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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Jan 10. 2022

인생의 전환점

씨앗에서 묘목으로

혹시 브런치라고 알아요?


순간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나 싶었다. 요즘 핫하다는 브런치를 아느냐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브런치라면 아침과 점심 사이에 여유롭게 차와 함께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말로 하자면 아점(아침 겸 점심)쯤 되겠는데 왠지 아점보다 럭셔리해 보이는 그것. 한참 브런치 카페가 생겨나고 유행처럼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댔지.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생각을 정리하고 답했다.


알죠. 근데 그게 왜요?


아, 그거 말고요. 포털 사이트 같은 곳인데 글을 쓸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수도 있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브런치가 식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니. 자신 있게 안다고 했던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들어보니 글쓰기를 하고 다는 얘기를 하려고 꺼낸 말이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상대방은 얘기를 대충 얼버무려 마무리지었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에게 뭘 자랑하려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잘 풀리지 않던 일들 때문에 모든 것에 예민했고 자주 날이 섰었다. 그런 거부감에 새로운 것을 궁금해할 여유도 사라졌다. 내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그런 거라면 블로그도 있는데 굳이 또 다른 이름의 플랫폼이 필요한가,라고 간단히 생각하며 잊어버렸다.


그렇게 일이 년이 흘렀나. 나는 어디에서 다시 브런치라는 걸 듣게 되었다. 브런치는 블로그와 비교하면 작가라는 타이틀로 불리기에 진입 장벽이 있다고 했다.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이왕 오랫동안 유지해 온 블로그로 짬밥도 있으니 나도 한번 해볼까 마음이 동했다. 그동안 블로그도 브런치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으나 내 마음이 달라졌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늘어난 여유시간에 인문학 강의를 기웃거리던 차에 마침 '브런치 작가 되기' 강의가 열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끈기가 없어 열정을 오래 유지는 못하지만 궁금한 것에 발을 딛는 것에는 주저함이 별로 없다는 것은 내 큰 장점이다. 누구 같이 할 사람을 물색하거나 전전긍긍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도 나는 용감하게 들이밀곤 했다. 그렇게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글쓰기 강의실에 앉아 있게 되었다.


강의를 들었던 샘들과 브런치 작가가 되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인연과 함께 글쓰기의 맥이 이어졌다. 글쓰기 강의에서 시작해 책 쓰기 강의도 듣고 어쭙잖은 책다. 글쓰기 강의에서 시작된 나의 글쓰기는 벌써 햇수로 4년 차. 언감생심 매일 글쓰기는 꿈도 못 꾸고 일주일에 한 편 쓰기도 알람이 울려야 겨우 떠올린다. 종일 마음의 짐처럼 무겁게 품고 미루다 저녁이 되어야 꾸물꾸물 브런치 앱을 켠다. 쓰기 시작한 이후로 꾸준히 썼다면 책 몇 권 분량나왔을텐내게는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인생의 전환점을 물으니 말이 떠올랐다. 올해가 지나면  나이도 꽉 찬 오십이 될 터인데 인생의 전환점이 어디 한 번뿐이었으랴. 십 년 후에는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하지 않았던 나에게 쓰는 삶으로의 전환을 일으킨 순간. 브런치라는 씨앗 하나를 던져 궁금증을 먹고 자라게 한 시간들. 의도했든 안 했든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비실비실하게라도 자라는 묘목이 되었으니 그게 바로 인생의 전환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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