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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Nov 17. 2019

나의 새벽을 너의 낮 속에서

두 가지의 시간 속에서의 사랑이란 단어



이유를 찾아보려 했다.


사람이 사람을 떠나겠다 말할 때는 수많은 다짐이 있지 않았을까. 마음이 움직이는 일에 굳이 이유를 붙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없는 후회가 끝내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이 많아지면 낮이든 밤이든 정처 없이 어디든 걷는 버릇이 있다. 일상은 물론 낯선 여행지에서도 거리낌 없이 걷는다.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꽤 서늘한 기운이 감싸던 밤. 답답한 마음에 집 밖을 나와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퐁네프에 다다랐고 다리는 조명으로 환했다. 노을이 질 때 바라보는 퐁네프도 좋지만 가장 아름답다 생각이 드는 순간은 지금이었다. 때로는 가방 속에 먹다 남은 와인을 챙겨 와 조심스레 종이컵에 따른 후 홀짝홀짝 마시며 다리 위에서의 시간을 즐긴 적도 있다. 책 한 권 만을 쥐고 와 돌난간에 올려두고 읽기도 했으며 자그마한 삼각대를 세우고 동영상을 찍거나 그림을 그려 그것을 애써 잡아두려 해 본 적도 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그 풍경은 쉽게 질리지가 않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곳에 더 이상 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아리기도 하였다.


이 날도 그러했다. 다리 위에 우두커니 서 에펠탑 앞으로 펼쳐진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목적지 없던 걸음을 멈추고 다리 위 가로등 아래 기대어 센 강을 내려다보았다. 파리의 밤은 강물 위로 울렁이었고 까마득한 밤하늘이 그 위로 어지러이 빛나고 있었다.




사랑이 시작되면 이별로 나아간다는 말에 반박할 수가 없다. 만약 목적지가 존재한다면 퐁네프 다리 위에서 영원한 것을 고백하고자 하였다. 사랑한다는 말을  밖으로 뱉을  있다면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알았으며  단어만큼은 질량의 손실 없이 그대로 날아가 당신의 귓가에 한참을 머물 것이라 멋대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파리의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하였다. 오늘의 것과 내일의 것은 달랐으며 아침의 것과 저녁의  또한 달랐다. 유독 당신이 사무치던 새벽 속에서 힘껏 다하여 빚어낸  마음은 당신이 보내고 있는 세상의 찬란한 햇살에 쉬이 가려졌다.


파리에서의 새벽은 서울의 낮이었다. 당신이 저녁을 먹을 시간이면 나는 점심을 생각하던 시간이었다. 시간의 다름은 더욱 천천히 우리 사이에 스며들어 균열을 만들어 내었다. 나의 감정을 어설프게 빚어내 보았지만 그렇게 전한 말들은 온전히 당신에게까지 나아가지 못하였다. 때로는 당신의 감정이 나에게  닿지 못할 때도 있었다. 여덟 시간의 차이는 대수롭지 않다고   있었지만 명백히 우리는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같은 안부도 아침과 저녁의 것은 너무나도 달랐다. 해가  여름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밤이 길어진 추운 계절에는 사이의 간격이 가져다주는 고독이 유달리 크게 느껴졌다.


그 간격을 메우지 못한 우리는 겨울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이별과 마주하였다. 아마도 이것은 이별의 명확한 시작이 아니었으나 결국 그렇게 둔갑해버린 날이었다. 당신이 말하였다. 사랑하는 이와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하였다. 시간을 항상 되짚어 보아야 나의 세상이 당신한테 흐릿하게나마 그려졌다. 그렇게 상상너머로 사랑하는 이를 짚어보는 일은 우리 사이의 감정들 또한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별의 이유를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별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찾은 이유가 아니다. 어딘가에 기록해 두었다가 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적는 오답노트가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순간이 온다면 적어도 나의 새벽 속에 당신의 새벽도 함께 머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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