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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장구 Aug 20. 2024

앙장구의 세계관

나는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다. 나는 자유다.

과학은 팩트 이전에 확고한 세계관의 다른 이름이다. 자신의 세계관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이 수용가능한 수준까지 자신의 과학을 정립하는 것이다.

신화적,무속적 세계관이나 자연과학적 세계관 간에 그 자체로 우월성은 정의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의지하는 세계관으로 부터 초래되는 결과에 대하여 전적으로 스스로 수용하여야 한다.


나의 세계관의 구성요소는 석가모니, 노자, 손자, 칸트, 비트겐슈타인, 칼포퍼, 그리고 양자역학. 그 이상은 없다. (재기넘치는 철학자, 사상가들을 참고하는 것은 이러한 큰 줄기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다.


결과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관한 앙장구의 세계관은 다음과 같다.

원래부터 흐르는 시간이란 없다. 시간이란 3차원 공간에서만 인식된다 존재의 본질은 3차원 공간을 초월하여 있다. 그러므로 3차원공간이 시간을 따라 순차적으로 생성소멸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3차원적 존재의 인식의 한계일 뿐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시간의 역전은 멋진 비유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유일 뿐이다. 3차원 공간의 존재가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최소한 배제하는 것이 옳다. 흐르는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내세, 영혼, 윤회 따위는 전혀 믿지 않는다. 이생망, 금쪽이, 다음 생에는.. "천국에서" 따위의 표현은 남이 하면 예의상 건성으로 장단 맞추지만, 나스스로는 장난으로라도 하지 않는다.(참 재미없다. 그렇다.ㅎ)


우리는 시험을 치고 시간이 흘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여러가지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결과를 기다리고 상상의 나래를 펴지 않을 수 없는 것까지가 우리 3차원 존재론적 숙명인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3차원 공간의 모든 존재는 자신을 현실공간 전체와 작용반작용을 교환하며 시간에 따라 배열된다.

어떤 사고와 행동과 결과는 한치 어긋남이 없이 맞물려 있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생각은 모두가 착각이고 환상이다. 세상은 순수의식 그 자체일 뿐이다. 그것이 신약의 머리카락의 비유(마태복음 5장 36절)와 석가모니의 "인과응보"의 원의미이다.


우주의 출발을 정확하게 인식한다거나 지금 내가 맞이할 어떤 결과를 변동시키고 싶다는 마음은  그 자체로 우매하고, 자기저주이다. 문학적 비유를 들자면 "신성모독"이다. 나는 이미 태어났고  분명히 죽을 것이니, 나는 단지 살아갈 뿐이다. 나는 더이상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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