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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Nov 17. 2019

필요한 걸음의 수

나란히 걷던 이를 위해 기다린 것은 마흔 번의 걸음이었다



서가던 한 남자가 

나란히 걷던 이를 위해 기다린 것은 

단지 마흔 번의 걸음이었다.







이날도 늘 그렇듯 같은 자리에서 앉아 해가 넘어가는 시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퐁데자르 다리를 바라보았다.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있어 그들의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떠한 기분으로 그곳에 서 있는지 왜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처럼 혼자이기에 쓸쓸해 보이는 사람도 있으며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연인들도 보였다. 단체로 온 듯 한 여행객들은 시끌벅적하게 지나갔고 파리에서 만나 친해진 것 같은 무리도 흥겹게 다리를 건너갔다. 그러다 유독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나란히 걷다 그러지 않기를 반복하는 한 연인이었다. 


연인이라 단정 할 수는 없었지만 일렁이는 노을이 만드는 실루엣은 그들의 감정을 여과 없이 건네어 주고 있었다. 관객이 되어 그들을 보는 나에게는 연인이라는 수식어 말고는 다른 게 생각나지 않았다. 키가 큰 남자는 여자의 보폭을 위해 조금은 천천히 걷는 듯했으며 여자는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카메라를 꺼내어 지나가는 순간이 아쉬운지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남자는 조금씩 나아갔고 다리 위의 많은 것들이 발걸음을 잡는지 여자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상하게 남자는 나란히 걷다 가도 나란히 기다려주지는 않았다. 먼저 나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니었다. 여자가 그 시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몇 발자국 물러나 기다려 주는 듯했다. 더 이상 미련을 남겨두지 않겠다 생각이 들었는지 여자는 그제야 걸음을 남자를 향해 내디뎠다. 그녀의 걸음에 맞춰 숫자를 세었다.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남자는 긴 두 팔을 내밀었고 그들은 금세 하나로 포개어졌다. 




그녀가 남자에게 돌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마흔 번의 걸음이었다. 




연인이라 생각되는 이들이 지나간 다리는 우리도 나란히 걸었던 곳이었다. 파리의 노을을 처음 보는 너를 위해 기다렸다. 파리의 노을을 보고 황홀해하는 너의 옆모습을 나는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 날의 노을빛은 강물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물든 센 강은 우리의 틈 사이로 흘러내려 일렁이는 빛깔의 물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채워진 감정은 영원히 메마르지 않아 평생을 파리에서 고요히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상상했었다.


절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우리의 이야기가 태어남과 동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몇 개의 계절을 반복하니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시간과 감정에 대한 결핍으로 변하면서 마음 한편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결핍을 이곳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것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이들의 감정으로 결핍에 대한 대안을 삼을 수는 없을까. 저 연인들도 내가 가졌던 것 과 비슷한 감정으로 서로를 가득 채웠을 것이다. 채워지다 못해 흘러넘치는 저들의 것들을 조금만 주워다 비어 버린 곳을 채울 수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늘 흥미로운 것처럼.


잠시 떨어진 이들이 다시 나란히 걷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누군가가 기다려주면 다른 누군가는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으면 된다. 사랑이라는 게 간단하면서도 시간 위로 엮어 낸 것이 많기에 복잡하기도 하다. 서로에게 메마르기 시작하다 이내 텅 비어버린 감정의 저수지는 너무나 약했다. 한걸음에도 쉽게 부서져 내리는 내면의 저수지 바닥이 안타까운지 다리 위의 포개어진 연인을 바라보며 조용히 세어봤다. 


나와 너 사이의 필요한 걸음의 숫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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