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정
서경문화사
2004년 4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가 죽어 헤브론 막벨라 굴에 장사하기로 하자 땅 주인 헷 족속 사람 에브론은 땅값을 받지 않고 내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굳이 은 사백 세겔을 지불하고 막벨라 굴이 있는 밭을 자기 소유로 삼아 사라를 장사지낸다. 성경은 이에 대해 “성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었다”라고 말한다.
일설에는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이루어질 때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기자들에게 이 성경 구절을 보이며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이미 땅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땅의 소유권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당시 훈화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례가 이스라엘 집단농장인 키부츠였다. 당시에는 키부츠를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기적쯤으로 여겼다. 지금도 검색해 보면 “이스라엘 경제를 지탱하는 공동체, 누구든 공평하고 풍족한 삶을 누리는 곳, 차세대 글로벌리더의 교육장”이라는 칭송이 이어지고 있고,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확고한 사회주의 신념을 갖게 된 계기가 키부츠였다는 설명도 보인다. 또한 키부츠를 “무수한 외세 침략으로 흩어져 살던 유대인이 수 세기 동안 버려졌던 땅을 개간하여 새롭게 조성한 정착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있다는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궁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이후 그 자리에 바위 돔 모스크와 알아사 모스크가 들어서 복원할 수 없게 된 상태에서 겨우 남아있는 서쪽 축대를 일컫는다. 뿌리를 잃은 유대인들이 그나마 남은 성전의 서쪽 축대 밖에 모여 통곡하는 바람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성경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에 감격했고, 이천 년이나 떠돌아다니면서도 성경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기어코 그를 이뤄낸 이스라엘 민족이 가엽고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중동에서 십수 년 근무하면서 이스라엘이 내가 생각했던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점을 하나씩 깨닫게 되었다. 작년 여름,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전에 희미하게 알았던 이스라엘의 실체에 한발 다가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계기가 된 것이 <이스라엘의 열 가지 신화>에서 저자인 일란 파페가 제기한 질문이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에게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피난처가 기존 주민과 공존을 이루는 것이어야지 왜 기존 주민을 배척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이후, 팔레스타인 관련 도서를 연속적으로 읽으면서 지금까지 알아 온 것의 상당 부분이 사실이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키부츠가 들어선 땅은 결코 “수 세기 동안 버려졌던 땅”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팔레스타인인이 살아온 터전이었고, 기원전 10세기에 지어진 솔로몬 궁전의 터였다는 ‘통곡의 벽’ 주춧돌은 그보다 천년이 지난 예수 당시의 건축물로 확인되었다. 솔로몬 궁전의 존재가 부인당한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한 허상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터전을 빼앗기는 했어도 적어도 땅값은 치렀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제값을 치르지 않거나 강탈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책에선가 정부에서 부재자재산법(The Absentee Law)을 만들어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땅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법을 확인하기 위해 이스라엘 국회 사이트까지 찾았지만 접속을 막아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팔레스타인 관련 저서를 연속해서 펴내고 있는 홍미정 교수께서 20년 전에 출간한 이 책을 보내주셔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탈취과정을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초기 정착촌은 앞서 언급한 집단농장 중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키부츠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모샤브에서 출발했다. 이 책에서는 정착촌이 처음부터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점령해 건설한 것인지 개인이 확보한 땅도 있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시작이 분명하지 않다는 말이기는 한데, 서술한 내용에 따르면 정착촌이 땅값을 정당하게 치르지 않았거나 강탈한 것이 대부분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의 정착을 통해서만 영토를 점유할 수 있다고 판단해 정착촌 건설을 밀어붙였는데, 워낙 점령지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것은 1947년 유엔 결의를 위반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1947년의 유엔 결의가 정의로운 것은 아니었다. 유엔은 1947년 11월 29일 유엔 결의 181호로 팔레스타인 전 지역의 56.47%는 유대국가에, 42.88%는 아랍국가에, 0.65%는 예루살렘 국제지구에 할당하였다. 놀랍게도 당시 팔레스타인은 전체의 87.5%를 소유하고 있던 반면에 유대인은 단지 6.6%만을 소유하고 있었다. 나머지 5.9%는 영국이 자국의 토지로 분류한 국유지였다. 이스라엘은 그처럼 자국에 유리한 결정을 내려준 유엔 결의도 지키지 않았다.
이러한 토지 강탈은 이스라엘 정부가 아랍인들의 토지 몰수를 정당화하기 위해 1950년 3월 14일 제정한 부재자재산법으로 합법화되었다. 이 법은 유엔 결의가 이루어진 1947년 11월 29일 현재 아랍국가의 시민이거나 아랍국가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 중 본인의 거주지를 떠난 사람을 이유 불문하고 부재자로 분류하고, 부재자의 재산은 점유자에 귀속시켰다. 말하자면 주인이 잠깐 비운 사이에 땅의 소유권이 땅을 차지하고 있던 점유자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점유자는 그 땅을 이스라엘 정부에 넘기도록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 법으로 100만에 이르는 아랍인의 재산을 손쉽게 강탈했다.
이처럼 강탈한 땅 말고도 이스라엘 정부가 안보를 명분 삼아 방위군을 앞세워 점령한 곳에 정착촌을 건설했다. 그것은 점령지에 방위군을 주둔시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일 뿐 아니라 안보 측면에서도 좀 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정착민 임시주택을 건설하고 시간이 흐른 뒤 이를 영구주택으로 바꿔갔다. 또한 이스라엘 방위군의 지휘관은 안보 목적으로 토지를 자유롭게 폐쇄할 수 있었으며, 토지 폐쇄 명령이 내려지면 팔레스타인인은 그 토지를 경작할 수 없고, 경작하지 못한 기간이 3년을 넘으면 국유지로 지정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정부가 마음대로 땅을 강탈할 수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방위군 포고령으로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지주들이 소송을 제기하자 이스라엘 고등법원은 정착촌이 안보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설되었다면서 이의 철거를 명령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정부는 땅이 대부분 등기되지 않았다는 빈틈을 찾아내 그런 땅을 국유지로 선포했다. 그뿐 아니라 문서를 날조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는데, 훗날 여기에 이스라엘 토지부와 농림부 관리들이 조직적으로 연루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 밖에도 무허가라는 이유나 테러범 가족 소유라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인 소유의 주택을 철거한 것이 1만 호에 가까웠고, 팔레스타인인 소유의 신축도 금지했다. 당시 예루살렘 주택의 70~80%가 무허가인 상태였지만 무허가라는 이유로 철거된 것은 팔레스타인인 소유의 주택뿐이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처럼 정착촌뿐 아니라 정착촌을 잇는 관통 도로를 통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을 압박하고 있다. 이스라엘 시민들은 통행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왕래하는 데 반해 팔레스타인인은 지금도 검문소를 걸어서 통과해야 하고,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하고, 검문소에서 이유나 설명도 없이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시간과 일정을 계획하고 그 계획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정착촌 때문에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유엔의 규제가 불가능해졌다.
이처럼 최근 확인한 일련의 상황 중 잘못 안 것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도 하나둘이 아니다. 그동안 어렴풋이나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를 알고 있었고, 당시 정황으로 보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래도 전범은 하마스일 것으로 생각했다. 모든 사안은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인데, 내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오해였다. 늦게라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되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데 홍미정 교수가 발간한 일련의 저서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단지 이처럼 이스라엘 정부가 땅을 강탈하는 과정만 서술하고 있는 건 아니다.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게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국가 수립이 가능할지를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되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중에 실현된 건 눈에 띄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