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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07. 2024

중동경제 3.0

<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11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열한 번째 서평이 올라왔습니다. 아랍에메리트 대사를 역임한 저자가 쓴 중동경제 입문서입니다. 


기억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피렌체의 식탁>에 올린 제 첫번째 리뷰가 <걸프의 순간>이었고 그 다음부터 하나 걸러 중동 관련 서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올해 내내 그렇게 써보려고 합니다. 


링크는 댓글에 올립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클릭 한 번...


♣♣♣


중동경제 3.0

권해룡

북오름

2017.04.28


중동 산유국의 중심인 걸프국가는 석유 발견 이전에는 그저 빈한한 사막의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사우디는 걸프국가 중 처음으로 유전을 개발했지만 1940년대 초반까지는 중동의 석유 생산량이 세계의 5%에 불과했다. 당시 최대 산유국이었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중동 석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중동 정치에 뛰어들었다.


걸프국가는 석유가 국가경제를 주도해왔다. 빈한한 나라에서 석유 하나로 일어섰으니 당연한 일이다. 걸프국가는 형태가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모두 왕국인데, 모든 왕실은 하나 같이 석유로 인한 수익을 왕실 재산으로 여겼고 그 수익 일부를 국민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해왔다. 국민에게 돌아갈 당연한 권리라기보다는 왕실이 내리는 시혜 정도로 여긴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경제활동은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에게 맡겼다.


돈이 쏟아져 들어오는 걸 보면서 석유 이후의 미래를 생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중에도 사우디의 전설적 인물인 야마니 석유장관은 1973년에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것이 아니듯 석유시대도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끝날 것”이라며 석유 이후를 염려했다. 지금으로서는 그가 염려했던 ‘세계 석유시대’의 종말까지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걸프국가 석유시대’의 종말은 이미 눈앞에 닥쳤다. 유가 상승을 이끌었던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산유국이 몇 달씩 감산을 계속하는데도 유가는 좀처럼 반등하지 않는다. 셰일오일 때문이다.


걸프국가 중 일부는 이미 산유국 경제를 탈피했지만, 뒤늦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맏형 사우디는 유가도 받쳐주지 않고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도 중동의 정정 불안으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사우디를 큰 시장으로 여기고 있는 우리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자료를 검색하던 중에 걸프국가의 이런 노력을 담은 책을 찾았다. 저자는 2010년대에 아랍에미리트 대사를 역임하고 외교부에서 경제통상업무를 담당하면서 경험한 것을 정리해 2017년 책으로 발간했다.


저자에 따르면 걸프국가 왕실이 국민에게 지급한 보조금이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 또는 유류대에 치중되어 있어 정작 보조금을 받아야 할 빈곤층은 배제되고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이 수혜를 입는 모순이 발생했다. 이후 걸프국가 정부는 수익을 소비 확대와 시멘트나 철강 같은 수입대체산업에 투입했다. 하지만 이런 산업은 자본 집약적인 장치산업에 치중되어 있어 고용 창출 효과가 미미했다. 그러는 중에 2천년대 이전까지 높은 출산율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저자는 걸프국가 공공분야의 인건비가 GDP의 11.3%에 이른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공공분야의 과잉 인력이 미미한 고용 창출 효과나 급격한 인구 증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아랍에미리트는 걸프국가 중 가장 먼저 미래지향적인 사업에 투자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산유국이라고 하기에는 석유 매장량이 턱없이 부족한 두바이 토후국이었다. 자원 부족에 대한 절박감이 오히려 그들을 선두에 서게 만든 것이다. 사실 두바이의 약진은 가진 게 워낙 없어 외국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와는 달리 금융과 관광산업에 뛰어들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계속될 줄만 알았던 성장세는 2009년에 밀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지 못하고 모라토리엄을 맞아 좌초됐다.


