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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Oct 15. 2021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가을이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을 듣지 않으면 가을이 온 것 같지 않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방송에서 그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들려오는 걸 보니 가을이 시작되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달력도 10월로 넘겼지만 아직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보다. 며칠 전 잠시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나무의 우듬지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어? 벌써 단풍 들었네? 그렇지, 10월이었지. 나무가 물드는 계절이 왔었지. 나도 모르는 사이 가을이 성큼이구나. 알고 있다고 했지만 알지 못했다.


요즘은 가을이면 생각나는 시도 하나 있다. 나태주 시인의 '멀리서 빈다'. 시 전문을 외우지는 못하는데 마지막 연의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는 가을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떠오른다. 그리운 사람이 없는데도 그리운 사람이 생각날 것 같은 시다. 괜히 울컥해지는 시구가 가을에 딱 맞게 아름답고 쓸쓸하다.

가을 그리고 10월이 되면 우리 가족의 생일이 바쁘게 돌아온다. 올해도 이미 내 생일이 지나갔고 곧 아이들 생일이 다. 생일날이 시작된 밤, 그러니까 자정 지나 2분에 톡이 하나 와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면서 기프티콘과 함께. 지인이라는 말도 후배라는 말도 어색하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한데 그 작은 연을 끊지 않고 끌어가 주어서 고마운 사람이다. 인연을 가볍게 여기고 살아온 나에게는 참 대단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의 거미줄에 내 작은 자리라도 있다는 게 의아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내 친구의 친구로 알게 되었는데 내 친구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 같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이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달까.


드라마 인간실격에서 전도연은 가족도 직장동료도 아닌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저장한 지가 오래되어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그의 전화번호는 모른다. 전화할 일이 별로 없고 필요할 때는 톡으로 대화를 할 뿐이다. 일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데 내 생일이라고 가장 먼저 축하의 말을 건네 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다. 생일 그게 뭐라고, 기억했다가 자정 지나길 기다려 보냈을까.

그는 몇 년 전 건강검진에서 초기 병증을 발견하여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경과도 좋고 이제 건강관리를 해가며 운동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보다 훨씬 젊고 건강해 보이는 그였지만 그 후로 나는 그를 떠올리면 건강이라는 단어부터 생각난다. 가족도 동료도 친구도 아닌 그에게 나는 고맙다고 톡을 보냈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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