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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멘토 Sep 06. 2023

이 세상에 책을 내놓는다는 것

활자의 기록이 위대한 유산인 이유

"대박 한 권 터트려서 이 업계를 뜰 거야!"


인생 한 방을 노리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을 거라 예상했다. 삶의 방식이 다름은 인정한다. '어디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가?'는 당연히 그 사람의 자유니까. 그래서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활자를 유산으로 여기는 출판업계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은 것도 사실이었다. 


오만하고 무지한 착각이었다. 오히려 더 날 것의 자본주의를 마주해야 하는 곳이 바로 출판시장이었다. 시대를 꿰뚫는 명서는 구석에서 먼지를 머금고 있고 반대로 인플루언서들의 책들은 조명 아래에서 반짝였다. '조금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한 번 유명세를 탄 책들은 모양새를 바꿔가며 오히려 출판 시장 안에서의 입지를 다져갔다. 


'잘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돈을 더 벌기 위한 것'이라는 단편적인 의미보다는 조금 더 본질적인 가치가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필요한 글보다는 독자들이 읽고 싶은 글을 펴내는 출판사가 살아남는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은 그나마 조금 남았던 출판 업계의 가면을 벗겨 내기에 충분했다. 마치 마지막 남은 고기 조각 하나에 숨겨 뒀던 이빨을 드러내는 원시인들 같았다. 


책 속에 빠져 집중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잊지 못해 출판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날을 기억한다.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서점 구석에 몰래 앉아 책에 빠진 그 사람들의 눈빛에서 그 가치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눈빛이 그리 반짝이는 것은 사랑에 빠졌거나 진정한 몰입을 경험하는 순간에만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래서 나 역시 시장의 트렌드를 쫓아가는 책과 당장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흘러도 계속 읽히는 책 중에서 어떤 것을 출판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둘 다 출판하기에는 회사 사정이 너무 빠듯했으니까. 그러다 배본사 미팅에서 만난 출판업계 경력 20년의 베테랑 대표님의 한 마디에 무릎을 탁 쳤다. 


"섞어야지요. 내고 싶은 책 80, 사람들이 읽고 싶은 책 20. 해보니까 내 생각과 상관없이 이 비율이 늘 맞았어"


출판업을 한다는 가치지향적 사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편향적 시각을 가졌던 것이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생존과 가치를 오가는 시소게임 같은 것이었다. 이것을 일찍이 깨닫지 못하면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리다는 흑백논리에 허우적거리다 세월과 돈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었다. 


시대에 부응하는 책도 출판했다가 출판사가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책도 출판했다가를 반복하면서 그 균형점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일종의 타협이라 여겼다. 아집인 줄 모르고. 더 이상 힘을 주지 않아도 균형에 머무를 수 있으려면 언제 힘을 줘야 하는지 언제 힘을 빼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경험적 학습의 영역이니 수없이 반복하지 않고서는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다행이다. 결국에는 BEP 달성이나 EXIT를 목표로 책을 쓰고 출판하는 것이 나의 미래가 아닐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와의 1시간 남짓한 대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물줄기를 바꿀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야. 돈만 좇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문학과 철학을 들이밀어 봐야 소용없어. 그냥 처음에는 듣고 싶은 말을 해줘. 듣다 보면 그 사람들의 결핍이 보일 거야. 그걸 알게 되고 그들도 귀가 열리면 조금씩 필요한 말을 해주면 돼. 우리 입장에서는 답답하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렇게 조금씩 물줄기를 바꿔갈 마음을 먹고 일을 해야 출판을 오래 할 수 있어. 한 번에 물줄기를 바꾸려고 하면 방파제가 무너질 테니까..."


돈 공부만 하고 인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과 나 모두 시대의 흐름에 충실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생존이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인류애를 강요하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될 수 없었다. 굳이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인간에게 이상과 성찰은 사치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번에도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이 옳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활자를 통한 유산의 기록을 남기는 일이어야 한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현재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는 시점이 온다. 하지만 평온의 상태에 들어섰을 때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 인간은 반드시 방황한다. 아니 타락한다. 


그래서 결핍에 있을 때는 소유를 갈망했다가 막상 소유하게 되면 새로운 방황으로 새로운 결핍을 가져온다. 이것이 인간의 위대함이자 하찮음일 것이다.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갈망은 이 평온의 상태에서 방황이 아닌 새로운 길 즉, 미래를 위한 좋은 선택지들을 많이 알려두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절대적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사기꾼밖에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이런 건 어떨까요?'라는 이런저런 제안을 책을 통해 해두고 싶다. 


읽는 것이 생각으로, 생각에서 글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숙과 성장을 이뤄왔는지를 많이 알려두고 싶다. 그래서 반복되는 결핍으로 인한 고통보다 성장을 위한 인고의 시간에서 오는 고통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일종의 유산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물려줄 건 없고... 난 내 아이들한테 내 서재를 물려줄 거야. 좋은 책들로만 가득 채워서..."


이제야 알겠다. 그는 서재에 가득한 책들과 함께 누렸던 깨달음의 시간, 반성의 시간, '한 번 해보자!'와 같은 도전의 시간들이 진정한 유산이라 여겼으리라. 출판업을 한다는 것에서의 의미를 조금씩 발견해 간다. 언젠가는 시장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아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을 출판사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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