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Review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by 박인식

강창래

문학동네

2018년 4월 20일


서울로 돌아올 때만 해도 은퇴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은퇴라는 게 하는 일 그만두는 것인데, 나만 하는 일 그만두고 아내는 하는 일 계속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 서울 돌아가면 함께 은퇴하자고 했다. 살림을 반반씩 나누자는 말이었다. 아침은 내가 준비하마고 하니 아내는 그럴 것까지는 없고 자기 없을 때 알아서 해결하기만 해도 좋겠다고 했다. 친구도 없고 외출도 자유롭지 않은 곳에서 산 만큼 이제 얽매지 않고 시간을 보내겠으니 그렇게 알라면서 말이다.


아내가 서울에 볼일이 있거나 아이들에게 다녀올 때는 한 달이나 집을 비웠다. 가기 전에 반찬을 그득그득 채워놔도 한 달은 그것으로 버티기엔 긴 시간이어서 나중엔 이것저것 만들어 먹었다. 처음엔 영상을 보고 따라 하기도 했다. 얼마 지나니 대충 해도 먹을 만해서 아주 독창적인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같은 음식을 두 번 만들 수 없는 매우 독창적인 음식 말이다.


워싱턴 촌뜨기를 자처하는 정재욱 선생이 언제부턴가 음식 만드는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음식 꼴 갖출 만큼은 되었다. 거기에 대면 술친구 조영학 선생은 차원이 다른 솜씨를 선보인다. 철철이 나오는 재료에 마나님에 따님들 식성까지 맞춰 차려내는 솜씨가 전문 주방장 못지않다. 이처럼 음식 만드는 아저씨들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내게 아내에게 음식 차려준 이야기, 거기에 곁들인 레시피가 딱히 새로울 건 없다. 조영학 선생의 <아내를 위한 레시피>라는 야심작도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굳이 나누자면 에세이라 하겠는데, 책보다는 드라마로 먼저 만났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에세이가 드라마가 된 것은 보느니 처음이었다. 말기 암 환자인 이혼한 아내를 위해 서툰 솜씨로 음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니, 딱히 곡절이랄 것도 갈등이랄 것도 없어 본디 밋밋하고 어찌 보면 수채화 같은 드라마였다. 그러고 보니 에세이의 본질을 잘 살려낸 셈이기는 하다. 워낙 정평이 나 있는 한석규, 김서형 배우의 연기도 한몫했을 것이고.


“인문학자이자 오랫동안 아내와 함께 편집자의 삶을 살아온 강창래가 말기 암을 진단받은 알마출판사 대표이자 아내인 정혜인을 위해 무염 무당에 동물성 재료를 배제한 음식을 만든 고군분투기이자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는 헌사.”


이 책을 정의하자면 이쯤 되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에서처럼 이혼한 아내는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글에는 아내와 아들이 있다는 것 말고는 좀처럼 가족을 짐작할 만한 내용이 없다. 작가는 아내가 완화병동에 들어가고 나서야 무염 무당에 동물성 재료마저 배제한 음식을 먹는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먹을 것도 맛도 없는 음식조차 마음껏 먹을 수 없는 건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비로소 털어놓는다. 앞의 글에서도 간간이 그리고 행간을 통해 고통의 일단이 드러나고는 있지만, 그는 일체 감정을 배제하고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아내 병 수발든 이야기를 쓰려했던 게 아니라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라면이 전부였던 작가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음식 만드는 일을 위해 정리하기 시작한 글이었으니, 거기에 감정을 실을 이유가 없는 게 당연했다.


작가는 이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곤 했는데, 그 글을 읽은 누군가 그 글에서 슬픔을 느꼈다면서 그 글을 책으로 꼭 내라고 권유한 것이 이 책이 되었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의 글에서 슬픔을 느꼈다는 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여성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음식 만드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그린 글이니 순서가 뒤바뀌었을 리 없고, 당연히 슬픔을 느낀 글이 그 앞에 실린 글이었을 것인데, 나는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그렇게 느낄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섬세한 눈길만이 그 슬픔의 일단을 잡아낼 수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남자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글에서 슬픔이 느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자는 비로소 글에서 상황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아주 조금씩 드러낸다. 어쩌면 “아내를 보살피기 위해 자기가 쓰러질 수 없다는 강박감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작가가 그때쯤 그 사실을 깨닫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작가는 좀처럼 자기 고통을 드러내지 않는다. 글이 담담하다 못해 무미건조할 정도이다.


