아마도 에드워드 호퍼는 이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나 보다. 그의 그림들을 시기별로 나열해보면 그 역시 고립을 거쳐 자립으로 나아가고 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좌석차(1965)'
에드워드 호퍼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좌석차'라는 위 작품이 그 단적을 예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좌석은 애초부터 1인석이다. 그것이 특실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상상 속 좌석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홀로 앉은 인간상의 시선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실제로 작품 속 인물들의 시선은 교차점이 없다. 모두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선은 곧 삶의 방향성인데 이것이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코로나19로 겪어야 했던 '적정거리의 중요성'을 에드워드 호퍼는 이미 알았던 것일까. 하지만 시선이 겹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의 본성적인 비교의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책 읽는 여자를, 모자를 쓴 남자는 창가 너머의 풍경을 보는 남자를 궁금해한다. 최소한의 인간성을 살려두었다고나 할까.
독립 서점에는 이 좌석차 속 시선들이 자주 보인다. 그림 속 좌석차가 독립 서점이 되고, 그림 속 인물들은 서점을 찾은 다른 독자들이 된다. 행여나 나의 선택이 보잘 것 없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다른 사람들은 무슨 책을 고르나 유심히 살피게 된다. 이 독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썼기에 표지를 덮은 주인장의 손글씨가 읽히는 것이다.
나 역시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막 살아도 된다는 면죄부가 되지는 않아야 한다. 정답을 알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인생의 오답과 멀어지는 길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이 세계가 조금 더 나은 곳이 되어가지 않을까.
'독립 서점이 많아지면 이러한 공정의 시선을 가진 사람들도 많아질까?'라는 희망을 품어 보게되는 하루다. 책 열심히 쓰고 출판해서 독립 서점 열어야겠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걸어둔 독립 서점이 되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