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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황해 문화> 인공지능 특집

by 박인식 Jan 23. 2025

새얼문화재단

2024년 겨울호


인공지능이 화두가 될 때쯤 이미 은퇴를 결심한 상태여서 그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모를까, 은퇴 후의 삶을 책 읽는 것으로 정해놓은 마당에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겠다고 굳이 애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복인지 다시 일할 기회를 얻고, 그러다 보니 인공지능을 외면해서는 맡은 일조차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특집을 다룬 가을호를 읽으면서 독자가 된 계간 <황해 문화>에서 이번에는 인공지능을 다루고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며칠에 걸쳐 꼼꼼히 읽었다. 인공지능을 다각도에서 다룬 이번 특집에서 인공지능의 역사를 다룬 김지연 고대 기술사회학 교수, 정치경제 측면에서 접근한 박승일 기술문화연구자, 윤리적인 측면을 살핀 목광수 시립대 철학 교수의 글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이제 인공지능은 증기기관을 바탕으로 기계화를 이루어낸 1차 산업혁명, 전기와 내연기관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한 2차 산업혁명,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지식 중심의 생산 체계를 구축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으로 온전히 자리 잡았다. 인공지능은 한 마디로 기술을 만드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삶을 향상시키는데 그쳤던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기술, 기술 이상의 기술이라는 말이다.


그렇기는 해도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이 가져다줄 풍요로운 미래보다는 인간과 기계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 걱정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자율적인 판단을 돕는 것을 넘어 사용자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조정할지 모른다는 걱정 말이다. 실제로 인공지능 학습 과정에 사용하는 데이터가 사회에서 수집하는 것이다 보니 사회적 편향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 편향을 단지 학습할 뿐 아니라 오히려 증폭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하는 것이다. 김지연은 인공지능이 자기가 분석하는 것 외에 다른 분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목광수는 인공지능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외부에서 알 수 없는 은닉층(hidden layer)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제도 잘못되었고 과정도 감추어져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런 결과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이며, 그로 인한 피해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이루어진 기술혁명은 모두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인공지능 역사 다르지 않아야 할 텐데, 현실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했는데도 대중의 호기심 영역에 머물러 있을 뿐 수익 모델로 나아가지 못했다. 고작 거둔 것이나 거둘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일자리를 대체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으니, 천문학적인 투자의 결과로는 너무나 초라할 뿐 아니라 앞으로 더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앞다투어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그 이유를 박승일은 “2천 년 이후 자본주의의 모순이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소련에 이어 중국까지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되다 보니 개척할 새로운 시장이 남아있지도 않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정보산업사회로 새로 유입될 인구도 그다지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포화된 시장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인공지능이라는 말이다.


시장이 포화된 상태를 돌파하려는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닷컴버블을 통해 그런 해법이 성공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기업이 인공지능의 주도권 싸움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승일은 그것이 “인공지능을 선점한 기업이 다음 시대를 지배한다는 강한 믿음이 깔려 있으며, 이 투쟁에서 탈락하면 야후와 노키아처럼 언제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데도 거의 모든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에 사활을 거는 건 오직 그럴 때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이전 같으면 빅테크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어 해 전 쿠팡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오류를 범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쿠팡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을 때쯤 서울로 돌아왔는데, 당시에는 쿠팡의 전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천문학적인 적자가 누적되고 있었고, 가격 구조로 보아 도무지 수익이 개선될 걸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치킨게임으로 경쟁자를 도태시키고 독점을 꿈꾸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시종일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흑자 전환까지 이루었다. 그렇게 그들의 전략이 입증되었는데도 지금도 쿠팡 상품을 받을 때마다 의문이 드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인공지능은 당장 만들어내는 수익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차차 만들어가는 미래를 목표로 삼은 것”이라는 박승일의 분석은 매우 합리적이다. 물론 쿠팡이 빅테크 기업이라는 말은 아니다.


최근 들어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인공지능으로 인한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다. 인공지능을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범위를 우리나라로만 좁혀도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 용량이 2029년까지 50기가와트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경제신문 2024.05.21) 오늘 현재 운영 중인 국내 원전 전체 설비 용량이 26기가와트이니, 데이터센터 운영 전력만 가지고도 지금 운영 중인 원전의 두 배가 추가로 필요한 셈이다.


물론 이런 예상은 지금 기술 수준을 전제로 한 것이고, 언젠가는 ‘기술을 만드는 기술인 인공지능’에 힘입어 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인공지능에 더 크게 의존할 것이고 그에 따른 전력 수요도 따라서 증가할 것이니 이것이 큰 문제가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인공지능을 제외한 전력 수요의 증가세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소 건설이 난제가 되어버린 우리 상황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당장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일자리를 대체하는 게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이지만, 앞서 예상한 대로 결국은 그것이 원가 절감으로 이어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이어질 것인가? 그것을 판단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그에 대해 구체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행간에서는 하나같이 부정적인 기류가 지배적이다. 박승일은 글 말미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분명 인건비를 줄이고 기업 이윤을 늘리겠지만 이는 우리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느냐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자본주의, 국가주의 동맹이 그려내는 미래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인공지능 기술 혁신이 자본주의를 구하고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면, 지구 자정 능력을 초과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온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박승일의 지적은 대체로 옳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는 또 다른 물음이 뒤따른다. “과연 선택할 수는 있는 일이고?”


그러면 이 상황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저 뒤처지지 않게 따라가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할까? 앞으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니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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