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불황적 소비?
국내에서 가장 큰 주류 박람회인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에 다녀왔습니다. 정말 인산인해였죠. 작년에는 4만여 명, 올해는 5만 3천 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이렇게 사람 많은 것이 이제는 익숙할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최근에 주류 박람회에는 늘 인파가 동원되죠.
그렇다면 왜 이렇게 주류 박람회에 사람이 많아졌을까요? 그 배경을 한번 사견을 담아 정리해 봤습니다.
1. 자신의 주류 취향을 알려준 홈술 문화
COVID19로 특별하게 커진 주류 시장이 홈술이죠. 실은 이 홈술은 단순히 집에서 술을 마신다가 아니죠. 늘 정해진 술을 마시는 회식과 달리 홈술은 내가 원하고 내 취향대로 고르고 마실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말이죠. 이러한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다양한 술에 대한 수요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고, 취향이 어느덧 취미가 되고 그 취미가 소장으로 이어진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취향을 알기 위해서는 비교를 해봐야 합니다. 즉 비교시음이죠. 이 비교시음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는지 소비자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비교시음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주류 전시회죠.
2. 주류 전시회에서 전통주가 인기가 많아진 이유는?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주류 전시회에서의 전통주의 영역은 존재감이 적었습니다. 전시를 위한 전시가 많았고, 소비자들도 관심이 없었죠. 하지만 2020년 COVID19가 터지자 외국 업체들은 참여를 못했습니다. 자가격리는 물론 유통 자체가 마비되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존재감을 어필한 곳이 바로 전통주 업체들입니다.
외국 업체들은 참여를 못했지만 방문객은 전년대비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늘 주류 박람회를 찾던 와인, 맥주, 위스키 등 외국 주류 애호가들이 어쩔 수 없이(?) 전통주를 맛보게 됩니다. 최근 10년 동안 절치부심하며 기회를 노리던 전통주에게 기회가 온 것이죠. 그리고 이 기회를 다양성과 지역성, 다채로운 디자인에 지역 농산물과 무감미료 등까지 사회적 가치를 제시하며 맛과 향이 좋아진 전통주에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10년 동안 전통주는 준비를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맛과 향은 물론 패키지 디자인, 사회적 가치로 무장하게 되죠. 즉 언제든지 소비자와 만날 준비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3. 양적으로 많아지고 질적으로 높아진 주류 콘텐츠
COVID 19가 유행했던 시절에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이 지금보다 더 유행을 했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가성비 좋은 아이템이기도 했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홈술 문화가 커지자 술의 문화적 배경을 전달하는 주류 콘텐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시는 술에서 공부하는 술이 되고, 이러한 것이 주류 시장의 전체적인 수준을 높게 이끌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주락이월드, 주류학개론, 술익는집, 술담화 등이 대표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4. 사는 사람도 MZ, 파는 사람도 MZ
이번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것은 젊은 분들의 비율이 더욱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MZ세대입니다. 특히 여성 소비자 분들이 많아 보였죠. 흥미로운 것은 사는 사람만 젊어진 것이 아닙니다. 파는 사람, 그리고 만드는 사람도 젊어졌습니다. 아마 최근에 다양한 주류를 경험하고 창업 또는 취업전선에도 들어간 듯합니다. 이렇게 파는 사람도 같은 세대, 사는 사람도 같은 세대이다 보니 이들만의 공감대가 형성이 된 듯합니다. 시장이 철저하게 바뀌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5. 대형 주류회사가 참여하지 않는 이유
이렇게 인기가 많음에도 대형 주류 회사가 참여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전시회는 주로 '새로움'을 찾아서 오기 때문입니다. 대형 맥주, 소주, 막걸리 업체들이 참여할 이유가 지극히 적은 것이죠. 또 이들은 전시회가 없더라도 홍보할 곳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전시회는 평소 마케팅 할 기회가 적은 업체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번에도 하이네켄이나 화요 등이 참여하기도 했지만, 다들 나름의 메시지가 있었다고 봅니다. 즉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곳이 이러한 박람회에 참여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모두 그 경험을 원해서 방문하는 것이니까요.
6. 전시회에 몰리는 것, 불황적 소비?
전시회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몰려오지만 일반 시장에서의 주류 판매는 예전만 못하다란 것이 중론입니다.
COVID 19 시절에는 MZ세대에게 잉여 자금이 좀 있었습니다. 코로나 지원금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쓸 곳이 많지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불황에 다들 그동안 못 나갔던 해외에 나가느라 바쁜 상황입니다. 즉 주류에 쓸 비중이 줄어든 상황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신의 취향을 알았고, 다양하게 맛을 음미하는 주류 시장의 매력을 느낀 이상 경험은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것이 바로 이 전시회인 것이죠. 싸게 마실 수 있는 것은 물론 가격도 시장가격보다 저렴하게 팝니다. 이러한 상황을 모두 알게 되었고, 또 이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으로 봅니다. 다만 제조사는 물론 판매처가 너무 많아진 만큼 경쟁이 심화되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7. 바로 창업에 뛰어든다? 는 것은 위험
그래서 바로 창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시회에 몰리는 것이 모든 수요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만큼 가성비를 생각해서 이쪽으로 몰리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예전처럼 단순히 싸고 좋다는 것이 아닌 가치를 품은 '프리미엄 가성비'를 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적어도 그 시장은 노릴 수 있어야 합니다.
8. 주류 미식 시장의 확장
정말로 10년 전만 해도 과연 이 시장이 어디까지 갈까 했는데, 이번 코엑스 주류 전시회는 시장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비록 지금이 불경기인 만큼 시장 자체가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희가 2030 시대에 경험한 군대식 술문화로 돌아가는 일은 없어 보입니다. 즉 이러한 시장은 앞으로 성장하면 성장하지 퇴보할 일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양적인 성장은 없어도 질적인 성장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는 술을 어떻게 즐기면 재밌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9. 꾸준함이 중요한 시대
중요한 것은 이렇게 지역성, 다양성, 생산자와의 소통, 그리고 사회적 가치를 가진 주류가 헤게모니를 잡아갈 것이라고 오랫동안 외친 분들이 계시다는 것. 그 기간이 무려 긴 분들은 수십 년, 짧게는 수년 이상이 아닌가 합니다.
결국은 우리가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외친다면 세상은 변한다는 것. 꾸준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알려주는 것이 지금의 주류 시장이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