그 사이에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토후국은 석유산업의 ‘수직’ 다각화를 이루어 그동안 탐사와 생산에 치중하던 석유산업을 정유와 석유화학산업으로 확대했다. 그리고 사우디가 그 수준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아부다비 토후국은 새로운 전략과 패러다임으로 ‘수평’ 다각화를 이루어 고부가가치 산업, 혁신 ICT산업, 녹색성장과 같은 산업고도화를 달성했다. 아부다비는 2년 준비기간을 거쳐 2015년에 글로벌 녹색성장기구(Global Green Growth Institute)를 설치하고 ‘녹색 표준’과 ‘녹색 코드’도 이미 수립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아랍에미리트에 대해 상당히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접한 사우디에서 십수 년 일했으면서도 아랍에미리트의 경제력이 사우디와 비교할 정도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열거한 각종 지표를 보면 아랍에미리트의 경제력이 사우디보다 내실 있을 뿐 아니라 사우디를 앞서는 분야도 적지 않다. 당장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 자산이 세계 스포츠계를 쥐락펴락하는데 쏟아붓는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 자산의 두 배에 이른다.


사우디도 석유시대 이후를 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파드 국왕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1995년부터 사우디의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압둘라 국왕도 취업을 늘리고 산업을 다각화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다가 살만 국왕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질적인 통치자로 올라선 2017년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사우디의 경제력이 너무나 취약해 보인다. 2014년부터 계속되는 저유가로 8년이나 국가재정이 적자를 면치 못했고, 2022년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1년 남짓 흑자로 돌아섰던 때를 제외하면 지금까지도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왕세자는 이런 경제를 탈피하겠다고 2017년 네옴시티를 필두로 해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거대사업을 들고나왔다. 사실 이런 재정 상태로는 외국인 투자만이 유일한 해법이고, 사우디 정부도 그런 기조를 공식화하고 있다. 그런데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으로 정정마저 불안해졌으니 외국인 투자도 계획대로 될지 의문이다. 더구나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유가 회복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그렇다면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국가의 경제개발계획은 재정만 뒷받침되면 실행이 가능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저자는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첫째는 중동의 왕정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가치와 상충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중동 위기가 관리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대학의 압둘칼리끄 교수는 그의 저서 <걸프의 순간>에서 모든 개혁정책은 민주주의 영역에서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고, 이는 왕정국가인 걸프국가도 예외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대사를 역임한 저자 역시 왕정인 걸프국가의 민주화는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그것 때문에 개혁정책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결국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중동 위기도 해결이 어려운 것은 다르지 않다. 2023년 10월에 일어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당사국인 이스라엘은 물론 이란과 사우디로서도 달갑지 않은 전쟁이어서 오래 끌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7개월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저자가 지적한 문제 말고도 걸프국가의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더 있는데,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외국인에게 의존한다는 점이다. 사우디 통계청 2023년 1분기 자료에 따르면 전체 취업인구 1,536만 명 중 자국민은 387만 명으로 25%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9년 4분기에 비해 70만 명이나 증가해서 그렇다. 전체인구는 자국민이 외국인의 1.5배에 달하면서도 취업인구가 외국인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통계야말로 사우디의 문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가 전체인구 중 자국민이 10%에 불과할 뿐 아니라 채 10년도 지나기 전에 그것이 5%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에 비하면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기는 하지만.


그러고 보면 걸프국가는 민주화도 기대하기 어렵고, 정정 안정도 요원하고, 거기에 경제활동 대부분을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존하고 있어서 그들의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 하지만 현재는 어디에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데다가 세계 어느 곳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장인 것도 사실이니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서는 외면할 수도 없다. 그럴수록 정확하고 정밀한 정보가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좀처럼 관련 정보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이같이 현지 체험을 바탕으로 시장을 분석한 자료가 더욱더 귀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이슬람 금융에 할애하고 있다. 일반적인 우려와는 달리 저자는 이슬람 금융을 걸프국가의 경제개혁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기지는 않는다. 잘 알고 대처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여길 일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기업의 대표적인 중동 진출 사례를 유의해야 할 사항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https://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0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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