작가는 콩나물을 하나도 좋은 재료와 좋은 양념을 넣어 사람 목숨을 살리는 먹을거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친다. 볶음밥은 더운밥이 아니라 세상과 부대끼며 단련된 찬밥으로 만든다. 그것 하나도 아내의 투병 의지를 북돋아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튀김의 제맛을 선사하겠다며 탕수육 재료를 다 마련해놓고도 아내 깨기만을 기다리다 결국 먹이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오래도록 준비한 갈비탕은 아내는 물론 아들에게도 먹이지 못한다. 아내의 고통이 깊어질수록 먹이지 못하는 음식이 점점 늘어난다.


나는 아내가 집을 비우면 처음에는 아내가 만든 반찬을 식탁 가득 차려놓고 제대로 앉아 먹지만, 한 주일이 지나고 두 주일이 지나면 어느새 부엌에 서서 먹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외국 생활이라는 게 워낙 고단하고 단조롭다 보니 이웃을 불러 식사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럴 땐 나도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함께 음식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음식을 준비하는 이의 마음을 하나씩 알아가기도 했다. 내가 애써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그런데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음식 준비하는 거나 음식 차리는 것 모두.


작가 역시 그렇다. 그러면서 음식 준비하는 일을 글 쓰는 일에 비유한다.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면 사람들이 좋아해요. 내가 사람을 즐겁게 하고, 그 얼굴을 보는 건 말도 못 하게 좋거든요. 글 쓰는 일도 좋아요. 마음을 써서 먹을거리를 만들고 나면 글을 씁니다. 글을 올리고 나서 마음 맞는 사람들이 마음 써주는 걸 보는 것도 너무나 좋구요.”


문득 요즘 내가 글을 너무 쏟아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글 쓰는데 이유가 없을 수는 없지만, 정작 읽는 이의 눈만 어지럽힐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마음에 들어 하는 몇몇 사람의 반응에 혹해서 너무 나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지만, 그럴 글이라면 혼자 봐도 충분한 것이니 그것이 글을 공개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작가는 아내의 고통을 “폭풍이 지나갔다, 쓰나미가 덮쳤다”는 표현으로 극히 간결하고 투명하게 전달한다. 내가 작가라면 그쯤에서 잠시 멈춰 섰을 것이다. 숨을 고르고서야 넘어갈 수 있을 만큼 가슴 저미는 순간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 마음이었으니 음식을 만들면서 세상 이치를 깨우친 게 그리 많았던 것이었을까?


“아무것도 먹을 게 없다면 아무 희망도 없다. 삶과 죽음도 다를 게 없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어야 산다. 희망이 없으면 삶은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어른들이 곡기를 끊으시면 며칠을 못 넘기셨다. 먹을 게 없다면 희망이 없고, 희망이 없으면 삶은 의미가 없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없는 게 아니냐. 밥이 목숨이라는 말이다. 그동안 밥을 너무 가벼이 여겼다.


“소식이 가장 좋은 식사 방법이다. 학자들은 소식을 권하면서도 정작 이유는 모른다. 그건 아마 다른 생명을 그만큼 덜 약탈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 밥을 짓는다는 말이니, 이것도 밥을 귀히 여겨야 할 이유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작가는 이 글에서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바닥 모를 슬픔에 제대로 소화 시키지 못해 약을 먹었다는 이야기 다음 글은 “장례 절차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로 시작한다.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어 오히려 작가의 슬픔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덕분에 드라마 열두 편을 한 자리에서 다 보았다. 편당 삼십 분 남짓한 짧은 극이기도 했고, 커서 덕도 보아서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새 드라마 한 편을 진득하니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KakaoTalk_20250127_212226417.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계간 <황해 문화> 인공지능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