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중 몇 절을 뽑아서 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때로는 그 말씀 중에 감동이 되는 것도 있고 그날에 꼭 필요한 교훈이 되는 일도 있지만, 대체로는 기계적으로 보고 베끼는 것에 그친다. 그런데도 그런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을 계속하는 건 그것으로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이십 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번잡스러운 생각을 비워내는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길지도 않은 본문을 베껴 쓰는 일이 쉬워 보여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기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거의 매번 글자가 틀리거나 쓴 걸 다시 쓰거나 한 줄을 통째로 건너뛰기도 한다. 오늘은 아예 한 줄을 두 번이나 썼다. 순종과 긍휼이라는 단어가 몇 줄에 걸쳐 되풀이되는데 그러다 보니 한 줄을 두 번 쓰고, 풍성이라는 단어는 풍요라고 썼다. 어제 풍요의 ‘넉넉할 요’가 생각나지 않아 옥편을 찾아본 게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성경은 오랫동안 필사로 전해 내려오던 게 어느 날 성경으로 선택된 것인데, 그러다 보니 오자 탈자가 없을 수 없고 그래서 수많은 사본을 비교해 원문을 복구했다고 한다. 성경을 필사한 서기관들의 임무가 그것이었으니 나 같은 범부가 쓰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오자와 탈자가 무수히 나왔단다. 나도 처음에는 오자나 탈자를 그대로 넘길 수 없어서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기도 했다. 처음에 몇 번. 이제는 틀리면 틀린 대로 놔둔다.
처음 성경을 필사했을 때는 필사 노트를 사용했다. 여섯 권인가 그랬는데, 버리지 못하고 사우디까지 끌고 갔다. 두 번째는 낱장으로 써서 나중에 몇 권으로 제본했다. 그러다 그걸 보관하는 게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모두 없앴다. 지금 쓰고 있는 건 쓰는 대로 이면지로 사용하고 있다. 그냥 그 시간 집중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다 보면 성경을 필사하는 것조차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