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팍에 GAP이라는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셔츠를 자주 입고 다니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평생 ‘을’로 살아서 한이 맺혔다고, 그래서 옷이라도 ‘갑’을 입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어디 영원한 ‘갑’이 있고 영원한 ‘을’이 있을까마는, 나 또한 평생 발주청의 눈치를 보고 살아오다 보니 그 모습이 그저 웃고 넘어갈 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갑’도 인연이 몇십 년 쌓이면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런 친구가 어제 현장에 찾아왔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지척에 있는 월성 원전이었다. 89년이었나 그랬는데, 그는 나를 처음 만난 게 81년이었다고 했다. 잠깐 현장에서 스치듯 만난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지.
그와 현장에서 만난 그날로 의기투합해 굳이 다른 방을 쓸 일이 뭐 있냐며 차라리 그 돈으로 술이나 마시자고 했다. 그렇게 몇 달을 함께 뒹굴었다. 그렇기는 했어도 둘 사이는 늘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다. ‘갑’과 ‘을’이라는 역할이 다르고, 그 친구나 나나 분명한 자기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이십 년 넘게 함께 일하는 동안 서로 얼굴 붉힌 일은 없었다. 만나면 긴장해야 하는 사이였다는 말이다.
본사에 복귀하고 현장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십수 년만의 일이었는데 이전에 둘 사이에 흐르던 긴장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세월이 좋은 것인가보다.
굳이 현장까지 발걸음을 한 것도 고마운데 뭔가 바리바리 싸온 것을 내민다. 지질쟁이가 현장에서 써야 하는 무기들이었다. 지질 해머는 상표도 떼지 않은 새것이었고 해머를 걸 수 있는 허리띠까지 일습으로 갖췄다. 클리노미터는 포장도 뜯지 않았고. 현장 스케치할 때 쓰는 연필에 연필심, 연필심 가는 도구까지. 거기에 색연필과 야장도 열댓 권 가져왔다. 그렇지 않아도 현장에서 사용하는 기준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자기가 쓰던 교과서까지 가져왔다. 자기는 없어도 되고 나는 그거 없으면 기억도 못할 거라고 놀리는 건 줄은 알겠는데, 그래도 그게 어디냐.
그가 이것저것 챙겼을 모습을 생각하니 고맙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다. 내가 자기 애인인 것도 아닌데, 이 정도 곰살맞게 챙기는 건 애인이나 되어야 가능한 일 아니냐. 한잔 거하게 대접하려 했더니 글쎄 술값도 먼저 내버렸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 어디 두고 보자, 그 원수를 갚고 말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